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한 대형 유통매장에서 소비자들이 삼성전자 SUHD TV를 구경하고 있다. /오세성 기자
지난 14일 박영수 특별검사팀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하자 글로벌 시장에서 삼성에 대한 신인도가 하락하고 있다. 재계는 이번 사태가 삼성으로 대표되는 한국 기업들에 대한 신인도 하락으로 이어질까 우려하는 모양새다.
15일 재계에 따르면 특검이 이재용 부회장에 대한 구속영장을 재청구하자 외신들은 일제히 이를 보도하고 나섰다. CNBC는 "이 부회장이 구속 여부를 기다리는 동안과 구속이 확정될 경우 그룹 경영이 어려워진다"고 보도했고 블룸버그통신은 "한국이 전국적인 부패 스캔들에 빠졌다"고 전했다. CNN 역시 "삼성이 거대 정치 부패 스캔들의 일부로 조사받고 있다"는 소식을 미국 전역에 알렸다. 이는 글로벌 시장에서 삼성에 대한 이미지를 악화시킬 여지가 크다.
당장 오는 17일로 예정된 하만 주주총회에서 삼성과의 합병에 반대하는 주주들의 목소리가 커질 전망이다. 삼성전자는 전장사업 경쟁력 확보를 위해 미국 하만 인수를 결정했다. 합병이 성사되려면 피인수기업인 하만 주주총회에서 절반을 넘는 주주의 찬성표를 받아야 한다.
디네시 팔리월 하만 CEO 등이 찬성표를 모으고 있지만 이번 사태로 반대파의 명분이 강화돼 삼성의 하만 인수 비용이 늘어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합병에 반대하는 주주들은 삼성이 하만 주식에 보다 많은 비용을 지불하길 원하고 있다.
해외 시장 매출 감소도 우려할 부분이다. 삼성 매출의 약 90%는 국외에서 발생하며 특히 미국(34%)과 중국(15%)이 매출의 절반을 차지한다. 해외 생산·판매법인, 연구소도 200여곳에 이른다. 이러한 노력으로 삼성전자는 지난해 북미 생활가전 시장에서 17.3%의 연간 점유율을 기록하며 처음으로 현지 기업 월풀(16.6%)을 제치고 1위에 오르는 성과도 거뒀다.
하지만 미국은 자국 기업 보호를, 중국은 한국의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 도입을 구실로 한국 기업에 대한 무역 장벽을 높이는 상황이기에 삼성의 영광이 올해도 이어질지는 장담할 수 없다. 특검의 구속영장 청구가 현지 기업을 보호하고자 하는 각국 정부에게 제재를 강화할 좋은 '이유'로 활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이 해외 기업을 대상으로 하는 해외부패방지법(FCPA)을 적용할 경우 삼성은 공공사업 입찰 금지, 수출 면허 박탈 등 큰 타격을 입게 된다.
◆삼성뿐 아니라 국내 기업 전반 타격 우려
이번 구속영장 청구를 보도하며 외신은 한국 재벌들에 관심을 보였다. 중국 정부가 관리하는 온라인 매체 중국망은 "한국 재벌은 정치인과 뿌리 깊은 연결고리를 가지고 있다"고 전했으며 블룸버그통신과 파이낸셜타임즈도 삼성, 현대차그룹 등을 언급하며 "한국의 재벌이 특혜를 얻고자 대통령에게 자금을 제공했다"고 보도했다.
외신 보도가 한국의 재벌과 정치권 사이의 스캔들로 비춰지자 재계에서는 한국 기업 전반에 대한 신인도 하락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삼성에 이어 재계서열 2위인 현대차그룹은 90조원 수준인 매출의 85.7%가 해외에서 발생한다. LG그룹은 2015년 해외 시장에서 매출 100조원을 넘겼고 SK그룹도 2013년 이후로는 국내보다 해외 매출 비중이 더 높다. 한국보다 해외 평판에 더 신경 써야하는 상황이 된 셈이다.
한 재계 임원은 "한국 기업들은 그 동안의 싸구려 이미지를 이제 벗어나고 있는 단계"라며 "몇 년 전만 하더라도 미국 드라마에서 한국 가전과 자동차는 빈곤층을 상징하는 물품으로 나오기 일쑤였다"고 말했다. 이어 "기업 브랜드 인지도를 쌓는 데는 오랜 시간이 들지만 무너지는 것은 한순간"이라며 "이번 사건으로 한국 기업은 부패 기업이라는 이미지를 뒤집어쓰면 돌이키기 어려울 것"이라고 우려했다.
또 다른 관계자 역시 "북미 시장이 특히 중요한데, 제품을 잘 만들어 소비자매체 평가에서 높은 점수를 받더라도 '미국산은 고급이고 한국이나 일본산은 가성비가 높은 중급 브랜드'라는 식의 이미지를 극복하는 것은 쉽지 않다"며 "겨우 프리미엄 시장에 진출했는데 이런 식으로 한국 기업들 자체에 대한 이미지가 훼손된다면 앞으로 제품이나 기술력을 제대로 평가받지 못한다"고 한숨을 쉬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