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가계부채 급증세를 막기 위해 올 들어 은행권의 대출 규제를 강화하자 서민들이 저축은행·상호금융 등 비은행권으로 내몰리고 있다. 상대적으로 대출금리 부담이 커지면서 금융 취약계층의 부채 부담만 늘어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2일 한국은행 가계신용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말 가계부채 잔액은 1344조3000억원으로 1년 새 141조2000억원(11.7%)이나 급증했다. 연간 가계부채 증가액 기준 사상 최대치다.
조영무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최근 정부가 비은행권에 대한 대출규제를 강화하고 있지만 가계부채 증가세가 진정될 것으로 기대하긴 어렵다"고 말했다.
◆대출 규제 '풍선효과'…"가계부채 질적 악화 우려"
전문가들이 꼽는 정부 대출규제의 허점은 은행권 대출 규제 강화에 따른 '풍선효과'다. 저축은행, 상호금융, 새마을금고 등 비은행권으로의 서민 대출이 나날이 증가세를 기록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실제 비은행 예금취급기관의 가계대출 잔액은 291조3000억원으로 전년 대비 42조6000억원이나 늘어났다. 대부업체 등 기타금융중개회사의 가계대출 증가액 역시 지난해 3분기 5조3000억원에서 2금융 대출규제가 실시된 4분기 8조5000억원으로 급증했다.
조 연구위원은 "풍선효과가 심화되면서 가계부채의 질적 악화 측면도 우려된다"며 "취약계층일수록 대출 규제가 강화된 은행권에서 밀려나 비은행권 대출을 늘리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고 진단했다.
정부는 지난해 초 은행권에 이어 7월 보험권에도 이와 비슷한 수준의 대출규제를 실시했다. 주택담보대출에서 소득심사를 강화하고 차주가 대출 초기부터 원금과 이자를 나눠 갚도록 했다. 올 들어선 지난달 13일부터 상호금융과 새마을금고에서도 이와 같은 대출 규제를 실시하고 있다.
조 연구위원은 "지난해 하반기 규제 강화 이후 보험권의 가계부채 증가 속도가 더욱 빨라졌음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 보험권 가계대출 증가액은 지난해 2분기 2조2000억원에서 3분기 1조9000억원으로 축소됐지만 4분기 다시 4조6000억원으로 크게 늘었다.
조 연구위원은 "보험업권에서 대출규제 강화에도 최근 가계대출 증가세가 빨라진 만큼 상호금융과 새마을금고의 대출규제가 확대되더라고 가계대출 증가세가 진정될 지는 미지수"라고 말했다.
예금은행 및 비은행예금취급기관 가계대출 증가율.
◆대출 원리금 상환 압박 시달리는 취약계층
대출규제 확대로 서민들이 대출 원리금 상환 압박에 시달린다는 점도 문제점으로 지적됐다. 은행권 대출 기준 강화로 소득 증빙이 쉽고 부채 상환 능력이 양호한 가계는 원금 상환 부담 증가에도 은행권 대출을 계속 이용할 수 있지만 부채 상환 능력이 취약한 가계는 강화된 대출 규제로 우선 시행된 은행권 대출을 이용하지 못할 개연성도 큰 것으로 나타났다. 금융 형평성 논란이 제기된다.
LG경제연구원이 최근 금융권 대출 규제 강화로 가계 유형별 대출 원리금 상한액 부담을 분석한 결과 적은 소득, 고령층 또는 청년층, 불안정한 취업 상태, 자가(自家)가 아닌 계층 등의 부채 원금 분할 상환에 대한 부담이 상대적으로 높았다.
가계 유형별 대출 상환 방법은 소득 상위 20% 계층인 소득 5분위 가구의 전부 또는 일부 만기 상환 비중이 1년 동안 10.3%포인트 하락했다. 반면 소득 하위 20% 계층인 소득 1분위 가구는 0.6%포인트 상승했다. 또 가구주 연령이 30세 미만인 청년층 가구는 전부 또는 일부 만기 상환의 비중이 1년 동안 4.8%포인트 하락했다. 가구주 연령이 60세 이상인 고령층 가구는 2.2%포인트 떨어졌다.
조 연구위원은 "상대적으로 소득 상위 계층에 비해 소득 하위 계층이, 청년층에 비해 고령층의 대출 구조 개선 정도가 미미함을 보였다"고 분석했다.
이에 따라 서민금융 강화의 명목으로 대출 한도를 늘려주고 대출 금리를 낮춰주는 등의 정책은 미봉책에 그칠 가능성이 높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부채상환능력이 취약한 계층은 부채를 더욱 늘리는 결과만을 초래할 것이라는 설명이다.
조 연구위원은 "부채 상환 능력과 의지를 면밀히 심사해 자체적인 부채 상환이 어렵다고 판단되는 가계에는 신속한 개인워크아웃, 개인 회생, 개인 파산 등 채무재조정 절차를 통해 새 출발 할 수 있는 기회를 조기에 부여해야 한다"고 제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