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화학업계가 범용소재 스프레드 확대에 힘입어 1분기 호실적을 달성했다. 사진은 롯데케미칼 여수공장 전경. /롯데케미칼
국내 화학업계 1, 2위인 롯데케미칼과 LG화학이 1분기 높은 실적을 달성하자 화학업계가 슈퍼사이클(장기호황)에 진입했다는 평가와 일시적인 호황일 뿐이라는 평가가 엇갈리고 있다.
7일 업계에 따르면 올해 1분기 롯데케미칼과 LG화학 두 회사의 매출과 영업이익은 각각 10조원과 1조5000억원을 넘겼다. 롯데케미칼은 매출 3조9960억원, 영업이익 8151억원을 기록하며 분기 사상 최대 영업이익을 달성했다. LG화학은 매출 6조4867억원, 영업이익 7969억원이라는 성적표를 받았다.
정유업체들의 화학사업도 견조한 실적을 보였다. 1분기 영업이익 4547억원을 기록한 SK이노베이션은 화학사업 비중이 45.2%에 달했고 같은 기간 에쓰오일도 영업이익 3238억원 가운데 43%를 화학사업에서 냈다.
화학업계의 호실적은 안정적인 유가와 견조한 제품 시황 덕분이다. 국제유가는 배럴당 50달러 선에서 안정적으로 유지되며 원재료 가격을 낮추는 효과를 내고 있다. 저유가로 인해 석유화학 업계의 신규 투자가 위축됐고 석유화학과 경쟁하던 석탄화학은 설비 경쟁력이 떨어지며 가동률이 낮아진 것도 국내 화학업계엔 호재다.
범용소재인 에틸렌, 벤젠, 폴리에틸렌(PE), 파라자일렌(PX), 부타디엔 등의 수요는 꾸준히 증가하고 있지만 업계에 대규모 증설은 없어 제품 가격이 높아지는 상황이다.
'석유화학의 쌀'이라 불리는 에틸렌은 톤당 1200달러 선에서 가격을 유지하고 있다. 지난해 초 공급과잉으로 톤당 900달러까지 하락했던 이후 꾸준히 반등한 결과다. 원재료 가격과 판매 가격 차이인 스프레드 역시 800달러를 넘어섰다. 2014년 에틸렌 스프레드가 400달러 수준이었음을 감안하면 두 배 가량 증가한 셈이다.
범용소재의 강세는 롯데케미칼과 LG화학의 실적에서도 잘 드러난다. 롯데케미칼은 LG화학보다 2000억원 가량 높은 영업이익을 올렸지만 매출은 LG화학의 절반 수준에 그친다. 이는 롯데케미칼이 범용소재 중심의 사업구조를 갖고 있어 범용소재 스프레드 상승효과를 크게 누린 것이 원인이다.
롯데케미칼은 총 매출의 53% 가량을 범용소재에서 내는데 제품별 연간 생산능력은 지난해 기준 에틸렌 282만톤, PE 166.5만톤, 폴리프로필렌(PP) 59만톤 등이다. LG화학은 고기능 ABS, 폴리올레핀(PO), 엔지니어링 플라스틱(EP), 고흡수성 수지(SAP) 등 고부가 제품군 위주의 포트폴리오를 갖췄다.
일각에서는 2014년 이후 에틸렌 신규투자가 위축됐고 2019년 이후 신규 증설도 줄어들 예정이어서 화학 산업이 장기호황에 들어갔다는 분석이 나온다. 그간 이어졌던 공급과잉이 저유가 영향으로 개선돼 2021년까지 공급부족 상황이 이어질 것이라는 관측이다.
하지만 기술 장벽이 낮은 범용소재가 호황을 이끌고 있다는 점은 문제로 남는다. 최근 높아진 에틸렌 스프레드에 대해 박진수 LG화학 부회장은 "역내 수급상황 때문에 에틸렌 스프레드가 비정상적으로 높다"며 "200달러만 나와도 괜찮다"고 평가한 바 있다. 또한 "기초제품 중심의 사업 구조는 좋은 땐 좋지만, 나쁠 땐 위험하다"는 견해도 밝혔다.
일례로 페트병의 원료인 고순도 테레프탈산(PTA)은 2012년 국내 생산량의 82%를 중국에 수출했지만 현재는 대표적인 공급과잉 품목으로 지정됐다. 범용제품은 생산에 고도의 기술력이 필요하지 않아 현지 기업들이 생산설비를 구축하고 자족자급에 나선 영향이 큰 것으로 풀이된다. 폴리염화비닐(PVC), 합성고무(BR) 등도 중국 자급률이 높아지는 상황이다.
업계 관계자는 "저유가 영향으로 신규 투자가 줄어들고 석탄화학 설비들의 가동률이 떨어진 덕에 국내 화학업계가 호황을 맞았지만 범용소재 중심의 호황이라 긴장을 늦출 수 없다"며 "범용소재 공급량은 쉽게 늘어날 수 있어 시황이 급격하게 변한다. 가격이 갑자기 폭락할 수 있으니 쉽게 시황을 타지 않는 고부가 제품 위주의 포트폴리오 구축에 힘써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