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태원 SK그룹 회장이 2015년 8월 SK하이닉스 중국 우시공장을 방문해 생산 시설을 둘러보고 있다. /SK
SK하이닉스가 지난달 LG실트론 인수 결정에 이어 도시바 지분 인수에도 나서며 반도체 사업을 강화하고 있다. SK하이닉스가 도시바 인수에 성공한다면 삼성전자에 준하는 낸드플래시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7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메모리 반도체에는 D램과 낸드가 있다. D램은 작동속도가 빠르지만 전원을 끄면 데이터가 사라지는 특성이 있다. 이 때문에 중앙처리장치(CPU)가 연산하는 과정에서 잠시 데이터를 보관하는 용도로 사용된다. 이에 반해 낸드는 D램에 비해 속도가 느리지만 전원을 꺼도 데이터를 보존한다. 때문에 기존 PC의 하드디스크드라이브(HDD)를 대체하는 저장장치 솔리드스테이트드라이브(SSD)와 스마트폰용 저장장치로 각광받고 있다.
SK하이닉스가 강점을 지닌 분야는 D램이지만, 시장 성장성은 낸드가 더 높다. 클라우드, 빅데이터, 사물인터넷(IoT)이 IT 중심으로 떠오르며 데이터를 종전보다 빠르게 처리할 수 있는 SSD 등에 대한 수요가 늘고 있기 때문이다. 덕분에 낸드 시장 성장은 D램의 15~20%의 2배인 40%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SK하이닉스는 2000년대 초반 워크아웃을 겪으며 낸드에 대한 선행투자를 하지 못했다. 2012년 SK그룹에 인수된 뒤 미국 컨트롤러 회사 LAMD를 2000억원에 인수했지만 낸드 경쟁력 확보에 어려움을 겪어 지난해까지 적자를 이어왔다. 컨트롤러는 낸드 성능를 좌우하는 핵심 기술이다.
이번 도시바가 지분 매각에 나선 것은 미국 원전사업 손실 규모가 7조원으로 확대됐기 때문이다. 지난해 9월 말 기준 도시바 자기자본은 3600억엔(약 3조6000억원)으로 7조원대 손실을 반영하면 자본잠식을 피할 수 없다. 미국 원전사업 손실로 자본잠식 위기에 몰린 도시바는 지난달 말 핵심사업인 반도체사업부 분사를 결정했다. 약 3조원 규모의 신주를 발행하고 반도체사업부를 분사해 별도 회사를 세우면 해당 회사 지분 19.9%로 전환해주는 조건을 내세웠다. 이를 통해 자본잠식은 피하겠다는 구상이다.
도시바는 뛰어난 컨트롤러 기술을 보유하고 있어 SK하이닉스가 관심을 보이고 있다. 업계에서는 인수에 성공할 경우 삼성전자를 위협하는 수준까지 올라설 것으로 내다봤다. 하지만 경쟁자 역시 만만치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낸드플래시 부문 글로벌 3위 기업 샌디스크를 보유한 미국 웨스턴디지털(WD)도 도시바 지분 인수에 나섰다. 웨스턴디지털이 도시바 지분 인수에 성공할 경우 양사의 시장 점유율은 삼성전자를 넘어서는 36.5%로 늘어나게 된다.
지주회사 SK㈜는 삼성전자가 주도하고 있는 낸드 시장에서 경쟁력 확보를 위해 주력하고 있다. 최태원 SK 회장은 2015년 8월 경기 이천 SK하이닉스 M14공장 준공식에 참석해 '2024년까지 46조원을 반도체 사업에 투자할 것'이라고 공언한 바 있다. 같은 해 11월 반도체용 특수가스 제조업체 OCI머티리얼즈를 인수했고 지난달 LG가 보유한 LG실트론 지분 51%도 사들이기로 했다. LG실트론은 반도체 칩의 핵심 기초소재인 반도체용 웨이퍼를 제조·판매하는 전문기업으로 300mm 웨이퍼 분야에서 세계 시장점유율 4위를 기록하고 있다.
"투자와 채용이 뒷받침될 때 기업의 핵심 경쟁력이 유지될 수 있다"며 최 회장이 투자를 지속한 결과 성과도 나타났다. SK하이닉스는 지난해 말 48단 낸드 제품 출하를 시작했고 올 상반기 내로 72단 낸드 개발도 완료할 예정이다. 지난해 4분기 영업이익 1조5000억원을 기록해 '1조 클럽'에도 복귀했다.
업계 관계자들은 "올해도 7조원 투자 계획을 세우는 등 SK가 그룹 차원에서 SK하이닉스 지원에 나섰다"면서도 "2015년 삼성전자가 샤프 인수에 나섰을 때도, SK하이닉스가 도시바 이미지센서 공장을 추진했을 때도 한국 기업을 피한 바 있기에 이번 인수도 일본의 태도가 관건"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