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턱 낮아진 수제맥주
수제맥주 소매점 진출 작업이 속도를 내고 있다. 정부가 수제맥주(크래프트맥주) 규제를 완화했기 때문이다. 수제맥주는 소규모 양조장에서 자체 방식으로 소량 제조하는 것을 말한다. '크래프트맥주'라고도 불린다. 정부가 양조 규제를 완화하면서 소규모 양조장들이 시장을 형성했다.
13일 업계에 따르면 현재 국내 맥주시장에서 수제맥주가 차지하는 비중은 약 200억원이다. 초기 단계다. 하지만 최근 수제맥주가 인기를 끌면서 10년 안에 점유율은 10%로 매출 규모는 약 2조원대까지 커질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최근 3년간 국내 수제맥주 시장은 연평균 30%가 넘는 성장률을 보이고 있다.
2014년 주세법이 개정되면서 외부 유통을 비롯해 중소 브루어리 설립 기준 완화, 세율 인하 등 관련 규제가 풀렸다. 이로인해 대기업도 수제맥주 시장에 너도나도 뛰어들고 있다.
신세계와 식품회사 SPC그룹과 진주햄, 패션기업 LF도 수제맥주 사업에 진출했거나 준비하고 있다. 신세계는 정용진 부회장이 수제맥주 사업을 진두지휘하고 있다. 신세계 수제맥주 전문점 '데블스도어'는 센트럴시티, 센텀시티, 스타필드 하남 등 3곳에서 운영 중이다.
SPC그룹은 독일식 수제맥주집 그릭슈바인을 운영하면서 소매점 유통을 노리고 있다. 진주햄이 1세대 수제 맥주 회사 카브루를 인수했다. LF는 올해 초 주류 유통업체 인덜지 지분 50%를 인수하며 주류시장 진출을 선언했다. 올해 하반기 강원도 속초에 맥주 증류소 공장을 세울 계획이다.
AB인베브는 국내에 수제맥주 브랜드 전문법인 제트엑스벤처스를 세웠다. 서울 신사동에 '구스 아일랜드 펍'을 오픈했고, 서울 강남구 역삼동에 '구스 아일랜드 브루하우스'를 열었다.
지난달에는 정부가 소규모 맥주업체가 만든 수제 맥주도 대형 할인점이나 수퍼마켓 같은 소매점에서도 판매할 수 있도록 결정했다. 또한 맥주 원료 범위를 확대해 귀리, 고구마, 메밀, 밤 등이 함유된 맥주도 만들 수 있도록 했다.
이로인해 국내 수제맥주 시장은 더욱 확대될 것이란 분석이다. 맥주에 다양한 원료를 사용하면 종류가 많아지고, 자연스럽게 수입 맥주 대체 효과도 나타날 것으로 봤다.
실제 대형마트에서 수입맥주가 국산맥주의 매출을 넘어섰다. 이마트에서 지난달 1일부터 23일까지 전체 맥주 가운데 수입맥주 매출 비중이 51.7%를 기록했다. 홈플러스 역시 지난달 수입맥주 매출 비중이 50%에 달했다. 롯데마트도 지난달 수입맥주 매출 비중이 47.4%로 나타났다. 이달 또는 내달에는 50%를 넘어설 전망이다.
수제맥주 업체 관계자는 "그간 대형마트에서 국내 수제맥주를 찾아보기는 쉽지 않았다"며 "규제 완화로 인해 대형마트, 편의점 등에서 수입맥주에 밀렸던 점유율을 다시 찾아 올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정부의 규제 완화가 수제맥주 전문점을 운영하거나 주류업계 진출을 노렸던 유통·식음료 대기업에만 유리하다는 지적도 있다.
소매점 진출을 위해서는 수제맥주를 병이나 캔 제품으로 만들고 이를 저장하고 운반할 창고와 차량이 필요한데 소규모 사업자들에게는 무리가 따른다. 소규모업체들이 진입하기 어려운 환경 때문이다.자칫하면 소규모 수제맥주 업체에겐 '빛좋은 개살구'와 다를바 없다.
하지만 정부는 이와 관련된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수제맥주 규제 완화로 맥주 맛이 개선될 것으로 보이지만 소규모업체들은 수입맥주를 비롯해 국내 대기업과 경쟁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