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코리아 출신' 배우라는 수식어는 온 데 간데 없다. 이하늬 이야기다. 열정, 그 하나로 달려온 그는 장녹수를 만나 또 한 번 제 가치를 빛냈다.
이하늬는 지난 16일 30회를 끝으로 종영한 MBC 월화드라마 '역적: 백성을 훔친 도적'(이하 역적)에서 장녹수 역으로 열연을 펼쳤다.
장녹수는 조선시대 기생 중 유일하게 후궁이 된 인물로 그동안 여러 작품을 통해 다양한 방식으로 재조명 됐다. 그러나 여성의 측면에 비중을 둔 지금까지의 작품들과 달리 '역적' 속 장녹수는 운명에 맞서는 여성이자 '예인'에 초점을 맞췄다.
최근 인터뷰를 위해 메트로신문과 만난 이하늬는 "'역적'에선 역사적 기록을 바탕으로 장녹수를 얼마나 새롭게 재해석 할 수 있을까에 초점을 뒀다"며 "실존 인물이라 더 어려운 부분도 있었지만 결과적으로 작품도, 역할도 성공한 것 같다"고 말했다.
"극중에서 홍길동(윤균상 분)에게 '네가 예인이라 불러준 순간, 나는 예인이 됐다'는 대사를 보면서 어떻게 이렇게 멋있는 대사를 써주셨을까 하는 생각에 황송했어요. 그래서 어떻게 하면 잘 표현할 수 있을지 많이 고민했죠."
매 신마다 고민을 거듭했던 만큼 이하늬의 열정은 작품 곳곳에 녹아있다. 국악을 전공했던 장점을 십분 살려 판소리, 장구춤, 승무 등을 직접 해냈고 이를 통해 이하늬 만의 장녹수를 완성했다.
'역적'을 통해 '역대급 장녹수', '인생 캐릭터' 등의 호평을 받은 이하늬는 "이번 작품을 하면서 '제대로 하고 싶다'는 생각이 많았다. 그래서 제가 가진 순수한 열정과 잘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하고자 노력했다"고 말했다.
그렇게 만들어진 장면 중 하나가 바로 승무 장면이다. 지난 10회에 등장한 이 장면은 방영과 동시에 포털사이트 조회수 15만을 훌쩍 돌파하는 등 많은 화제를 모았다.
이하늬는 "연산이 녹수에게 결정적으로 반하는 이유가 바로 춤 때문이지 않나. 남자가 여자에게 반했다기 보다 '예인'인 녹수에게 반한 거라 생각한다"며 "그래서 예술의 정수를 보여주고 싶었다. 제가 잘 하는 걸 하라고 해주신 작가님의 이야기에 힘을 얻어 승무신을 준비했다"고 말했다.
"승무는 절제와 동시에 카타르시스가 있는 춤이에요. 그렇지만 한편으론 너무 어렵지 않을까 생각도 했죠. 발 디딤새에 한국의 곡선이 내포되어 있다고들 하는데 감독님께서 첫 발컷을 찍어주셔서 소름이 돋았어요. '할 맛 나는 현장'이라는 걸 다시 한 번 느꼈죠.(웃음)"
비단 이 장면뿐만이 아니다. 이하늬는 장녹수의 비극적인 운명, 그 바탕에 깔린 감정선에도 충실했다. 그는 장녹수가 죽음을 맞이하기 직전, 구슬픈 흥타령을 부르는 장면을 언급하며 "백성들에게 돌을 맞고 죽음을 당하는 장면은 지금 생각해도 눈물 난다"고 말했다.
"장녹수를 보면 먹먹해요. 공화였을 때부터 돌을 맞아 죽을 때까지의 여정을 함께 했는데 녹수를 생각하면 아직도 눈물이 나요. 조선시대에 여자로, 관기로 태어나 아파도 아프다고 할 수 없는 수많은 일을 겪잖아요. 제가 조선시대에 여자로 태어났다면 어떤 삶을 살고 어떤 선택을 했을까 생각하게 됐던 것 같아요."
이하늬는 '역적' 속 홍길동과 민초의 이야기가 현 시국과 맞닿아 있다는 점에서 배우로서 책임감을 느꼈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그는 "많은 생각을 하게 한 작품이었다. 5.18을 연상시키는 장면도 있고 공교롭게도 5월 19일에 '역적'이 끝났다"면서 "격변하는 이 시기에 '역적'을 만드는 우리 모두가 할 수 있는 게 뭘까 하는 책임감을 가졌던 것 같다"고 말했다.
"한 사람 한 사람 모두 역적이라 생각해요. 녹수도 가진 자라고 하기엔 삶이 너무 치열했고, 그녀 역시 시대를 산 역적이라 생각했거든요. 가진 상황에 순응하는 게 아니라 반기를 들고 질문하고 답을 하기를 원했고 죽음 마저도 선택하고자 했던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던 여성이기에 녹수 역시 역적이에요. 많은 사람들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질문에 반문하고, 그런 반문에 대한 여지를 가지고 있으면 사회가 더 건강해질 것 같아요. 그런 의미에서 역적이 그때 그 시국에 방영돼 더욱 의미가 깊어요."
이하늬는 '역적'이 인생작이냐는 질문에 고민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동안 이하늬를 거쳐온 모든 작품이 소중했지만 '역적'은 여러 의미에서 그에게 더욱 특별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하늬는 "'역적'은 터닝포인트였다. 그렇지만 배우로서 이하늬는 아직도 현재진행형인 것 같다. 뭔가를 이뤘다, 해냈다는 것보다 아직도 너무 부족하다"며 "아쉬운 부분들이 다음 작품을 하는 원동력이 되기도 하고 왜 부족했을까를 고민하다보면 조금 더 보완하게 되는 것 같다"고 말하며 더 나은 배우로 성장하기를 소망했다.
"배우로서 조금씩 성장해나가고 있는 건 틀림없는 것 같아요. 그리고 그 성장을 보는 것 자체가 큰 기쁨이죠. 조금이라도 이런 작품을 하고 성장하고 조금 다르게 할 수 있었다면 그것보다 큰 기쁨은 없는 것 같아요.(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