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램 시장 호황이 한동안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다. 사진은 지난 1월 SK하이닉스가 LPDDR4X 규격 최대용량인 8GB로 출하한 모바일 D램. /SK하이닉스
D램 반도체 시장 호조가 올해도 지속될 것으로 예측되며 이 시장을 양분하고 있는 삼성전자·SK하이닉스 실적에도 청신호가 켜졌다.
15일 반도체 시장조사업체 D램익스체인지에 따르면 지난해 4분기 세계 D램 매출 규모는 전 분기 대비 18.2% 증가한 124억5400만 달러(약 14조1849억원)였던 것으로 집계됐다. 매출 규모 증가에 대해 D램익스체인지는 "성수기 수요 증가에 PC·모바일·서버 등 용도별 D램 제품의 가격 급등이 겹치면서 시장 규모가 커졌다"고 분석했다.
모바일 D램은 스마트폰 판매 호조로, PC용 D램은 공급 부족으로 전 분기보다 평균 가격이 각각 30% 이상 올랐다. PC나 모바일에 비해 서버용 D램 가격 상승폭은 낮았지만 올 1분기에 급등할 것으로 D램익스체인지는 내다봤다.
◆D램 호황… 한국 기업이 수혜
D램 시장에서 한국 기업의 점유율은 74.2%에 달했다. 삼성전자가 점유율 47.5%로 전 분기보다 12%늘어난 매출 59억1800만 달러를 기록했고 SK하이닉스는 26.7%로 33억3000만 달러의 매출을 올렸다. 3위 기업인 미국 마이크론은 시장 점유율 19.4%로 매출 24억2100만 달러를 기록했다. 상위 3사의 시장 점유율은 93.6%에 달한다.
D램 가격 상승으로 제조업체들의 영업이익률도 높아졌다. D램익스체인지는 지난해 삼성전자가 45%, SK하이닉스가 36%, 마이크론이 14.9%의 영업이익률을 거둔 것으로 분석했다.
그간 우려를 샀던 중국의 반도체 굴기 영향은 당장 발생하지 않을 전망이다. 도이치뱅크에 따르면 지난해 상위 3개 회사의 D램 설비투자는 전년대비 32% 감소했다. 올해 역시 전년 대비 6%가량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대부분 기업들이 D램이 아닌 3D낸드플래시 메모리에 투자를 집중하고 있기 때문이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올해 D램 설비 증설 계획이 없으며 마이크론의 경우 D램 생산라인 일부를 낸드로 전환하는 추세다. 초기에 막대한 투자비용이 들어가는 D램에서는 그동안 들인 투자의 결실을 느긋하게 맛보며 차세대 시장인 낸드에 대한 투자를 이어가겠다는 의도다. 현재 기술로도 D램 수요를 감당할 수 있다는 계산 역시 작용했다.
하지만 중국의 반도체 굴기는 시장에 우려를 가져오기 충분했다. 칭화유니그룹은 난징에 300억 달러(약 35조원)를 들여 메모리 반도체 공장을, 칭화유니그룹의 자회사 XMC도 240억 달러(약 28조원)을 들여 우한에 메모리칩 공장을 짓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3D낸드는 물론 D램까지 생산해 중국 내 수요를 감당하겠다는 구상이다. 중국 정부 역시 "2025년까지 1조 위안(약 171조원)을 투자해 반도체 산업을 일으키겠다"고 2014년 선언해 시장에서는 공급과잉을 우려해왔다.
◆중국발 공급과잉 우려는 덜어
D램익스체인지는 "D램 제조업체들의 생산설비 확충이 올해 하반기까지는 큰 영향을 끼치지 않을 것"이라며 오히려 그전까지는 공급 부족 문제가 심화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또한 1분기 PC용 D램 가격이 전 분기 대비 40% 오르고 2분기에도 가격 상승은 지속될 것으로 예상했다.
세계적인 IT 자문기관 가트너 역시 올해 세계 반도체 매출이 전년 대비 7.2% 증가한 3641억 달러(약 425조원)에 달할 것으로 전망했다. 이는 기존 전망보다 141억 달러 상향된 것이다. 가네시 라마무르티 가트너 리서치 총괄 부사장은 "반도체 시장이 상승세를 유지하면서 올 한 해 호전된 상황을 이어 나갈 것으로 예상한다"며 "메모리 시장의 수급상황은 마진 회복을 위해 평균 판매가를 올리는 메모리 반도체 업체들에 긍정적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NH투자증권 이세철 애널리스트는 "최근 D램 가격이 상승하며 생산이 늘어 공급과잉에 빠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일었지만 되레 이러한 우려가 반도체 업체들의 증산을 억제시켜 호황을 지속시킬 것"이라고 내다봤다.
◆차세대 시장 선점… SK 웃고 삼성 울고
D램 시장에서 함께 웃었지만 3D낸드 시장에서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상황이 약간 다르다. 매출의 70%를 D램에 의존하고 있는 SK하이닉스는 낸드플래시 시장의 대세로 자리 잡은 3D 낸드에 공격적인 투자를 하고 있다. 중장기 기술 경쟁력 강화를 위해 2024년까지 총 46조원을 투자하겠다는 '그랜드플랜'에 따라 올해 7조원을 투자하기로 했고 이달에는 일본 도시바의 메모리 사업부문 지분 인수전에도 참여했다. 현재 4위에 머무르고 있는 차세대 3D 낸드 메모리 시장에서 경쟁력을 끌어올리기 위해서다. 도시바 지분인수를 통해 기술경쟁력을 높이고 공격적인 투자로 생산라인을 갖춰 삼성전자를 따라잡는다는 것이 SK그룹과 SK하이닉스의 청사진이다.
현재 3D낸드에서 가장 앞선 기술로 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곳은 삼성전자이지만 표정은 밝지 못하다. 2013년 업계 최초로 3D낸드를 양산하며 최대 2년 이상 벌어졌던 기술격차는 6개월까지 줄었고 경쟁사들의 생산라인 확충도 마무리 단계에 있기 때문이다. 삼성전자의 평택 공장도 2분기부터 3D 낸드를 본격 양산할 계획이기에 시장에서는 올해 하반기부터 가격경쟁이 치열하게 펼쳐질 것으로 전망한다. 지난해 반도체 사업에서 40% 넘는 영업이익률을 내고 13조6000억원의 영업이익을 낸 삼성전자는 특검 이슈가 겹치며 글로벌 2위 낸드 업체인 도시바 지분 인수전에도 참여하지 못했다.
업계 관계자는 "삼성전자가 압도적인 기술 우위에 있었지만 외부 이슈로 초기투자가 지연되며 이제는 2차 치킨게임에서 생존을 걱정해야 할 처지가 됐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