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이즈 캔슬링이 음향업계의 핵심 기술로 자리잡았다. 사진은 노이즈 캔슬링 기술이 적용된 보스의 무선 이어폰 QC30. /보스
고음질을 두고 치열하게 경쟁하던 음향업계가 이제는 '노이즈 캔슬링'에 몰두하고 있다. 소비자들이 어느 장소에서라도 쾌적하게 음악을 즐기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22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무선 오디오 시장이 급격한 속도로 커지고 있다. 미국 시장조사기관 슬라이스 인텔리전스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미국 온라인 쇼핑몰에서 판매된 헤드폰과 이어폰 가운데 75%는 무선 제품이었다. 국내 시장도 같은 양상을 보이는 추세다. 소니코리아가 자사 헤드폰과 이어폰 매출 비중을 분석한 결과 2013년 26%에 그치던 무선 제품군 비중은 2016년 49%까지 성장했다.
무선 헤드폰·이어폰의 비중이 높아진 것을 두고 업계에서는 소비자들의 청음 환경이 변화했다고 풀이하고 있다. 50년 넘는 역사를 가진 음향기기 브랜드 보스(BOSE)의 관계자는 "최근 통근, 업무, 학업, 여행 등 이동 중에도 음악과 멀티미디어를 즐기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다"며 "시끄러운 야외 환경에서도 쾌적한 음악 감상 조건을 제공하는 것이 중요해졌다"고 말했다. 과거에는 소비자가 음악을 감상하기 좋은 환경을 직접 마련하고 즐겼다면 이제는 제조사들이 소비자가 있는 어느 장소라도 음악 감상실이 될 수 있도록 만든다는 의미다.
야외에서 음악을 즐기는 일은 생각보다 어렵다. 자동차와 전철 등 교통수단 소음과 다른 이들의 대화소리, 공사장의 소음 등 음악을 즐기기에 방해되는 요소가 너무 많기 때문이다. 음향업계가 이에 대한 대안으로 마련한 것이 노이즈 캔슬링이다.
노이즈 캔슬링은 주변의 소음을 상쇄시키는 기술이다. 노이즈 캔슬링이 적용된 헤드폰 등은 내장된 마이크로 주변 소음을 녹음하고 분석해 그와 반대되는 음파를 사용자에게 들려준다. 특히 공사장이나 전철 등 일정한 패턴의 소음이 들려오는 곳에서 그 효과가 뛰어나다. 개발 초기에는 파일럿의 비행소음을 줄이기 위한 용도로 사용됐지만 이제는 일반 소비자들도 혜택을 누리고 있다.
우선 1978년부터 노이즈 캔슬링 기술을 선보이며 독보적인 존재감을 자랑해온 오디오 브랜드 보스는 최근 무선 이어폰 'QC30'을 출시했다. 세계 최초로 '12단계 노이즈컨트롤' 기술을 탑재한 이 제품은 사용자가 주변 소리의 볼륨을 본인 선호에 따라 직접 조절할 수 있다. 강력한 노이즈 캔슬링 기능이 자동차 소리 등 주변 소음을 모두 제거할 경우 사용자가 주변 환경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해 위험에 처할 수 있다는 점이 고려됐다. 사용자는 안정적으로 음악을 들을 수 있는 환경에서는 노이즈 캔슬링 볼륨을 키워 외부 소음을 모두 지워버릴 수 있고 길을 걸으며 음악을 들을 때에는 노이즈 캔슬링 볼륨을 낮춰 주변 소음을 거슬리지 않는 정도로만 들을 수 있다.
소니는 사용자의 헤어스타일과 안경 착용 여부 등을 감안해 노이즈 캔슬링을 최적화하는 기능을 갖췄다. /소니코리아
소니는 독자 기술인 '센스 엔진'을 통해 원하는 음역대의 소음만 지우는 기술을 구현한다. 소니가 지난해 출시한 헤드폰 'MDR-1000X'는 고음과 저음을 선택적으로 상쇄하는 '주변음 모드'가 탑재됐다. 음악과 목소리는 고음에 해당하며 차량 엔진 소리 등은 저음에 속한다. 주변음 모드는 저음과 고음을 모두 들리도록 하거나 한 가지를 선택해 안 들리도록 하는 기능을 지원한다. 음악을 감상할 때 시끄러운 전철 소음은 듣지 않으면서 내려야할 역을 알려주는 안내방송은 놓치지 않고 들을 수 있는 셈이다.
독일 오디오 명가 젠하이저 역시 '노이즈 가드'라는 이름으로 노이즈 캔슬링 기능을 제공하고 있다. 지난해 말 출시된 젠하이저 헤드폰 'PXC 550'의 경우 헤드폰 외부에 2개, 내부에 2개로 총 4개의 마이크가 소음을 실시간 측정한다. 외부 마이크는 고음을, 내부 마이크는 저음을 수집·분석해 넓은 주파수 대역에 효과적으로 대응한다. 또한 소음 정도에 따라 주변 소음을 적절히 감소시켜주는 '노이즈가드 어댑티브 모드'를 제공한다.
소니코리아 관계자는 "처음 노이즈 캔슬링 기술을 도입할 때는 소음을 차단하는 것이 고음질 음악을 즐기는 방법이라 생각했다"면서도 "노이즈 캔슬링을 적용하다보니 주변 소음이 너무 차단돼 사용자가 위험할 수 있고 대화 등에 방해를 준다는 것을 인식했다. 앞으로는 각 개인에 최적화 시키는 방향으로 노이즈 캔슬링 기술이 진화할 것"이라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