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늪지형 불황에서 탈출하려면 경기 선도 주력산업 육성으로 역동성을 복원하고 금리 인하와 추경편성의 정책조합으로 적극적인 총수요 확대 정책이 필요하다. 민간 소비와 투자 진작을 위한 미시적인 정책도 병행해야 한다."
지난해 5월 18일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실장은 '현 불황기의 다섯 가지 특징과 시사점' 보고서에서 우리 경제가 '늪지형 불황' 사이클에 접어 들었다고 평가했다.
올해도 한국경제는 늪지형 불황에서 벗어나기 쉽지 않아 보인다. 밖으로는 미국의 강력한 보호무역주의, 안으로는 대통령 탄핵 정국이라는 장벽에 막혀 경제 주체들의 투자와 소비심리가 크게 위축되고 있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한국경제 성장률이 2%를 밑돌것이란 극단적 전망까지 하고 있다.
◆ GDP갭률 -1%에 근접
한국은행은 최근 국회에 제출한 '통화신용정책 보고서(중간보고서)'에서 2017년 상반기 GDP갭률이 -1%에 가까울 것으로 전망했다.
GDP갭은 실질GDP와 잠재GDP의 차이를 말하는데, GDP갭률이 마이너스라는 것은 현재 경제가 잠재치 만큼 성장하지 못한다는 의미다. 반대로 갭이 축소돼 해소되면 경제가 본격적으로 회복에 들어선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GDP갭률이 마이너스 였던 시기는 2012년 4분기~2013년 3분기, 2014년 4분기~2015년 2분기, 2015년 4분기~지난 1분기 등이다.
자칫 '성장절벽'에 빠질 수도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2017년과 2018년의 한국경제 성장률을 각각 2.6%, 3.0%로 전망했다. 항상 장밋빛 전망을 내놓던 정부조차 내년 실질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을 2.6%로 예측했다. 국책 연구기관인 KDI의 내년 성장률 전망치는 2.4%로 한국은행(2.5%)과 OECD(2.6%), 한국금융연구원(2.5%)보다 낮고, 현대경제연구원(2.3%), 한국경제연구원(2.2%) 보다는 높다.
마땅히 이런 비빌 언덕이 없다. 산업경쟁력이 갈수록 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경제연구원이 내놓은 '대한민국 주력산업의 글로벌 경쟁력 비교' 보고서에 따르면 전기전자업의 경우 2010년 한국의 매출증가율은 25.55%로 4개국 중 가장 높았으나 2014년에는 4.10%를 기록해 미국 5.94%, 일본 6.68%, 중국 9.84%보다 낮았다. 해운, 화학, 자동차, 철강 등도 뒷걸음질 치고 있다.
불황의 원인은 수요충격으로 분석된다. 물건을 소비하려는 사람이 적어서 발생하는 불황이라는 것이다.
한국은행 발표에 따르면 지난해 4분기 실질 국내총생산(GDP)은 전 분기 대비 0.4% 증가했다. 2015년 4분기(0.7%)부터 5개 분기 연속 0%대를 벗어나지 못해 저성장이 더욱 고착화되는 양상이다. 지난해 연간 성장률은 2.7%로 2년째 2%대 성장에 그쳤다. 지난해 4분기 성장률 하락에는 GDP의 절반(49.5%)을 차지하는 민간소비의 위축이 첫손에 꼽힌다. 전기 대비 민간소비 증가율은 지난해 3분기 0.5%에서 4분기 0.2%로 뚝 떨어졌다.
올해 1월 수출은 403억 달러로 4년 만에 가장 큰 증가 폭을 보였다. 하지만 지난달 증가는 1년 전에 수출이 전년 대비 20% 가까이 감소했던 데 따른 기저효과라는 분석도 있어 좋아하기에는 이르다는 지적도 나온다.
공장에는 먼지만 쌓여가고 있다. 실제로 통계청이 1일 발표한 산업활동동향을 보면 지난해 연간 제조업 평균가동률은 72.4%로 1997년 외환위기 직후인 1998년(67.6%) 이후 가장 낮았다.
◆곳곳에 암초
앞으로가 더 걱정이다. 나라 안팎으로 좋아질 일이 없어서다.
가장 큰 걱정은 미국과 중국의 갈등이 환율문제로 옮겨붙는 상황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지난달 31일(현지시간) 돌연 중국과 일본, 독일의 통화가치가 지나치게 낮다고 비난을 퍼부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백악관에서 제약회사 최고경영자(CEO)들과 만나던 중 "중국이 무슨 짓을 하는 지, 일본이 수년간 무슨 짓을 해왔는 지 보라"며 "이들 국가는 시장을 조작했고 우리는 얼간이 처럼 이를 지켜보고 있었다"고 말했다.
중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한다면 한국은 그 유탄을 맞을 가능성이 크다.
미국 재무부는 한국을 환율 조작과 관련한 '관찰대상국'으로 분류하고 있다. 한국의 연간 대미 무역수지 흑자는 302억 달러 수준이고 국내총생산(GDP) 대비 경상수지 비중은 약 7.9%로, 환율조작국 세 가지 기준 중 두 가지를 충족한 상태다.
UBS는 "가능성은 높지 않으나 미국의 대 중 압박이 크게 강화될 경우 중국이 내년 중 위안화를 큰 폭으로 절하할 수 있다"면서 "한국을 포함한 신흥국 통화가치 불안 등을 초래할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기업과 가계는 빚더미에 앉아 있다.
통계청이 최근 발표한 '2015년 기준 영리법인 기업체 행정통계(잠정)'에 따르면 지난해 전체 기업의 부채는 6333조2410억원으로 전년 5745조2350억보다 10.2% 증가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3분기 말 가계신용(가계대출+판매신용) 잔액은 1295조8000억원이다. 2분기 말과 비교해 38조1700억원 증가했다. 부채의 질이 악화되고 있다는 증거도 곳곳에서 나온다. 생계형 대출이 늘면서 신용등급이 떨어지는 저신용자 대출은 전체 가계대출의 31.6%(1분기 기준)로 늘었다. 1년 전보다 1.7%포인트 늘어난 것이다. 3곳 이상의 금융기관에서 빚을 진 다중채무자도 26.9%에 이른다. 규모는 128조9000억원이다.
이일형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 위원은 "우리나라는 지난 금융위기 이후 확대된 금융부채가 소득 불균형과 더불어 소비를 위축하고 있다"며 "구조적 해결책이 동반되지 않은 부채 증가는 금융안정을 위협할 수 있다"고 말했다. 또 "금융부채로 인한 부동산 투자 확대가 지속할 수 있게 하려면 부동산 가격 상승에 따른 부의 효과를 통해 소비가 늘고 소득증대로 이어져야 한다"며 우리나라는 2000년대 초반부터 부채 증가율이 소득 증가율을 계속 웃돌고 있다고 우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