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이 지나갔다는 생각도 안 듭니다. 벌써 1월이 끝나가지만 2016년 13월 같아요."
이번 설 명절을 보낸 삼성 관계자의 말이다.
박영수 특별검사팀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 대한 구속영장을 재청구할 움직임을 보이자 삼성 관계자들도 이에 대한 준비를 하며 새해를 맞았다. 삼성그룹의 컨트롤타워인 미래전략실은 연휴 동안 휴식을 가졌지만 미래전략실 관계자들은 명절이 명절 같지 않았다는 반응을 보였다.
삼성의 한 관계자는 "연휴 기간 당직 근무 체제로 운영돼 가족들을 볼 수 있었다"면서도 "시국이 시국인 만큼 가시방석에 앉아있는 느낌에 편히 쉬진 못했다. 스마트폰으로 계속 인터넷만 들여다보게 되더라"고 설 소감을 밝혔다.
박영수 특별검사팀은 설 연휴 전인 25일 김 신 삼성물산 사장과 김종중 삼성 미래전략실 사장을 참고인으로 불러 조사한데 이어 설날 당일인 28일에도 최순실씨의 조카 장시호씨를 불러 조사했다. 특검은 두 사장에게 2015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전후 상황을 캐물었고 장시호씨에게는 삼성이 제공한 지원에 대한 대가성 여부를 집중 조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검은 이보다 앞선 20일과 21일 황성수 삼성전자 전무를, 23일에는 홍완선 전 국민연금공단 기금운용본부장과 주진형 전 한화증권 대표를 소환조사했다. 특검팀은 삼성이 적극적으로 최순실씨 등에 뇌물을 줬다는 판단 아래 사실상 이재용 부회장이 당면 수사 목표라는 점을 분명히 한 셈이다. 연휴가 끝나면 수사에 속도를 올림과 동시에 이 부회장에 대한 구속영장 재청구 역시 추진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특검팀의 행보를 보는 재계 관계자들의 시선은 따갑기만 하다. 특검이 정치적인 목적 때문에 재계를 산 제물로 삼으려 한다는 인식 때문이다. 특검이 이재용 부회장에게 뇌물죄를 씌우려는 목적은 박근혜 대통령에 있다. 이 부회장의 430억원대 뇌물공여 혐의는 박 대통령의 뇌물 수수 혐의로 이어진다. 특검의 그림대로라면 특검은 뇌물 수수자에 대한 조사는 뒤로 미룬 채 공여자에 대한 조사에만 집중하는 셈이다.
한 재계 관계자는 "(특검이 삼성의 지원을 뇌물이라 인식하고 있다면)공여자와 수수자에 대한 조사가 균형 있게 이뤄져야 한다"며 "자신이 없으니 (상대적으로)약한 쪽만 제물로 삼아 괴롭히는 것 아닌가 싶다"는 시각을 밝혔다. 이어 "검찰 조사까지 합하면 삼성에 대한 조사는 11월에 시작한 셈"이라며 "구속영장은 증거인멸의 우려가 있을 때 하는 것인데 그렇게 수사를 하고도 인멸할 증거가 남아있다면 그것도 웃긴 일"이라고 꼬집었다.
삼성은 최씨 일가에 대한 지원이 삼성물산 합병과는 무관하며 청와대의 강압에 의한 것이라 주장해왔다. 이에 따라 수사에도 적극 협조해왔다. 최순실 게이트와 관련해 삼성 서초사옥은 지난해 11월 세 차례의 압수수색을 받았고 12월에는 이재용 부회장이 국회 청문회에 증인으로 출석하기도 했다. 특검팀의 연이은 소환에도 이 부회장을 비롯한 삼성 관계자들은 적극 응하고 있다는 평가다.
특검의 출국금지로 인해 이 부회장은 트럼프 미 대통령이 초청한 만찬에도 참석하지 못했다. 불가피한 사유를 대면 허가를 받아 출국할 수 있었지만 그보다 특검 조사에 협력하기로 했던 셈이다. 그간 소환에 불응하다 체포영장이 집행된 후에야 특검 사무실에 얼굴을 비춘 최순실씨와는 상반되는 모습이다. 법원 또한 지난번 특검팀의 구속영장 청구를 기각하며 특검에 의문을 제기한 바 있다.
지난해 뛰어난 실적에 가려졌지만 수개월 동안 수사에 협조한 결과 삼성은 상당한 경영차질을 빚고 있다. 사상 최대 규모였던 하만과의 M&A는 잡음이 끊이지 않고 있으며 진작 끝났어야 할 임원 인사와 사업·투자 계획 수립도 오리무중이다. 인사 업무가 모두 중지된 탓에 올해 사원 채용이 이뤄질지도 우려되는 상황이다. 트럼프 미 대통령의 보호무역주의 기조에 맞춰 미국에 공장 건립을 검토했고 삼성전자 지주회사 전환도 추진했지만 현재 진척은 없다.
삼성 관계자는 "계열사 CEO들의 결정권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며 "글로벌 경영전략 결정 등은 오너의 역할이다. 아직도 올해 경영·투자 계획을 세우지 못한 것도 이러한 문제 때문"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