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대째 소규모 사업장을 운영하는 박모(55)씨. 그는 물려받은 알짜 부품 제조 업체를 운영하고 있다. 경기침체가 지속되면서 하루아침에 무너질 수 있다는 불안감에 노후가 걱정이다. 그는 '위험 중립형' 투자자로 분류된다. 그는 요즘 주가가 오르자 고민에 빠졌다. '주가가 너무 올라 막차 타는 것 아니냐'는 생각이다. 고심 끝에 국내 한 은행 프라이빗뱅커(PB)를 찾았다. PB의 조언대로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을 택했다. 원금 비보장 공모형 ELS에 자산의 약 15%를 넣었다. 그는 "1억원을 예치하면 은행에서 계산해준 세후 이자가 연간 150여만원 안팎에 불과하다. 금리가 오르기 전에 한 푼이라도 더 챙길수 있는 곳에 투자하게 됐다"고 전했다.
#. 벤처 기업에서 일하는 이모(36)씨. 그의 요즘 해외 ELS가 좋다는 주변의 말에 솔깃했다. 고심 끝에 만기가 된 적금 3000만원을 털어 'SX5E지수'와 연계된 ELS에 투자했다. "없는 셈 치고 묻어둘 생각이다. 세계 경제가 언제까지 이대로 가지는 않을 것이다"면서도 불안감을 감추지 못했다.
종목형 주가연계증권(ELS)의 원금 손실 공포 속에 해외 지수형 ELS 발행 비중이 전체 ELS의 90%에 달한다. 다만 최근 발행되고 있는 지수형 ELS 대다수가 '홍콩항셍지수(HSI)'와 '유로스톡스50(EURO STOXX50)' 등 2개 지수를 기초자산으로 활용하고 있는 데 대한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미국 금리 인상, 영국의 브렉시트 이후 커진 유럽연합(EU)의 갈등, 중국 경제성장률 둔화 등 각종 변수로 ELS 기초자산으로 활용되는 해외 지수들의 변동성이 확대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이같은 현상이 계속된다면 홍콩H지수 발(發) ELS 쇼크가 재현될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우려한다.
◆ELS, 10개중 9개가 해외 지수형
6일 한국예탁결제원과 유안타증권에 따르면 지난 3월 ELS 발행액 7조8314억원 중 해외 지수형이 88.2%나 됐다.
지수형 ELS 발행액 6조9076억원 가운데 유로스톡스50과 HSI가 기초자산으로 들어간 지수형 ELS는 각각 6조4880억원, 4조3302억원이었다.
S&P500도 3조 2499억원에 달했다. NIKKEI225와 HSCEI도 각각 1조9469억원, 2984억원이었다.
지수형 ELS는 보통 지수 2개 내지 3개를 기초자산으로 상품이 만들어진다. 기초자산 가운데 등락률이 더 낮은 지수를 기준으로 가입 시점 대비 50~60% 수준 아래로 떨어지지 않으면 미리 약속된 일정 수익률을 올릴 수 있다. 하지만 예상에서 빗나간다면 원금 손실은 고스란히 투자자의 몫이다.
전문가들은 지수형 ELS의 기초자산 쏠림 현상이 향후 국내 ELS 시장에 충격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예로 ELS 투자계약 때 100원이었던 기초자산지수가 만기 전에 한 번이라도 60원 아래로 내려가면 손해를 보는 식이다. 따라서 변동성이 큰 지수일수록 투자위험이 높을 수밖에 없다.
지난해 시장을 공포로 몰아넣은 홍콩항셍중국기업지수(HSCEI·H지수)를 기초자산으로 한 주가연계증권(ELS)이 대표적이다. 당시 금융당국은 H지수가 8000선 아래로 내려가면 2조원 어치의 ELS가 녹인(Knock-in·원금 손실) 구간에 들어간다고 추산하기도 했다. 7000선 아래로 가면 손실은 눈 덩이 처럼 불어난다.
유안타증권 이중호 연구원은 "다양성을 확보할 수 있는 ASX200, TWI, FTSE China A50 등이 더 많이 활용돼야 한다"면서 "현재와 같은 특정 자산 누적현상이 지속된다면 재차 HSCEI지수 KI(Knock-In)과 같은 사태 발생하지 말라는 법이 없다"고 우려했다.
◆93%원금비보장, "손실 감수하겠다"
ELS는 강남 부자들도 선호하는 재테크 수단이다. KEB하나은행과 하나금융경영연구소가 내놓은 '2017 코리아 웰스 리포트'에 따르면 부자들이 가장 선호하는 상품은 국민 재테크 상품으로 불리는 지수연계증권(ELS)과 지수연계신탁(ELT)이었다. 다음은 단기 금융상품(1년 미만 정기예금, MMDA, CMA등)이었다. 불확실한 금융시장에 대비해 적정수준의 유동성을 확보하겠다는 심리로 보인다.
때문에 투자처에 굶주린 뭉칫돈은 위험 비중이 높은 사모·원금비보장 ELS상품에 몰린다. "저금리 시대에 '고수익'이라는 이름을 걸고 나온 이들 펀드는 출시하자마자 거액 자산가에게 불티나게 팔려 나간다"고 증권가 한 관계자는 전했다.
실제 지난 3월 ELS발행 액 중 공모가 약 6500억원 증가하고(사모 약 1200억), 원금비보장형이 약 9800억원 증가했다. 특히 전체 ELS의 93%가 원금비보장형이다. 반면 원금보장형은 2100억원 가량 줄었다.
ELS는 만기까지 특정 지수나 개별 종목이 일정 수준 이하로만 떨어지지 않으면 '은행금리+알파(α)'의 수익을 보장해 준다. 하지만 주가가 급등하지 않으면 수익률도 낮다. 높은 수익률을 보장하려면 풋옵션을 팔아야 한다. 문제는 여기서 발생한다. H지수 처럼 한순간에 주가가 급락하면 풋옵션 매도 손실은 눈덩이 처럼 불어나고, 최악의 경우 원금을 날리게 된다.
금융 당국은 2015년 하반기부터 H지수 ELS를 상환액만큼만 발행하도록 하는 증권사 자율규제를 시행하고 있다. 2015년 상반기 ELS 발행이 급증한 가운데 H지수가 급락해 이 지수를 기초자산으로 하는 ELS를 발행한 증권사들이 대규모 손실이 발생했다.
전문가들은 파생상품의 기본 지식과 이해가 부족한 사람들이 대박을 꿈꾸며 불나방처럼 달려드는 것을 경계했다. 또 철저한 리스크 관리를 당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