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E사는 지난 2005년 A벤처캐피탈과 체결한 전환사채(CB) 인수계약에 따라 A벤처캐피탈에 CB를 발행한다. 이 회사의 대표이사 A씨는 계약에 따라 1년 후 전환사채 중 70%를 사들여 2년 후 전환권을 행사한다. E사는 2006년 B증권과 체결한 신주인수권부사채(BW) 인수계약에 따라 B증권에 BW를 발행한다. 대표이사는 B증권사에서 이 사채를 사들인 특수목적회사(SPC)에서 50%의 신주인수권 증권을 취득한 뒤 2년 9개월 후에 권리를 행사한다. E사는 2008년에도 C은행과 체결한 BW 인수계약에 따라 C증권에 BW를 발행한다. 이 회사의 대표는 이 가운데 50%를 취득한 후 2년 뒤 신주인수권을 행사한다.
이 회사의 대표 A씨가 6년여의 소송 끝에 증여세를 내지 않게됐다. 최대주주나 경영진의 전환사채(CB)·신주인수권부사채(BW) 취득 행사 목적이 기업 경영이나 자금조달 과정에서 나온 정당한 경영행위 중 하나였기 때문이다.
다만 중소기업 최대주주나 경영진에게는 경종을 울리기 됐다. 사실 BW나 CB를 발행한 후 대주주가 헐값에 사들여 재산을 증식하는 것은 코스닥기업들이 많이 악용해온 주테크 방식이다. 대기업의 편법 경영권 승계때 악용한다는 여론을 의식해서인 지 이 기법을 자주 사용하지는 않는다.
신주인수권부사채는 일정 기간이 지난 뒤 특정 가격으로 새 주식을 인수할 수 있는 권리(워런트)가 붙은 회사채다. 전환사채는 매입 후 일정 기간이 지나면 사전에 정해진 가격과 비율에 따라 발행회사 주식으로 전환할 수 있는 권리(전환권)를 부여받는 채권이다.
15일 법무법인 세종에 따르면 대법원은 E사 A대표의 사채권 행사과정에서 얻은 이익에 대해 "상속세법 제2조 제4항을 적용해 증여세를 과세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판시했다.
대법은 "이 회사 대표이사의 CB·BW 취득과정이 사업 목적에서 벗어나 증여세를 부당하게 회피하거나 줄이기 위해 신주를 헐값에 사들였다고 보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이번 판결로 과세당국의 태도 변화가 예상된다. 최근 과세당국은 기업경영이나 자금조달 과정에서 최대주주나 경영진이 취득한 전환사채 및 신주인수권증권에 나온 이익에 대해 거래나 이익 취득 경위를 따지지 않고 과세하는데 적극적이었다.
이번 사건은 2011년 조세심판단계부터 2017년까지 6년을 끌어온 사건이다.
법무법인 세종은 "항소심 과정에서 과세당국은 패소 가능성이 높아지자 변론종결 직전에 E사에 대한 세무조사를 실시해 추가로 증거를 확보하기도 했다"면서 "결국 과세권을 합리적인 범위 내로 제한하는 판결을 이끌어 냈다"고 설명했다.
기업들의 자금조달 부담도 덜 전망이다. 최대주주나 경영진의 적극적인 참여를 유도할 수 있어서다. 올해 주주총회에서는 자금 조달을 위해 기업들이 주주총회에서 정관 변경을 통해 주식연계채권 발행액을 크게 늘리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현대상선은 이달 24일 임시 주총에서 CB 발행한도를 8000억원에서 2조원, 주식발행한도를 6억주에서 10억주로 늘리는 정관 변경안을 상정할 예정이다.
의료기기 업체인 루트로닉은 16일 임시 주총에서 CB·BW·EB 발행한도를 100억원에서 1000억원으로 확대하기로 했다. 자동차 부품업체인 우림기계도 CB·BW·EB 발행한도를 200억원에서 2000억원으로 확대한다.
재계 한 관계자는 "일반 사채 발행 때보다 낮은 금리로 투자자들을 모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어디까지나 사채다"면서 "정당한 경영과정에 취득한 사채에서 발생한 이익에 증여세를 과세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판결은 환영할 만 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최대주주나 경영진의 CB·BW 재테크나 지분늘리기에는 제동이 걸릴 전망이다.
지난해 회삿돈으로 헐값에 신주인수권을 사들인 뒤 비싸게 팔아 수 십 억원을 챙긴 코스닥기업 대표가 재판에 넘겨진 바 있다. 이 회사 대표는 타인 명의로 산 1008만주의 신주인수권을 주가가 급등한 이듬해 사채업자에게 팔아 72억원의 매매 차익을 얻었다. 투자금 대비 무려 28배에 달하는 차익이었다. 타인 명의로 신주인수권을 매매한 것은 대표 소유의 신주인수권이 대량으로 처분된 사실이 시장에 알려지면 주가가 폭락할 것을 우려해서였다. 그는 이 72억원을 다시 자기 명의로 산 952만주의 신주인수권 행사 자금으로 사용해 회사 지분을 늘렸다. 이 신주인수권 행사와 2008년 10월 유상증자로 노 모씨의 지분은 당초 1%에서 27%까지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