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10일이면 박근혜 정부가 개성공단을 폐쇄한 지 꼭 1년이 되는 날이다. 정부를 믿고 개성공단에서 10년 넘게 공장을 돌렸던 123개 기업들과 수 천개 협력업체들은 졸지에 삶의 터전을 잃었다.
국가 안보라는 이유로 정부가 자의적으로 문을 닫았지만 정부로부터 받은 피해보상 수준은 터무니없이 적다는게 기업들의 볼멘소리다. 갑작스런 폐쇄로 거래처로부터 신용을 잃고, 대체생산지를 찾아 뛰어다닌 정신적 피해는 호소할 틈도 없다.
하지만 정부는 최선을 다했다는 입장이다. 핵·미사일로 도발하는 북한의 전향적 태도 변화를 이끌어내기 위해선 공장을 폐쇄할 수 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남북 경협의 상징으로 2004년 첫 생산품을 탄생시키며 위태위태했지만 10년 넘게 기계가 돌던 개성공단은 폐쇄 1년째를 맞으면서 달라진 남과 북의 거리만큼 정부와 기업들의 거리도 더욱 멀어지고 있는 모습이다.
◆"대학다니던 아들도 돈 번다" 피해 기업들 '아우성'
"한 순간에 회사가 무너졌다. 가정을 지켜야한다는 생각에 자전거 수리업체에 취직했지만 월급 140만원으론 생계가 어려워 최근 일자리를 옮겼다. 지금은 사촌이 운영하는 오리백숙 식당에서 주방 보조일을 하고 있다."(개성공단기업 협력업체 사장 고재권 씨)
"2015년 150억원이 넘었던 매출이 (공단이 폐쇄된)지난해엔 1억~2억원까지 추락했다. 원부자재 60억원어치가 개성공단에 남아 있는데 정부가 지원한 것은 22억원 뿐이다."(의류제조업체 만선 성현상 대표)
"국가가 국민의 재산권을 침해·제한할 경우 법률에 따라 정당한 보상을 해야 하는데 개성공단 폐쇄는 법률에 따라 이뤄진 조치가 아니므로 법적 근거가 없다는게 정부의 설명이다. 사후 보완 입법이라도 이뤄지도록 개성공단 피해보상 특별법이 제정돼야 한다."(개성공단기업 비상대책위원회 정기섭 공동위원장)
기계소리가 완전히 멈춘지 1년째가 되는 가운데 개성공단에서 기업을 운영했던 사장님들의 시름이 갈수록 깊어지고 있다.
7일 개성공단기업 비대위에 따르면 개성공단에 입주했던 125개 기업 중 절반 가량은 '개점휴업' 상태다. 특히 개성공단에 공장을 두고 생산량의 80~90% 가량을 의지했던 기업들은 심각한 상황이다. 특히 10곳 가량은 폐업을 목전에 두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비대위 관계자는 "입주 기업의 50% 정도 기업이 절반 이상 매출 감소를 겪었고, 앞으로도 기업들의 부채가 계속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고 우려했다.
입주기업들에 각종 물품을 납품했던 협력업체들의 사정은 더욱 좋지않다.
주요 거래처가 사실상 사라져 많은 기업이 파산하거나 파산 위기에 놓였지만, 입주 기업 당사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보상 대상에서 제외됐기 때문이다. 개성공단 협력업체는 5000여 곳, 종사자는 10만 여명 정도로 추산된다.
한 협력사 대표는 "추운 겨울인데 직원들 월급은 벌써 8개월째 밀려있고, 납품업체 여기저기선 돈 달라고 찾아온다"면서 "돈 나올 구멍이 없어 대학다니는 아들까지 휴학시키고 일을 시키고 있는 실정"이라고 토로했다.
비대위에 따르면 개성공단 입주기업들이 실제 입은 피해 규모는 '1조5000억원+알파(α)'에 이른다. 토지나 건물 등 투자자산, 유동자산 외에도 지난 1년간의 영업손실 3147억원, 영업권 상실에 따른 피해액 2010억원을 포함한 수치다. 이 가운데 정부는 현재 3분의 1가량만 피해액으로 인정하고 지원을 진행하고 있다.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전재성 교수는 "한국이 북한과 의미있는 교류·협력을 추구하고, 북한이 비핵화 및 진정한 평화체제 구축에 임할 경우 더욱 진전된 개성공단 사업 환경을 마련할 수 있을 것"이라면서 "기업들이 개성공단에서 안정적으로 사업할 수 있도록 제도적으로 보장하고 국제화를 추진할 경우 중장기적으로 북한의 변화까지 추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