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량 기업 회사채는 없어서 못 팔 정도다. 보험사 등 기관투자가들이 캐리 투자에 나서면서 우량 기업이 발행하는 장기 회사채는 시장에 나오자마자 불티나게 팔리고 있는 것. 반면 한계기업들과 중소기업들은 자금조달 규모를 줄이거나 선뜻 발행시장에 발을 들여놓지 못하고 있다.
◆회사채 온도차 여전
22일 투자금융(IB)업계에 따르면 현대제철과 LG유플러스 회사채는 각각 1조원이 넘는 수요가 몰려 흥행을 거뒀다.
이마트는 만기를 3년과 5년 물 회사채 3000억원 물량을 발행하기 위한 기관투자가 대상 수요예측을 지난 3일 실시한 결과 1조900억원 규모의 주문이 몰렸다.
2000억원 규모로 발행할 예정인 3년물의 경우 전체의 70%(7600억원)가 몰린 가운데 1000억원 규모인 5년물에도 3300억원 가량의 기관 수요가 있었다.
한솔케미칼(신용등급 A-)은 3년물 500억원의 회사채를 발행하기 위해 기관을 대상으로 실시한 수요예측에서 1450억원의 수요가 집중됐다.
신용등급이 'A+'인 대상은 3·5년물로 나눠 300억원씩, 총 600억원의 회사채를 발행하기 위한 수요예측에 2900억원의 자금이 몰렸다. 발행 예정액의 5배에 육박하는 구모다.
하지만 발행기업 대부분이 신용등급 'AA'급이었다.
그러나 기업간 온도차는 여전했다.
파라다이스(AA-)가 영종도 복합리조트 관련 불확실성 탓에 1000억원 규모 회사채 발행을 위한 기관 대상 수요예측에서 수요가 700억원에 그쳐 회사채 매각작업 차질이 예상됐다. 그 외 나머지 기업들은 대부분 순조롭게 수요예측에 성공했다.
4년여 만에 공모채 발행에 나선 한라는 500억원 규모의 공모 회사채인 '한라88(88회 무보증사채)'의 수요 흥행에서 참패했다. 기관 투자자 한 곳이 50억원을 신청해 0.1대 1의 경쟁률을 기록했다.
CJ헬로비젼은 1000억원 규모의 회사채 발행에 앞서 실시한 수요예측에 2600억원이 몰렸다. 대부분 3년물에 집중됐다. 700억원 모집에 2200억원의 수요가 몰렸다. 그러나 5년물(300억원)에서는 100억원의 미매락이 발생했다.
SK증권 김선주 연구원은 "한국은행의 경제성장률 전망치가 하향조정 되는 등 국내 경기상황의 불확실성이 큰 상황에서, 사업의 안정성이 높고 재무부담이 개선되고 있는 우량물을 제외하고는 중장기물 투자에 대한 부담이 큰 것으로 판단된다. 미국의 통화, 재정정책에 대한 불확실성이 큰 상황에서 채권 금리와 스프레드 방향성에 대한 판단이 견고하지 않은 부분 역시 단기물에 집중되는 요인으로 분석된다"고 말했다.
자금조달이 힘든 기업들은 사채시장으로 향한다.
◆중소기업은 죽을맛
"선뜻 자금조달을 해주겠다는 금융회사가 없다. 잘못했다간 손실을 고스란히 떠안을 수밖에 없는 처지도 이해가 간다." 한 중견 제조업체 자금조달 임원의 하소연이다.
정부가 기업 구조조정에 나서면서 이곳엔 증권사 직원의 발길이 끊긴 지 오래다. 지금껏 돌아온 빚은 근근이 막았지만, 앞으로 돌아올 만기를 어떻게 넘길 지 걱정이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실적 부진에 신용 강등 우려까지 커진 기업들의 고민은 더 크다. '신용등급 하락→자금조달 금리 상승→투자 어려움→실적악화'로 이어지는 악순환 고리에 빠질 수 있기 때문이다.
증권사 한 관계자는 "투자자 인식과 등급 간 괴리를 줄여 등급의 현실성을 높일 필요가 있다"면서도 "차환발행이 여의치 않은 기업은 자산유동화 등 대체조달 수단을 모색해야 하는데 비우량 등급의 경우 이마저도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최악의 경우 좀비기업으로 낙인 찍혀 시장에서 퇴출될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