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일부터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재판이 한 달여의 서류증거(서증)조사를 마치고 본격적인 증인심문에 들어간다.
지난달 7일부터 28일까지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7부(김진동 부장판사)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등 삼성 임원 5명에 대한 공판을 아홉 차례에 걸쳐 진행했다. 검토해야 할 서류가 많았기에 해당 공판들은 모두 서증조사로 구성됐다. 서증조사는 검찰과 피고인이 채택에 동의한 서류증거를 공개하고 이에 대한 양측의 의견을 밝히는 절차다.
양측의 치열한 공방 오간 서증조사에서는 특검의 증거 부족이 드러나며 삼성 변호인단이 판정승을 거뒀다는 평가가 나온다.
◆특검 "모든 과정이 승계를 위한 대가"
아홉 차례 공판에서 특검은 최순실 게이트와 연관된 삼성의 모든 행보가 이재용 부회장의 원활한 경영권 승계를 위한 청탁이라고 주장했다. 첫 공판에서 박주성 검사는 "최순실에 의한 국정농단 사건은 민간인 최순실의 국정개입과 사익추구를 위한 정경유착이라는 두 가지 고리로 이뤄졌다"며 "그 핵심이 삼성그룹 관련된 뇌물 사건"이라고 강조했다.
특검은 삼성의 승마지원이 최순실씨 등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정유라만을 위해 이뤄졌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한 증거로 ▲오탈자가 있는 코어스포츠 용역 계약서 ▲관련자들의 통화 시간 기록 ▲승마 관련 지원을 서두른 정황 등을 제시했다.
삼성의 미르·K스포츠 재단에 출연금도 최실씨와 박근혜 전 대통령의 관계를 알았기에 재계에서 가장 많은 액수를 내놓았다는 것이 특검의 시각이다. 특검의 공소장에 따르면 삼성은 동계스포츠영재센터, 미르재단, K스포츠재단 등에 총 298억2535원을 출연했다.
특검은 이러한 지원의 대가로 삼성이 이재용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 과정에서 지원을 받았다고 지적한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과정에서 반대 의견을 내놓을 가능성이 높은 국민연금 의결권행사전문위원회가 열리지 못하도록 압박을 했고 합병 후 신규 순환출자고리 해소 가이드라인 수립에서도 공정거래위원회에 압력을 넣어 매각 주식을 줄였다는 논리다.
◆삼성 "특검, 증거 제시 못해... 전부 추측"
특검의 주장이 사실로 입증되려면 ▲삼성의 최순실 국정농단 진상파악 ▲삼성의 최순실씨 모녀 지원 ▲최순실씨 모녀와 박 전 대통령의 삼성 지원 등의 연결고리가 모두 맞아떨어져야 한다. 하지만 특검이 연결고리를 모두 입증하는 증거를 내놓진 못했다는 것이 삼성 변호인단의 의견이다.
변호인단은 "미르·K스포츠 재단에 대한 지원은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가 재계 서열대로 할당한 것 뿐"이라고 주장했다. 세 번째 공판에서 특검이 공개한 권오준 포스코 회장 진술조서에도 "당시 급하게 진행됐고 전경련이 할당한 것으로 안다"며 "청와대의 요청이 급하게 됐고 따르지 않을 경우 불이익이 있을 수 있다"는 진술이 포함됐다. 이에 따라 각 재단에 기금을 출연한 다른 기업은 피해자로 보고 삼성만 범죄자로 취급해서는 안 된다는 논리다.
승마 지원에 대해서는 2014년 대한승마협회 회장사가 되며 지원을 시작했고 최순실씨에 대해 안 것은 2015년 7월경이라는 입장이다. 7월 25일 박 전 대통령이 이재용 부회장을 만나 승마 지원이 지지부진하다며 심하게 질책했고, 이에 따라 박상진 전 삼성전자 대외협력 사장 등이 본격적인 지원에 나섰다. 최순실씨가 코어스포츠 발기인에 포함되지 않는 등 배후에서 활동했기에 이들의 개입을 늦게 깨달은 셈이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신규 순환출자고리 해소 등에서도 삼성의 반박은 이어진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당시 시장이 우호적이었던 만큼 청와대에 청탁할 이유가 없었으며 청탁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다면 삼성엔지니어링은 왜 합병에 실패했냐는 논리다. 신규 순환출자고리 관련해서는 관련 공정거래법 개정 후 첫 사례였기에 공정위 내부 검토 과정에서 해석이 엇갈렸으며 법률 해석 의견서를 제출하긴 했어도 청탁한 바는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재판장 "특검은 색안경 벗어라"
아홉 차례 공판 과정에서 특검은 "변호인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 "말이 안 된다" 등의 날선 발언을 이어갔다. 하지만 강경한 발언과 달리 재판 과정에서는 허술한 모습을 자주 보였다. 공소장에서는 오타를 쉽게 찾아볼 수 있었으며 재판 내내 "생각된다" "상식적으로 보면" "피고인은 경영권 승계에 유리하게 활용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등 추론과 예단에 의지하는 표현을 사용했다. 가져왔어야 할 증거를 두고 재판에 참석하는가 하면 서증조사 내내 증거 제시보다 의견 제시에 치중하는 면모도 보였다.
이어진 특검의 추론과 날선 발언에 변호인단은 "특검이 결론을 정해둔 뒤 증거를 끼워 맞추고 있다"고 항변했다.
변호인단의 항변에도 특검의 태도가 고쳐지지 않자 재판장마저 화를 냈다. 김진동 부장판사는 특검에 "표현을 완곡하게 해라. 피고인이 거짓말을 한다는 표현 대신 특검 주장에 부합하는 증거라는 표현을 써라"라고 지적하며 "당신도 누가 색안경 끼고 심문하면 좋겠느냐"고 말했다. 또한 "서증에서는 재판장이 증거와 사건 인과관계를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해라. 장황한 의견 제시가 원활한 재판을 방해한다"고도 꾸짖었다.
법조계 관계자는 "특검은 공소장 일본(一本)주의를 비롯해 형사재판에 어울리지 않는 면모를 보이고 있다"며 "형사재판은 합리적 의심을 넘어서는 엄밀한 증거가 있어야만 유죄 판결이 내려진다. 그런 증거를 제시하지 못한 특검은 의심에 의존하고 있다"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