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한 카리스마'로 중소기업계에서 큰 발자취를 남긴 송재희 중소기업중앙회 상근부회장(사진)이 자연인으로 돌아간다.
중소기업청 차장을 거쳐 2009년 4월 중소기업계 맏형인 중기중앙회의 살림을 총괄하는 상근부회장으로 자리를 옮긴지 8년만이다.
1일 중소기업계에 따르면 송 부회장은 오는 6일 퇴임식을 끝으로 중기중앙회 역사상 가장 오래 역임한 부회장직을 내려놓는다.
송 부회장은 "운이 좋게 오래했다. 이젠 마음이 한결 가볍다"면서 "40년 가깝게 나라를 위해 살았으니 이젠 내 자신에게 몰입하고 싶다"며 짧막하게 소감을 밝혔다.
강산이 네번이나 바뀌면서 이젠 자타가 공인하는 중소기업 전문가가 됐지만 그와 중소기업의 인연은 우연이 아닌 필연이었다.
"행정고시에 붙고나서 공업진흥청(현 중소기업청)에 지원했다. 원했던 상공부(현 산업통상자원부)는 행시 성적 때문에 못갈것 같아서다. 나중에 알고보니 (성적이)상공부에 붙고도 남더라(웃음). '부'가 아닌 '청'을 선택했으니 당시 사람들이 의아하게 생각했을 법도 하다."
1980년 공업진흥청 사무관으로 공직을 시작한 그는 이후 중기청 개청 태스크포스(TF) 팀장을 맡으며 중기청의 산파 역할을 했다. 그후 요직인 정책총괄과장, 기술지원국장, 경기지방중기청장, 정책국장 등을 거쳐 장·차관 등 정무직을 제외한 공무원으로선 가장 높은 1급 차장까지 역임했다. 그것도 중기청 출신의 첫 '토종 차장'이었다.
평소 할 말은 하고 사는 그의 '도발'은 2009년 5월 당시 차장직을 그만두면서 한 이임사에도 고스란히 묻어난다.
"자부심과 당당함이 패배주의를 벗어나게 하고, 한 점 부끄러움 없는 우리의 우월주의가 언젠가는 '토종 청장'을 배출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된다. 1996년 개청이후 13년 동안 조직문제가 거론되지 않은 적이 없었던 것 같다. 이제 중소기업 육성과 경쟁력 제고를 위해 중소기업부로 더욱 발전해야 한다고 믿는다."
산업부의 외청으로 청장 대부분은 산업부 관료가 독식하고, 차관급 조직으로서 중기청의 한계를 뼈저리게 느꼈던 그가 누구도 드러내지 못한 속내를 친정을 떠나면서 당당히 밝힌 것이다.
"낙태를 하기 위해 보건지소에 갔던 어머니가 발길을 돌려 낳은 '덤 인생'이라 생각하고 산다. 하고 싶은 말을 담아놓지 못하는 성격도 이때문이다."
송 부회장은 '숫자 2'를 좋아한다. 재수해서 대학(서울대 무역학과)에 들어갔고, 행시도 두번째 도전해서 붙었다. 중기청 차장은 중기청장, 상근부회장은 중기중앙회장에 이은 '2인자'다.
그러나 2인자라고 하기엔 중기중앙회에서의 지난 8년간 보여준 그의 족적은 상당하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 더욱 심화된 중소기업들의 경영난을 타개하고, 대기업의 납품단가 후려치기 등 불공정 이슈와 골목상권 침범에 따른 동반성장 문제의 해법 찾기를 하는 과정에선 늘 그가 있었다.
중소기업 성장 생태계 조성을 위해 정부, 국회, 언론 등을 접촉, 설득한 것도 그였다. 현재 위용을 드러내고 있는 서울 상암동 DMC타워 건립을 위해 삼성그룹과 현대자동차그룹으로부터 대규모 자금을 유치한 것도 송 부회장의 근성으로 가능했던 일이었다. DMC타워는 중기중앙회가 자립할 수 있는 발판을 다진 대표적 사업이라는게 업계의 평가다.
중기중앙회를 이끌었던 전임 김기문 회장과 현 박성택 회장이 더욱 돋보였던 것도 '2인자 송재희'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송재희 부회장이 펴낸 에세이 '그대가 좋다' 표지.
자연인으로 돌아가는 송 부회장은 중소기업과 40년 가까이 동고동락한 내용을 담은 에세이 '그대가 좋다'를 최근 펴냈다.
'그대'는 물론 '중소기업'이다. 에세이집에는 그가 정책 담당자로, 중소기업 최전선에서 보고, 듣고, 느낀 것들을 모두 담았다. 특히 중소기업이나 자영업을 하고 있는 사장님들 뿐만 아니라 중소기업에게 일감을 주는 대기업 사장님들, 그리고 중소기업 취직을 원하거나 외면하려는 구직자들에게 던지는 강렬한 메시지도 곳곳에 담겨있다. 정치인이나 공무원도 물론이다.
'정치인은 낮에는 중소기업이 중요하다고 외치면서 왜 밤에는 대기업 임원들을 만날까(불가사의), 중소기업은 단가후려치기라고 하고 대기업은 원가절감이라고 한다(평행선), 태산준령 높다하되 은행문턱 더높구나 낮디낮은 은행문턱 중소기업 못오르네(은행 문턱), 직원이 많이 가져가면 흥하고 사장이 많이 가져가면 망한다(흥망)….'
송 부회장은 또 지난달 20일엔 중기중앙회 임직원들을 대상으로 한 워크숍에서 마지막 강의를 하면서 후배들에게 '혁신'을 강조하기도 했다.
"30년전이나 지금이나 중소기업은 자금, 기술, 인력, 판로, 수출이 모두 어렵다. 에세이에도 썼듯 앞으로는 서울 마포대교(중기중앙회에서 가까운 한강 다리로 한 때 '자살대교'의 오명을 썼던 곳)를 찾아오는 기업인들이 한 사람도 없기를 간절히 소망해본다. 혹시 (마포대교에)오시더라도 (사장님들이)희망백배해 발길을 돌려 재기의 부활 날개를 활짝 펼치기를 기원한다."
이제 자신에게 몰두하겠다는 송 부회장은 바둑이 아마 1급으로 수준급이고, 당구도 '짠 300'으로 실력파다. 행시 23회로 김용환 NH농협금융 회장, 권혁세 전 금융감독원장, 정승 한국농어촌공사 사장, 이동근 대한상의 상근부회장 등이 동기다.
앞으로 펼쳐지게 될 그의 제2 인생이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