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4.20 : -> 카이사리(Kayseri,73km) 해발 1,054m
5일간의 결코 짧지 않은 방학을 끝냈다.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다. 지금 나의 일상은 자전거 타는 거다. 일상에 행복이 있다.
괴레메(Goreme)를 떠난 지 1시간 반 정도 지난 지점에 사루한(Saruhan)이라는 표지판이 나온다. '한'은 대상들의 숙소 카라반사라이를 지칭한다. 우리 나라 지명에 공무여행자에게 숙식을 제공하던 곳 '원'(이태원, 장호원 등)과 같다고 보면 된다. 카라반사라이 건물이 온전하다. 처음엔 '한'의 이름을 딴 영업장소인가 했다. 이런 맙소사. 제대로 '한'이다. 이런 행운이... 이 곳은 지도에도 없다. 내 가슴속에 행복이 살포시 스며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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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서정주는 '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는 그렇게 울고, 천둥은 먹구름 속에서 또 그렇게 울었나 보다'라고 노래했다. 한 송이 국화꽃도 결코 가벼이 피어나는 건 아닌 데, 하물며...
이번 실크로드를 따라 터키 횡단에 나선 연유는 길고도 깊다. 대학시절 산악부 대선배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실크로드를 이야기했다. 귀가 닳도록 들었다. 당시 실크로드는 달나라만큼이나 멀리 있었고, 해외여행은 우주여행만큼이나 상상의 영역에 머물던 시절이다. 그렇게 실크로드는 내 속에 나도 모르게 스며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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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 전 해외 어린이를 돕기 시작하면서 실크로드가 꿈틀거렸다. 작년 가을 3주간 키르기스스탄을 자전거로 돌아본 뒤부터 본격화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막상 터키행 비행기 표를 산 뒤부터 동요가 일었다. 나 이상으로 격렬한 야외활동을 즐겨하던 친구가 돌연사했다. 사인은 과로로 인한 심장마비다.
이런 걸음에 나설 때마다. "너 나이를 생각해라"고 하는 친구들의 말이 크게 들리기 시작했다. '그래, 나이는 속일 수 없어. 내 나이 칠십이야. 그 친구를 봐.' 친구들의 염려와 내 내면의 소리에 처음으로 귀를 기울이게 되었다.
갑자기 소심해진 난 자전거 대신 걷기로 맘을 바꿨다. 시간이 좀 지나면서 자전거 반, 걷기 반으로 수정했다. 그러다 출발 3일 전에 자전거로 다시 원위치했다.
이뿐이 아니다. 오래전에 돌아가신 부모님을 모시고 가야겠다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한 평생 태어난 곳을 떠나 보신 적이 없는 두 분의 사진을 가지고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아내는 '평소 안 하던 짓을 한다'며, '맘만 있으면 되지 뭘 그러느냐'고 노골적으로 언짢아했다.
사진/아름다운유산 우헌기(카이세리의 에르지예스산 / Erciyes : 3900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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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실크로드의 궤적을 따라가겠다면서도 그 길이 정확하게 어디로 나 있는지도 모른 채 여기에 왔다. 실크로드 전 구간을 걸어간 베르베르의 책, '나는 걷는다'를 봐도 어디 어디를 거쳐 갔는진 자세하게 나오지 않는다. '주 도로는 아나톨리아 반도 중부 고원지대를 횡단한다'는 정도만 알고 왔다.
그런데 운 좋게도 에게해 연안을 거쳐 아프욘카라히사르(Afyonkarashisar)에서부터 자전거를 타게 되면서 제대로 들어왔다는 걸 알게 되었다. 이거야말로 소 뒷걸음치다 쥐잡은 격이다.
카이세리(Kayesri) 도착 직전 에르지예스산이 잘 보이는 작은 마을에서 이른 점심을 먹었다. 완연한 봄이다. 어린 시절 익숙한 두엄 냄새가 난다. 이 냄새 도대체 얼마 만인가?
카이세리는 인구가 백만 명 넘는 큰 도시다. 현대 자동차, 쌍용 자동차, 한국타이어, 기아자동차 건물이 크게 자리 잡고 있다.
여기서 다음 목적지 시와스(Sivas) 까진 200km다. 이틀에 가기엔 좀 벅차다. 3일에 나누어 가면 딱 좋은데 숙소가 없다는 게 늘 맘에 걸렸다. 호텔(다이아몬드 호텔)에 여장을 풀자마자 고민을 이야기했다. 안내 여직원이 친절하게 여기서 80km 떨어진 마을(Geremek)에 있는 숙소를 하나 찾아 줬다. '사루한'을 발견했을 때만큼 즐거운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