박영수 특별검사팀이 16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하자 삼성그룹은 특검이 주장하는 혐의를 공식 부인하고 나섰다.
특검은 이 부회장에게 뇌물공여,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횡령, 국회에서의 증언·감정에 관한 법률 위반(위증) 등 혐의를 적용해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이전에 언급됐던 배임죄는 적용되지 않았다.
삼성은 이 부회장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 소식이 전해지자 입장 자료를 발표하고 "특검의 결정을 이해하기 어렵다"며 "대가를 바라고 지원한 일을 결코 없다"고 강조했다.
최씨 일가에 자금을 지원하긴 했지만 박 대통령 등의 강압에 의한 것이라는 기존 입장을 다시금 밝힌 것이다. 이는 이전 검찰수사에서 삼성을 피해자 신분으로 규정한 것과도 일맥상통한다.
특검은 삼성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과정에서 국민연금의 도움을 얻고자 최씨 일가를 지원했다고 보고 있다. 그러나 삼성은 "특히 합병이나 경영권 승계와 관련해 부정한 청탁이 있었다는 특검의 주장은 받아들이기 어렵다"며 "법원에서 잘 판단해 주시리라 믿는다"고 밝혔다.
이 부회장에 대한 긴급체포는 시행하지 않았다. 특검은 "긴급체포 요건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형사소송법에 긴급체포는 3년 이상의 징역·금고에 해당하는 죄를 저질렀다고 의심할 만한 이유가 있고 증거인멸·도주의 우려가 있을 때 할 수 있다. 이 부회장을 피해자로 볼 여지가 있는 만큼 특검이 증거인멸 등의 우려는 하지 않는다는 시각으로 풀이할 수 있다.
하지만 이 부회장이 구속될 경우 삼성의 경영공백 장기화는 불가피할 전망이다. 삼성은 중국의 사드보복, 미국의 트럼프 정부 출범 등 글로벌 불확실성이 커지는 가운데 향후 비상경영체제를 놓고 우려하는 분위기다.
실제 삼성전자의 미국 전장기업 하만(HARMAN) 인수는 이 부회장이 사실상 주도한 프로젝트다. 9조2000억원대 자금이 들어가는 판단을 계열사 사장단이 내릴 순 없기 때문이다. 이 부회장이 구속된다면 하만 인수합병(M&A) 마무리는 물론, 다른 대규모 M&A 등 과단성 있는 결정이 나올 수 없다. 일례로 트럼프 정부의 보호무역주의 강화에 대응하기 위해 추진 중이던 미국 내 생산기지 마련안도 이 부회장의 경영 공백이 이어지며 진행이 멈춘 상태다.
삼성 관계자는 "이 부회장 이후 어떻게 해야 할 지 오리무중"이라며 "오너의 부재를 메꿀 방법이 마땅치 않다"고 우려했다.
재계에서는 계열사들은 각각의 CEO가 이끌되, 그룹 전반에 관한 사안은 미래전략실과 CEO들의 협의로 결정되리라 내다보고 있다. 다만 신수종사업 발굴, 사업재편, M&A 등 선제적인 경영활동은 모두 멈출 것으로 예상했다. 해체가 예정됐던 미래전략실은 그룹 컨트롤타워 유지를 위해 존속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지난해 11월 공식화했던 삼성전자의 지주회사 전환 작업도 이뤄지기 어렵게 됐다. 당시 6개월 내 로드맵을 그린다는 방침이었지만 총수 유고 사태가 발생한다면 밑그림이 나오기도 어렵다는 관측이다.
삼성은 2008년에도 이건희 회장이 회장 직함을 내려놓는 사태를 겪은 바 있다. 당시 전문경영인 체제로 운영됐지만 5대 신수종 사업 가운데 두 가지(태양광, LED)를 포기하는 상황을 겪어야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