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유가가 반등 조짐을 보이는 가운데 3개월 동안 하락세를 이어온 국내 휘발유 가격이 해외 추세와 달리 더 떨어질 가능성이 점쳐진다. 신 정부가 유류세를 인하하는 것이 국제유가 반등마저 상쇄하는 효과를 낼 것이라는 분석이다.
15일 한국석유공사에 따르면 국내 평균 휘발유 가격은 2월 8일 리터당 1517.31원을 기점으로 꾸준한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지난 4월 10일 1486.3원까지 떨어진 뒤 보합세를 보였지만 다시 하락해 15일에는 1481.67원을 기록, 1470원대 진입까지 예상되는 상황이다.
이날 평균 휘발유 가격이 전국 평균보다 높은 리터당 1569.76원을 기록한 서울에서는 1300원대 주유소(리터당 1395원·구로구 풀페이주유소)가 처음 등장하기도 했다.
소비자들은 보다 저렴해진 휘발유 가격을 반기고 있다. 직장인 전소영(32)씨는 "올해 초만 하더라도 주변 주유소가 모두 리터당 1600원 수준이어서 먼 거리에 있는 최저가 주유소를 찾아다녔는데 부담이 많이 덜어졌다"며 "신문으로만 보던 저유가의 혜택을 이제야 누려보는 기분이다. 휘발유 가격이 저렴하게 유지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하지만 전씨의 바람과 달리 최근 국제유가는 반등 조짐을 보이고 있다. 석유수출국기구(OPEC)가 감산 합의 연장에 나섰기 때문이다. 오는 25일(현지시간) 열리는 OPEC 정기총회에서는 OPEC 회원국들과 러시아 등 11개 비OPEC 산유국이 맺은 일 산유량 120만 배럴 감축 합의가 6개월 연장될 전망이다. 지속 하락하는 유가를 끌어올려 재정 건전성을 회복하려는 산유국들의 담합인 셈이다.
일각에서는 단순 감산 연장을 넘어 추가 감산 조치가 이뤄져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내전으로 산유량이 줄었던 리비아, 나이지리아 등의 생산량이 늘어나고 있어 추가적인 감산을 단행해야 한다는 논리다. 추가 감산으로 국제유가가 올라가면 국내 휘발유 가격 급등도 불가피하다.
이런 가운데 국제유가가 반등하더라도 국내 휘발유 가격은 낮아질 것이라는 시각이 있다. 문재인 신임 대통령이 인하를 추진하는 유류세가 국내 휘발유 가격에 더 큰 영향을 끼친다는 이유다. 한국석유공사에 따르면 5월 첫 주 기준 교통·에너지·환경세, 주행세, 교육세, 부가세 등 휘발유에 붙는 세금은 리터당 총 869.62원이었다. 휘발유 가격이 리터당 1480원인 주유소에서 5만원 어치 기름(약 33리터)을 넣는다면 절반이 넘는 2만9380원이 세금인 셈이다.
소비자에게 판매하는 휘발유 가격의 절반 이상이 유류세이다 보니 그 규모도 꾸준히 늘어왔다. 2011년 17조9100억원 수준이던 유류세는 2012년 20조원을 넘어섰고 지난해 23조7300억원까지 늘어났다. 때문에 지난 박근혜 정부에서는 '겉으로 세금을 올리지 않겠다고 주장하면서 실질적인 증세 효과를 누리고 있다'는 지적도 꾸준히 제기됐다.
문재인 정부는 휘발유에 붙는 유류세를 인하하겠다는 방침이다. 국제유가가 떨어져도 유류세 영향으로 국내 가격은 변동이 없어 소비자들이 같은 기름을 비싼 가격에 사용했으니 현행 유류세에 손을 대야 한다는 논리다. 이번에 유류세를 개편하게 되면 2007년 2차 에너지세제 개편 이후 10년 만에 이뤄지는 조정이다.
정부가 유류세를 인하해서라도 휘발유 가격을 낮추고 서민경제를 안정시키겠다는 의지를 드러내자 업계도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한 정유사 관계자는 "제품 가격은 시장 상황에 따라 정해진다"면서도 "새로 출범한 정부가 휘발유 가격 안정에 관심을 두고 있어 주시하고 있다. 협조할 수 있는 일에는 협조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 역시 "기업이 정부 정책에 협조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며 "가능한 범위에서 정부 눈높이에 맞추도록 노력하겠다"고 답했다.
휘발유에 붙는 유류세를 인하해 줄어드는 세원은 경유에 붙는 유류세를 올려 충당하는 방안이 유력하다. 문재인 대통령 선거캠프 활동 당시 홍익표 수석대변인은 "경유 가격의 인상 여부를 검토하고 있다"며 "서민증세 문제가 있어서 보상책을 고민 중"이라고 밝힌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