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11월 삼성협력사 채용 한마당에서 구직자들이 공고를 확인하고 있다. 삼성그룹의 적극적인 지원으로 이뤄진 이 협력사 채용박람회는 지난해 말에도 열려야 했지만 이뤄지지 않았다. /오세성 기자
기업과 정부의 채용이 움츠러들며 청년들이 취업절벽에 내몰리고 있다.
지난해 하반기 신입 공채에 도전했던 취업준비생들은 하루 평균 3시간(182.8분) 동안 자료를 수집하고 4시간(242.4분) 동안 자기소개서를 작성했다는 조사결과가 나왔다. 그러나 취업의 문은 굳게 닫혀 있어 취준생들의 애를 태우고 있다.
잡코리아가 지난해 하반기 공채에 지원했던 취준생 681명을 설문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96%가 '공채시즌에 준비 시간이 부족해 어려움을 겪은 적이 있다'며 이 같이 응답했다.
청년들이 취업에 겪는 어려움은 점차 커지고 있지만 청년실업률은 계속 높아지는 상황이다. 통계청의 고용동향에 따르면 2015년 청년실업률은 9.2%였고 2016년에는 9.8%로 더욱 심각해졌다. 통계청이 국제노동기구(ILO) 기준에 부합하도록 만든 고용지표에는 청년층 체감실업률이 22% 수준이라는 분석도 나왔다.
올해는 사정이 더욱 나쁘다. 채용의 주축을 담당하는 10대 그룹들이 '최순실 게이트' 등의 여파로 채용 계획을 확정하지 못한 상태이기 때문이다.
12일 재계에 따르면 지난해 1만4000명을 채용했던 삼성그룹은 상반기 채용이 어려울 전망이다. 최순실 게이트의 직격탄을 맞은 삼성그룹은 검찰조사와 청문회, 특검 등의 영향으로 경영이 마비된 상태다. 특히 사장단 인사가 중단된 것이 큰 영향을 끼쳤다.
◆10대 그룹 채용 한파… 일정도 못 잡아
삼성은 각 계열사가 신규 채용 수요를 조사해 그룹에 제출하면 그룹이 이를 검토하고 채용 규모를 확정한 뒤 세부 일정 등을 세운다. 계열사 수요는 각사 사장들이 결정할 내용이지만 사장단의 거취가 불확실해지며 수요 조사부터 멈춰버린 것이다.
삼성 관계자는 "누가 남고 누가 나갈지 모르는 상황인데 신입 공채를 임의로 진행할 수는 없는 일"이라며 "사장단 인사가 이뤄진 후에야 각 계열사에서 공채 업무가 진행되고 이를 다시 취합하는 과정이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공채 프로세스의 시작이 될 사장단 인사는 특검이 종료된 이후 추진한다는 계획이다. 재계에서는 4월 이후에나 사장단 인사가 이뤄질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통상 3월에 이뤄졌던 공채가 미뤄지는 것은 불가피한 상황이다.
사장단 인사가 이뤄진 이후도 문제는 발생한다. 이전까지는 그룹 컨트롤타워인 미래전략실이 계열사별 수요를 수렴해 검토하고 채용인원을 늘리는 등의 작업을 해왔지만 특검 이후 미래전략실은 해체될 예정이다. 그룹 차원에서의 작업을 진행하는 '주체'가 사라지는 셈이기에 혼선이 예상된다. 때문에 재계에서는 맏형인 삼성이 상반기 공채를 건너뛰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하고 있다.
다른 그룹들의 형편도 비슷하다. 삼성을 포함해 10대 그룹 가운데 채용 계획을 세우지 못한 곳은 현대자동차와 LG, 롯데 등 7곳에 달한다. 현대차는 통상 3월에 상반기 공채를 해왔지만 아직 세부적인 채용 일정과 규모를 확정하지 못했다. 현대차 관계자는 "국내외 정세가 불안정해 채용을 준비할 경황이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매년 4000명가량을 채용해온 LG그룹은 이달 내 전체적인 윤곽을 잡겠다는 방침이다.
◆최순실 사태 일으킨 정부, 공무원 채용도 줄여
기업들의 공채 일정을 얼려버린 최순실 게이트는 결국 정부에 책임이 있다. 정부가 앞장서 고용을 확대해야 한다는 책임론도 나온다. 하지만 정작 공무원 채용은 6년 만에 처음으로 줄어든다. 지난해 공무원 2만5556명을 채용한 정부는 올해 2만5307명을 선발할 예정이다. 사기업의 불안한 고용환경에 공무원 시험으로 발길을 돌린 청년들에게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다.
공무원 채용 감소는 각 지자체들이 뽑는 지방직 공무원 신규채용이 줄어든 영향이 크다. 올해 지방직 공무원 채용은 지난해 2만186명에서 902명 줄어든 1만9284명에 그친다. 특히 서울시의 경우 지난해 3485명을 채용했지만 올해는 685명(19.6%) 줄어든 2800명을 뽑을 계획이다. 경기도 역시 채용규모를 지난해 3554명에서 올해 3342명으로 212명 줄였다.
재계 관계자는 "최순실 게이트뿐 아니라 국회에서 기업규제 목적의 법안들이 줄줄이 마련되고 있는 것도 기업들이 과감한 채용을 하지 못하게 하는 요인"이라며 "채용시장에서 기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70%를 넘는 만큼 기업 활동을 활성화해야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청년 창업을 강조하는 것도 채용시장이 얼어붙었기 때문인데, 각종 규제는 더하면서 청년에게 창업을 요구하는 것도 어불성설"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