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화 가치와 금리, 물가가 동시에 오르는 '신(新)3고(高)'가 한국 경제의 회복 여부와 시기를 결정할 새로운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
원-달러 환율은 연일 빠른 속도로 떨어지면서(원화가치 상승) 올 1·4분기 달러화 대비 원화 절상률은 주요 20개국(G20) 가운데 3번째로 높았다.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1.25%에 묶어놨지만, 시장금리는 계속 오르고 있고, 장바구니 물가는 심상치 않은 상승세다.
저금리·낮은 원화가치(고환율)·국제 원자재 가격(원유) 하락의 3저(低) 효과를 발판으로 삼아 근근이 버티던 한국 경제가 정권 교체 초기와 전 정권 경제 수장들의 레임덕까지 더해지면서 새로운 위기와 맞닥뜨리게 된 것.
◆기업들 원화값 강세 부담, 유가 하락도 걱정
15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올해 1분기 말 원·달러 환율은 1118.4원이었다. 전 분기 말 1207.7원 대비 89.3원 하락(8.0% 절상)한 것이다.
G20을 놓고 보면 독일 등 유로화 사용국과 고정환율제인 사우디아라비아를 제외한 15개국 가운데 멕시코(10.7%) 러시아(9.5%) 다음으로 높은 절상률이다. 한국은 거꾸로 지난해 4분기에는 원화 절하율(원·달러 환율 상승)이 8.8%를 기록했었다.
안영진 SK증권 이코노미스트는 "달러화 강세가 어려운 상황에서 원화는 다른 신흥국 통화에 비해 북한 리스크 때문에 저평가됐다"며 "최근 세계적으로 위험자산에 대한 선호 심리가 강해지고 있어 하반기에는 달러당 1100원대에서 환율이 형성될 수 있다"고 말했다.
기업은 그동안 버팀목이 됐던 환율 효과가 사라지고 원자재(원유가격) 가격까지 오르는 열악한 환경에서 수출전쟁을 치러야 한다.
경제전문가들에 따르면 원·달러 환율이 100원 가량 오르면 삼성전자 전체 영업이익은 8000억원 안팎 늘어나는 것으로 추정된다. 현대차와 기아차도 각각 연간 1조2000억원, 1조3000억원의 영업이익이 늘어나는 것으로 알려졌다. 반대로 현대자동차그룹 산하 한국자동차산업연구소에 따르면 원·달러 환율이 10원 하락할 경우 자동차업계 매출이 연간 4200억원 감소한다.
여기에 유가하락까지 한국경제 부담으로 다가 오고 있다.
12일 뉴욕상업거래소(NYMEX)에서 거래되는 서부텍사스산 원유(WTI) 6월물은 전날보다 0.02% 상승한 배럴당 47.84달러에 마감했다. 브렌트유 가격은 이달 4일 48.38달러까지 떨어졌다. 불과 한 달도 안 되는 사이에 가격이 14%나 빠진 것이다. 미국 투자은행 골드만삭스는 미국 셰일오일을 국제유가의 최대 복병으로 지목했다.
유가 상승으로 미국 셰일 원유 생산량이 늘면서 기대만큼 전체 원유 공급량이 줄어들지 않을 거란 우려가 커졌기 때문이다. 유가가 하락하면 원자재 수출에 의존하는 신흥국 경기에 충격을 줘 글로벌 경제에 다시 찬물을 끼얹을 수 있다. 한국 경제에도 큰 부담이다.
국제금융센터 오정석 연구원은 "감산연장(25일 OPEC 정례회의)이 확정되면 유가는 투기성 자금의 가세 등으로 박스권 상단(55달러)을 일시적으로 웃돌 가능성이 있지만, 무산된다면 단기적으로 큰 폭의 하락(40달러)이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금리는 오르고, 물가도 고공행진
금리 상승에 따른 이자 부담과 빠르게 오르는 시장 물가는 경기회복을 체감하지 못하는 가계에 큰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기준금리는 1.25%로 6개월째 동결됐지만, 주택담보대출 금리 등 주요 대출 금리가 오르고 있다.
한국은행이 발표한 '2017년 3월중 금융기관 가중평균금리'에 따르면 올해 3월말 기준 예금은행의 가계 주택담보대출 가중평균 금리(신규취급액 기준)는 3.21%로 전월 대비 0.02%포인트 올랐다. 8개월 연속 상승세다.2015년 2월(3.24%) 이후 25개월 만에 최고치다. 한은 관계자는 "최근 시장 금리가 상승 기조에 있고, 단기금리에 비해 장기금리에 대한 기대감이 큰 상황이다보니 기간이 장기인 주택담보대출 금리가 계속 오르고 있다"고 설명했다.
전체 가계대출 금리는 3.43%로 전월 대비 0.05%포인트 상승했다.
금리가 오르면 가계는 쓸돈이 줄어든다.
한은은 대출 금리가 1%포인트 오르면 가계의 이자 부담이 연간 9조 원 늘어날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무엇보다 저신용·저소득층, 다중채무자, 영세 자영업자 등 취약계층은 금리가 조금만 올라도 대출 연체나 파산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한국은행 국민계정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가계의 이자수입에서 이자지출을 뺀 이자 수지는 5조7589억원 적자를 기록했다. 1975년 한은이 통계를 내기 시작한 이후 이자 수지가 적자가 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반면 은행의 이자이익은 늘어나고 있다. 지난해 국내 은행의 이자순익은 33조9994억원으로 전년 대비 9000억원(2.7%) 늘었다. 올해 들어서도 상황은 비슷하다 지난 1분기 4대 은행(KB국민, 신한, KEB하나, 우리)의 이자이익은 4조3천672억원으로 지난해 1분기(4조851억원)보다 6.9%(2천821억원) 증가했다.
미국의 정책금리 인상에 따른 금리상승에 대한 걱정도 진행형이다. NICE신용평가 금융평가본부장은 "국내 금융회사는 시장금리 상승에 대응능력을 보유하고 있지만 회사별로는 시장금리 상승 속도에 따라 신용위험이 높아지는 취약회사가 일부 있다"면서 "시장금리 상승 외에도 내수경기의 회복 여부가 중요하며 경기 변동에 따라 금리상승에 대한 대응능력 또한 변화될 수 있다"라고 말했다.
정권 교체기를 틈타 장바구니 물가도 빠르게 상승했다.
소비자물가는 3월 4년 9개월 만에 최대인 2.2%(전년 동기 대비) 오른 데 이어 지난달에도 1.9% 올랐다. 4월 들어서는 '계란'과 '2만 원 치킨(BBQ 10개 메뉴 가격을 1400∼2000원을 인상 )' 등이 물가를 끌어올리는 모양새다. 라면값도 가세했다. 지난해 말 농심(5.5%↑)에 이어 삼양식품도 5월부터 평균 5.4% 올렸다. 새정부 출범 하루 전인 9일에도 롯데칠성음료는 사이다와 콜라 등 탄산음료의 편의점 판매가격을 평균 7.5% 인상했다.
전문가들은 '괜찮아지겠지'라는 생각에서 벗어나 '신3고'에 대한 적극적인 대응을 주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