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가소득 연 5000만원 시대를 앞당기는 데 조직의 모든 역량을 결집해야 한다. 미래 먹거리인 신성장 동력을 찾기 위한 업무 혁신과 농업·농촌 활력화에 힘써야 한다."(김병원 농협중앙회장 신년사)
김 회장이 "더는 농민이 들러리가 돼서는 안 된다"며 한 말이다. 농협중앙회는 얼마전까지 '덩치만 큰 곰'이라는 평가를 받아 왔다. 그러나 김 회장이 선장이 돼 거대한 농협호(號)의 키를 잡으면서 농민을 위한 농협중앙회로 다시 태어나고 있다.
그는 농협이 '농민을 위한 조직'이라는 본연적 역할로 되돌아가야 한다는 점을 늘 강조하고 있다. 역대 농협중앙회 회장들도 농촌을 지원하겠다며, 갖가지 약속을 내걸었지만, 김 회장 처럼 '농민'을 전면에 내세워 실천한 사례는 드물었다.
김 회장의 농민 사랑이 꽃샘추위까지 녹이고 있다.
7일 농협중앙회와 농협금융지주에 따르면 농협은 전국 750곳 농업센터에 콤바인, 트랙터 등 농민들이 자주 사용하는 농업기계 기증을 추진하고 있다.
농업인들이 체감할 수 있는 지원은 이게 다가 아니다. 그는 지난해 사료(6%), 비료(17%), 농약(7.6%) 등의 가격을 내리고 영농자금 대출금리도 1%포인트 인하했다. 남해화학, 농협홍삼, 농협케미컬 등 서울에 있는 자회사 본사를 공장이 있는 지방으로 내려보내 현장에서 근로자와 함께하며 생산성을 높이고 관리비용은 낮추도록 했다.
조직도 슬림화 했다. 국정감사 때마다 지적을 받아 온 골프회원권도 다 판다. 범 농협이 보유하고 있는 골프 회원권 규모는 기명식 회원권 32.5좌 133억원과 무기명 회원권 68좌 640억원 규모다.
농협 관계자는 "지금껏 농협을 거쳐 간 많은 회장이 '농민만 바라보겠다'는 판박이 약속을 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처음과 많이 달라진 모습을 보며 당황했던 적이 많다. 권력자의 속성을 그대로 드러낸 것이다"면서 "하지만 김 회장의 횡보를 보면 '물망초심 초심불망'(勿忘初心 初心不忘, 초심을 잃지 않으면 일을 그르치지 않는다)는 말이 떠오른다"고 말했다.
꿈을 잃은 농민들에게 희망을 주는 진짜 '농민 대통령'이란 평가 나오는 이유다.
현장경영을 보면 김 회장의 공약이 빈말이 아님을 알 수 있다. 그는 취임후 줄곧 현장에서 농업인들을 만나고 그들의 얘기를 듣고 고충을 덜어 주는 데 힘을 쏟았다. 지난해 취임하자마자 현장을 찾은 김 회장은 발품을 팔아 6개월 동안 130여 곳을 누볐다. 거리로 따지면 4만㎞에 달한다.
김 회장이 온 후로 농협의 분위기는 크게 달라졌다. 김 회장의 주문에 따라 지난 3월부터 전 직원(금융지주, 농업경제 포함)이 농협이념중앙교육원에서 '농심(農心)'을 다시 생각하는 연수를 받는다. 전 직원을 대상으로 대대적인 교육이 시행된 것은 농협 역사상 처음이다. 농협 관계자는 "농협 설립 이념, 농업인 상생 등이 주 교육 내용"이라고 전했다.
업무 분위기도 예전 같지 않다. 김 회장은 지역농협 직원으로 시작해 중앙회장까지 오르며 40여 년 동안 농협의 역사와 함께한 '산증인'으로 누구하나 꾀를 부릴 틈이 없다. 목표를 이루려는 성취욕구가 워낙 강해 직원들이 따라가기 벅찰 정도다. 지난해 전국 자치단체장들에게 자신의 서신과 함께 출하 메뉴얼을 돌린 것만 봐도 이를 잘 알 수 있다.
'농민이 농협의 주인'이 되기에는 아직 갈 길이 멀다.
김 회장은 공개석상에서 이런 말을 했다. "농협에 몸담으면서 농업·농촌의 절박한 현실을 많이 경험했다. 그래서 농협의 부족한 점과 해결해야 할 숙제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회장으로서 임기 4년을 8년 처럼 부지런히 현장을 다니며 부족한 부문을 채워 나가고 숙제를 하나씩 차근차근 해결해 나가겠다"고.
김병원 회장에게 농민은 첫사랑이다. '농민을 주인으로 만들겠다'는 그의 바람대로 첫사랑과의 결실이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