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학제품에 대한 공포감이 커지고 있지만 석유는 여전히 우리 삶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사진은 바레인에서 석유를 생산하고 있는 시추기. /뉴시스
1960~70년대 봤을 법한 수두 환자가 급증하고 있다. 특히 영아들 위주로 환자가 늘어났으며 지난해 수두 환자는 약 5만명에 달했다. 시대에 맞지 않는 수두 환자 증가 원인의 한 가지로 '수두 파티'가 꼽힌다. 수두 파티는 일부 부모들이 수두에 걸린 아이를 찾아 자기 아이들에게 옮기도록 하는 행위다. 백신이 아닌 자연 감염으로 수두를 앓도록 해 면역력을 끌어올리겠다는 취지인데, 그 속내에는 극단적인 케미칼 포비아가 자리하고 있다.
지난해 옥시 가습기 살균제 사태를 기점으로 사회 전반에 화학약품에 대한 불신이 퍼져나갔다. 살균제 성분 중 하나였던 폴리헥사메틸렌구아디닌(PHMG)의 독성으로 인한 희생자가 발생한 사실이 밝혀진 것. 이어 아모레퍼시픽 치약에서 가습기 살균제 성분인 CMIT·MIT이 발견되고 유한킴벌리 물휴지에서 기준치를 초과한 메탄올이 검출되자 화학제품을 일체 거부하는 '노-케미' 라이프가 유행하고 있다.
모든 화학제품을 사용하지 않고 살아가겠다는 노-케미 라이프가 인기를 얻었지만 실제 가능한 일일까.
17일 석유화학업계에 따르면 석유를 정제해 얻는 화학제품들은 이미 일상 속 깊숙이 자리 잡았다. 가볍게는 우리가 사용하는 전자기기와 자동차 가전제품에 들어가는 플라스틱과 필름, 케이블 등이 석유에서 생산된 제품이다. 이에 더 나아가면 의류와 생명을 구하는 약에 이르기까지 석유에서 기원한 제품들이 줄을 잇는다.
에틸렌은 석유, 가스, 석탄 등에서 추출할 수 있는 화학 제품의 기초 소재다. /한화케미칼
석유에서 휘발유와 경유 등을 정제한 뒤 남은 '나프타'를 다시 정제하면 '화학의 쌀'이라 불리는 에틸렌을 얻을 수 있다. 이 에틸렌을 중합하면 플라스틱 용기로 많이 쓰이는 폴리에틸렌이 된다. 말랑말랑하고 잘 늘어나는 성질을 갖춘 덕에 일회용 도시락통과 비닐 백 등에 사용된다. 공기와 수분을 차단하는 밀봉이 가능하면서도 70도 고온에도 유해물질을 배출하지 않기에 음식물을 담는데 쓰인다.
플라스틱 용기로 많이 쓰이는 다른 소재는 폴리프로필렌(PP)이다. 에틸렌과 함께 생산되는 프로필렌을 중합해 만드는 이 소재는 고온에도 형질 변형이 없고 독성을 가지지 않아 일상생활에서 폭넓게 사용된다. 음식이나 화장품을 담는 플라스틱 용기와 유아용 젖병, 이불 안감, 돗자리 등 다양한 제품이 폴리프로필렌으로 만들어진다.
우리가 입는 옷도 석유에서 만들어진 것이 많다. 천연 소재인 면, 모, 가죽과 함께 나일론, 폴리에스테르, 아크릴섬유 등 다양한 합성섬유가 옷을 만드는 데 사용된다. 무색무취인 일반 화학제품과 달리 벤젠, 톨루엔, 자일렌 등은 독특한 냄새를 가져 방향족이라 불리는 데, 이 방향족 기초유분들이 합성섬유의 원료다. 나일론은 벤젠에서 카프로락탐을 제조한 뒤, 폴리에스테르는 자일렌으로 고순도 텔레프탈산을 제조해 원료로 삼아 만든다.
이 외에 생활용품과 의약품도 석유로 만든다. 샴푸에는 세정력을 높이는 계면활성제가, 화장품에는 히아루론산과 글리세린이 들어간다. 특히 글리세린은 천연화장품에도 필수적으로 들어가는 성분이다. 소염진통제 아스피린 역시 초창기에는 버드나무 껍질에서 추출한 아세틸살리실산을 주 원료로 했지만 이제는 대량생산을 위해 합성하고 있다. 석유에서 추출하는 벤젠이나 페놀에 이산화탄소를 결합시켜 살리살신을 만든 뒤 에스테르화 반응을 거치면 '살리실산 메틸'이 되는데 이것이 바로 우리가 약국에서 구입하는 아스피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