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기업계와 야당 등에서 적극 추진하고 있는 생계형 적합업종 법제화가 국제 통상 문제의 파고를 넘을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소상공인이나 중소기업 영역을 보호하자는 취지에서 생계형 적합업종으로 분류되는 두부, 순대, 전통떡, 고추장·간장, 한식·중식업 등을 법으로 규정해 대기업이나 외국기업의 진출을 막을 경우 세계무역기구(WTO) 등의 통상 규범을 어겨 나라간 분쟁까지 불거질 수 있다는 우려가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법제화를 찬성하는 쪽에선 전통식품 제조·판매가 대부분인 데다, 설사 외국계 기업이 관련업에 들어온다고 하더라고 피해가 크지 않아 국가간 통상 마찰까지 우려하는 것은 비약이라는 주장이다.
6일 중소기업중앙회와 정치권 등에 따르면 현재 국회에 발의돼 있는 적합업종 법제화 관련 법안은 '중·소상공인 적합업종 보호에 관한 특별법'(우원식 의원), '생계형 적합업종 지정에 관한 특별법'(이훈 의원), '대·중소기업 상생협력 촉진에 관한 법률'(백재현 의원) 등 세 개다.
이 가운데 적합업종 지정기간에 제한이 없고, 사업 인수·개시·확장을 모두 금지하는 우원식 의원 발의안이 가장 강력하다.
주무부처인 중소기업청도 2011년 당시 첫 지정한 적합업종이 보호 최대 연한인 '3년+3년'이 지나고 올해 일부가 해제됨에 따라 중소기업연구원 등에 관련 용역을 의뢰해 놓은 상태다.
동반성장위원회에 따르면 금형(3월)을 시작으로 골판지상자, 전통떡, 청국장, 순대, 장류(9월) 등 49개 품목이 올해 적합업종에서 해제된다.
이들 품목이 그동안 관련 대기업 등의 진입을 막아왔던 적합업종이란 울타리 밖으로 나가게 되면서 생사의 기로에 서게 된 것이다.
문제는 기존 권고 위주의 적합업종제도를 보다 강력하게 하기 위해 정치권과 중소기업계에서 법제화를 주장하고 있는 가운데 반대하는 쪽에서 통상 문제를 다시 들고 나왔다는 점이다. 이는 대기업 중심 단체인 전국경제인연합회와 산하기관인 한국경제연구원(한경연)에서 꾸준히 제기해왔던 것이기도 하다.
한경연 윤상호 연구위원은 "법제화를 찬성하는 쪽은 저자본, 저부가가치, 낮은 진입장벽, 경쟁력 확보 한계 등을 가진 것을 생계형 업종으로 구분하고 있다. 또 경쟁이 심화돼 생존율과 부가가치 창출이 낮은 업종에 생계형을 포함시키고 있다. 그럼에도 이들 업종에 대기업이 진출하는 것은 바로 부가가치 창출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어느 특정 업종이 영세업자 또는 중소기업에게 적합한지 판별할 수 있는 지식과 통찰력이 우리에겐 없다"는 말로 적합업종 법제화에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적합업종을 지정하고 법제화를 할 경우 기존 시장 구조를 고착화시켜 결국엔 모든 피해가 소비자에게 돌아갈 것이란 설명이다.
산업정책을 총괄하는 산업통상자원부 내에서도 찬반 여론이 혼재돼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산업부 박대규 기업협력과장은 사견을 전제로 "통상은 상대방이 있다. (상대국이)문제제기 여부에 따라 상황이 달라질 수 있다. (적합업종 법제화를 통해)정부 개입을 높일수록 통상 마찰 우려가 있다. 무역 비중이 높은 우리에겐 보수적 접근이 불가피한 것도 이때문"이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법제화를 찬성하는 쪽은 통상 문제를 우려해 시작도 해보지 않는 것은 말이 안된다는 입장이다.
참여연대 집행위원장을 맡고 있는 김성진 변호사는 "적합업종 법제화는 정당한 국가권력의 행사로 통상법이 도모하고자하는 무역개방의 취지에 전혀 반하지 않는 제도다. 법제화를 반대하면서 통상마찰의 우려를 강조하는 것은 만에 한 건 있을지도 모를 법적 분쟁의 가능성을 과장하는 것에 불과하다"고 꼬집었다.
법조계에선 중소기업 적합업종가 국제 통상규범에서 말하는 '최혜국대우원칙' 위반 가능성은 낮다는 입장이다. 또 제도 운용시 주의만하면 '내국민대우원칙' 위반 가능성도 높지 않다는 견해를 내놓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