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등에 대한 공판에는 정재찬 공정거래위원장(사진)이 증인으로 출석했다. /뉴시스
제일모직-삼성물산 합병에서 삼성이 처분해야 할 주식 규모를 정하는 과정에 외압은 없었다는 증언이 나왔다.
2일 서울중앙지법에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등에 대한 23차 공판에는 정재찬 공정거래위원장이 증인으로 출석했다. 정 위원장은 제일모직-삼성물산 합병으로 인한 신규 순환출자 고리를 산정하고 삼성의 처분 주식 수를 결정하는 작업이 공정위 내부 판단으로 이뤄졌다는 취지의 증언을 이어갔다.
특검에 따르면 공정위는 2015년 10월부터 12월까지 삼성의 처분 주식 수를 1000만주에서 900만주로, 다시 500만주로 줄였다. 특검은 처분 주식 수를 줄인 원인이 삼성과 청와대의 외압에 있다고 주장해왔다. 특히 1000만주 처분이 필요하다는 공정위 내부 문건에 공정위원장이 결재했다는 사실을 강조했다. 서류증거 조사가 이뤄진 지난 9차 공판에서 특검은 "공정위원장이 결재한 서류에 공식·비공식이 어디 있느냐. 그 자체로 공식적인 것"이라며 "전문가 집단인 공정위에서 결정을 내렸는데 (판단을 번복하면서)자존심이 무너지고 당황스러웠을지 상상이 간다"고 고함을 치기도 했다.
정재찬 공정위원장은 "1000만주 처분이 필요하다는 2015년 10월 14일 보고서는 간부들을 믿고 서명했다"며 "보고서를 다 읽어보고 모르는 것이 있으면 질문도 하지만 아직도 신규 순환출자 내용을 다 숙지하진 못했다"고 말했다. 이어 "1000만주 처분 판단에 오류가 있다는 보고를 받았고 김학현 전 공정위 부위원장이 '이중고리' 등의 문제가 있다는 지적을 했다"며 "결재를 마쳤더라도 아직 시행되지 않은 상황에서 오류가 발견된 것. 중대한 오류가 있다면 당연히 재검토되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는 1000만주 처분 판단이 900만주 처분으로 바뀌고 다시 500만주 처분으로 변경됐다는 특검의 주장이 사실과 다르다는 의미가 된다. 정재찬 공정위원장에 따르면 공정위의 1000만주 처분 판단에 오류가 있었고 다시 계산하던 과정에서 900만주 처분과 500만주 처분으로 내부 의견이 갈렸다는 것이다.
공정위원장은 전원회의에서 다룬 내용도 삼성 주식 처분안이 아닌 가이드라인 마련이었고 명확한 의견은 나오지 않았다고 증언했다. 그는 "삼성 주식 처분안에 대한 의견이 갈리자 이참에 명확한 가이드라인을 마련해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며 "전문가들의 의견을 수렴하고자 전원회의 토의안건으로 올렸다"고 말했다.
석동수 공정위 사무관이 작성한 일지에는 900만주 처분안과 500만주 처분안에 어떤 위원들이 찬성했는지 기록되어 있다. 때문에 전원회의에서 각 위원들의 입장이 명확했던 것으로 이해되어 왔다. 이날 정재찬 공정위원장은 이러한 인식이 사실과 다르다고 강조했다. 그는 "전문가들이 명확한 기준을 세워주길 기대했지만 전문가들도 내용이 너무 어렵다며 어느 쪽으로도 판단을 내리지 못했다"며 "석동수 사무관 일지에 위원들의 이름이 적혀있으니 최종적인 의견 수렴이 된 것처럼 보이지만 혼란한 상황이었다"고 밝혔다. 전원회의를 거친 이후 공정위는 500만주 처분안으로 최종 판단을 내렸다.
특검은 공정위 판단 과정에 청와대가 개입했다고 주장해왔다.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최상목 전 청와대 경제금융비서관-김학현 전 공정위 부위원장-정재찬 공정위원장의 순서로 메시지 전달이 이뤄졌다는 시각이다. 또한 '공정위가 빠른 판단을 내리길 바란다'는 안 전 수석의 메시지에 500만주 처분안 통과를 강요하는 메시지가 담겼다고도 풀이했다. 하지만 정재찬 공정위원장은 "안 전 수석이나 최 전 비서관에 대해 김학현 전 부위원장에게 아무 말도 듣지 못했다"며 특검의 주장을 부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