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대출이 이젠 계륵(鷄肋) 같은 존재가 됐다. 정부가 구조조정에 꼬삐를 당긴다면 건전성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황금알을 낳던 가계대출도 '계륵'같다." (시중은행 A부행장)
자본확충을 해야하는 시중 은행들의 고민이 커졌다. 대우조선해양 사태를 계기로 '좀비기업' 퇴출이 본격화 한다면 은행들의 자산건전성에 영향을 줄 수 있어서다. 713조9000억원으로 불어난 은행권 가계 부채도 걱정이다. 미국이 추가로 금리를 인상할 경우 가계부채 문제는 자칫 금융권 시스템 리스크로 확산될 수 있다는 점에서 결코 가볍게 넘길 수 없는 사안이 아니다. 특히 자영업자 등 고금리 대출이 늘면서 가계부채의 질은 더욱 나빠졌다.
◆은행, 자본확충 잰걸음
7일 금융권에 따르면 올해 국내 은행의 은행채 만기 규모는 총 90조7210억원이다. 올해 만기가 돌아온 84조907억원에 비해 6조6303억원(8%) 많다.
이중 2분기에 22조9000억원, 3분기에 21조3000억원의 만기가 돌아왔거나 예정돼 있다.
은행들은 차환발행만이 아닌 신규 자금조달을 위해 새로 발행하는 물량까지 감안하면 올해 은행채 규모가 최근 5년 평균 발행액에 비해 최대 15조원 가량 많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차환 등을 위해 신한·KB국민·우리·KEB하나은행 등 4대 은행이 1분기에 조달한 자금은 6조6229억원이다. 지난해 같은 기간(3조137억원)보다 두 배 이상 늘어난 수치다.
은행별로는 우리은행이 2조1400억원으로 가장 많았다. KEB하나은행(2조529억원), 신한은행(1조2200억원), KB국민은행(1조2100억원)이 뒤를 이었다.
우리은행은 지난달 11일에도 8800억원 규모의 은행채를 발행했다.
미국이 추가로 금리를 올리기 전에 빚을 갚거나 필요한 자금을 미리 조달하려는 움직임으로 분석된다.
앞으로가 걱정이다.
기업 구조조정 작업이 더 깐깐해질 것으로 보여서다. 임종룡 금융위원장은 지난 3월 시중은행 등 주요 채권금융회사 구조조정 담당 임원들과의 간담회에서 올해 예정된 대기업(7월 발표) 및 중소기업(11월 발표) 대상 신용위험평가에서는 기존에 중점을 뒀던 재무위험 뿐만 아니라 산업·영업·경영위험까지 균형 있게 고려해 엄정한 평가가 이뤄지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대기업집단의 경우에도 부실 계열사의 취약 요인이 계열사로 전파되지 않도록 4월 중 주채무계열 소속기업체를 상대로 평가 대상을 선정하고 5월 중 재무상황 등을 점검하는 일정을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여기에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정부가 들어선 후 국내외 금융시장의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발행금리가 계속 오르고 있는 것도 부담이다.
미국 금리도 오르고 있다. 블룸버그 집계에 따르면 연방기금금리 선물시장에 반영된 6월 기준금리 인상 확률은 FOMC 개최 전날인 지난 2일 67.1%에서 성명 발표 후인 4일 97.5%로 치솟았다.
◆기업 부실, 은행 건전성 떨어질라
은행들이 앞으로 있을 기업구조조정에 긴장하고 있다. 기업 부실채권이 늘어나면 은행의 자산 건전성 비율은 떨어지기 때문이다.. 국내 은행들이 떠안고 있는 기업 부실채권은 2016년 말 기준 22조8000억원 규모다. 기업여신의 부실채권 비율은 2.06%다. 2012년 말(1.6%)에 비해 여전히 높다. 특히 조선업(11.20%), 해운업(5.77%), 철강제조업(4.09%) 등 일부 업종의 부실채권 비율이 높다.
부실이 한꺼번에 터질 가능성은 크지 않다. 하지만 은행은 기업 신용위험(Credit Risk)의 불똥이 튈까봐 걱정이다. 신규 자금지원 등으로 채권은행들이 새로 쏟아부어야 할 돈은 눈덩이 처럼 불어난 반면, STX 등의 사례 처럼 돈 받기가 갈수록 어려워져서다.
또 시중은행의 위험노출(익스포저·Exposure)은 겉으로 잘 드러나지 않는다. 기업 여신에는 기한부어음(Usance) 등과 같은 안전 여신도 섞여 있다.
713조9000억원에 달하는 가계부채도 부실의 뇌관이다.
자산 건전성이 떨어지면 그만큼 비싼 비용을 치르고 자금을 조달해야 한다.
이미 시장에서는 전조가 나타나고 있다. 지난해 10월 말까지만 해도 1.69% 수준이던 은행채(AAA등급) 5년물 금리는 올해 미 기준금리 인상이 단행된 후 지난 3월 말 현재 2.064%까지 상승했다. 우리은행은 1.95%의 금리로 8800억원 규모의 자금을 조달했다. 민평금리보다 무려 5.3bp 높은 수준이다.
하나금융투자 한정태 연구원은 "2017년에는 대출증가율이 둔화될 전망이기 때문에 대손율도 올라갈 가능성이 높다. 은행들의 경영전략을 보면 대부분 대출증가율을 4.0% 내외로 둔화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대출 증가율이 둔화되면 기업들의 자금사정은 악화될 수밖에 없고 한계기업들은 몰릴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대손율은 자연스럽게 올라올 가능성이 높은 셈이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