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탄핵을 다루고 있는 박영수 특별검사팀이 또 다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희생양'으로 삼으려 하자 재계에서는 "종로에서 뺨 맞고 한강에서 눈 흘긴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특검이 13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피의자 신분으로 소환조사했다. 특검이 이 부회장을 소환한 것은 지난달 12일 이후 두 번째다. 특검은 최순실씨와 정유라씨에 대한 지원이 경영권 승계를 위한 대가성 뇌물이었는지 밝혀내겠다는 입장이다. 이재용 부회장은 이날 오전 출두하면서 기자들에게 "오늘도 모든 진실을 특검에서 성심껏 말씀드리겠다"고 밝혔다.
◆특검, '이재용 구속' 의지 보인 셈
첫 번째 소환조사에서 특검은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과정에 삼성이 청와대를 통해 국민연금에 압력을 행사했다고 보고 이를 집중 추궁했다. 이를 토대로 이 부회장에 대한 구속영장도 청구했지만 법원은 특검의 논리 부실을 문제 삼으며 이를 기각했다. 통상 구속영장 청구를 기각할 때 도주우려가 없다거나 증거 은폐 위험이 없다는 이유를 드는 것을 감안하면 이례적인 일이었다.
이후 국민연금이 합병에 찬성하도록 압력을 가했다는 증거를 찾지 못하자 이번에는 삼성이 청와대를 통해 공정거래위원회에 압력을 가했다는 논리를 세웠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통합으로 삼성SDI가 보유하고 있던 삼성물산 주식을 처분하는 과정에서 청와대가 삼성에게 혜택을 제공했다는 주장이다. 국민연금 대신 공정거래위원회로 조사 방향을 바꾼 것은 이 부회장에 대한 구속영장을 재청구하기 위해서다. 국민연금 사례에 대해서는 이미 논리가 부실하다는 법원의 질타를 받은 터여서 기존 혐의로 다시 구속영장을 청구해봐야 기각될 가능성이 높다.
◆순환출자 해소 가이드라인은?
2015년 12월 공정거래위원회는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으로 강화된 순환출자 고리를 해소하라는 취지의 가이드라인을 발표했다. 그해 9월 마무리된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으로 인한 것이었다. 당시 삼성SDI는 삼성물산 1115만주와 제일모직 500만주를 보유하고 있다가 합병을 하며 신주를 받았다. 현행 공정거래법은 합병에 의한 계열출자가 발생하면 취득·소유한 주식을 6개월 내에 처분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삼성SDI는 공정거래법 개정 이후 발생한 첫 사례였고 이에 공정위는 '합병 6개월이 되는 2016년 2월까지 500만주(약 8000억원)를 처분하라'는 가이드라인을 제시한 것이다.
특검는 공정위가 내부적으로 1000만주를 처분해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지만 삼성 승계에 도움을 주고자 청와대가 압력을 넣어 처분 규모를 절반인 500만주로 줄였다고 보고 있다.
특검의 의혹 제기에는 공정위가 우선 반발했다. 공정위는 "당시가 해당 규정의 첫 사례로 구체적인 집행 기준이 미비했다. 9월 8일 삼성이 최초로 유권해석을 의뢰했고 당시 외부 전문가 등 위원 9명으로 구성된 전원회의를 거쳐 '신규 순환출자금지 제도 법집행 가이드라인'을 제시했다"고 밝혔다.
또한 검토 과정에서 1000만주 매각이 적절하다는 의견이 나왔을 뿐이지, 그것이 결론으로 정해졌던 것도 아니라는 입장이다.
◆삼성, 공정위 案 대로 이행… "1000만주였어도 따랐을 것"
삼성 역시 특검의 주장을 반박하고 나섰다. 당시 공정위가 발표한 가이드라인은 법 해석에 관한 참고지침일 뿐 주식처분명령 등을 내린 것은 아니었다. 삼성은 "공정위 유권해석에 이견이 있었지만 순환출자를 해소하고자 하는 의지가 있었기에 500만주를 자발적으로 처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당초 삼성은 공정거래법과 관련해 로펌 두 곳에 문의했고 문제가 없다는 답변을 받았다. 순환출자가 단순해지는 것뿐이기에 주식을 매각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엄밀한 해석을 위해 자발적으로 공정위에 유권해석을 요청했고, 정부 가이드라인에 따르기로 결정했다는 설명이다.
공정위의 가이드라인에 따라 2개월 안에 삼성물산 500만주를 매각하며 삼성SDI가 어려움을 겪은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 때문에 이재용 부회장은 본인이 직접 주식의 일부를 매입하기도 했다.
삼성 관계자는 매각 주식이 1000만주에서 500만주로 줄었다는 주장에 대해 "단기간 내 매각하는 과정에서 어려움을 겪을 순 있었겠지만 지분을 따져보면 그렇게 팔더라도 문제가 없다"고 답했다. 합병 직후 통합 삼성물산 지분의 38.85%는 삼성측이 보유하고 있었다. 삼성물산의 자사주 지분 13.8%와 우호세력인 KCC 지분 8.97%를 합치면 62.62%에 달한다. 공정위가 처분을 권한 주식 500만주는 2.64%에 불과하며 1000만주를 팔더라도 62.62%에서 5.28%가 줄어드는 것뿐이다.
삼성 관계자는 "청와대에게 특혜를 받는다면 주식을 매각하는 기간부터 바꿨어야 했을 것"이라며 "1조원 가까운 주식을 60일 내에 매각하는 것은 벌을 받은 것으로 봐야지, 특혜라 볼 수 없다"고 선을 그었다.
특검과 삼성의 공방을 지켜보는 재계에서는 한숨 돌렸다는 반응과 억울하다는 반응이 엇갈린다. 한 재계 관계자는 "특검이 삼성 때리기에 집중하면서 다른 그룹으로 수사를 확장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라 다행"이라며 "삼성 외에 다른 그룹들은 특검에 제대로 대처하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없는 죄도 뒤집어썼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증거가 차고 넘친다던 특검이 계속해서 조사를 벌이고 있다"며 "정작 청와대는 건드리지 못하면서 만만한 대기업은 죄인이라는 결론을 내고 억지로 끼워 맞추려는 모습에 착잡함을 느낀다"고 억울함을 드러냈다.
한편 특검은 이 부회장의 새로운 혐의를 입증하고 오는 15일을 전후로 구속영장을 재청구한다는 방침을 세운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