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석영 "문학은 곧 나의 집, 나의 인생"
자전 '수인' 출간…월남 후 겪은 한국전쟁부터 방북과 망명, 옥살이까지
"시간의 감옥, 언어의 감옥, 냉전의 박물관과도 같은 분단된 한반도라는 감옥에서 작가로서 살아온 내가 갈망했던 자유란 얼마나 위태로운 것이었던가. 이 책의 제목이 '수인(囚人)'이 된 이유가 바로 그것입니다."
8일 오전 광화문 설가온에서는 황석영의 자전 '수인' 출판 기념 기자간담회가 열렸다.
6월항쟁 30년이라는 뜻깊은 해를 맞아 문학동네에서 두 권의 책으로 출간된 '수인'은 황 작가가 월남 후 몸소 겪은 한국전쟁과 베트남전쟁,1989년 방북 결행 후 4년의 망명을 거쳐 귀국 후 수감생활을 견뎌내기까지, 현대사의 숱한 굴곡을 누구보다 치열하게 겪은 작가의 생애가 오롯이 담겼다.
이날 황 작가는 자전 '수인'을 내놓기까지 고민도 많았고, 한국 문학이 처한 현실에 맞는지 걱정이 된 것도 사실이라고 입을 뗐다.
"소설가가 자전을 쓴다는 것이 어리석고, 한국 현실에 맞지 않는다는 생각이 있어왔습니다. 그래서 저 또한 자전 따위는 쓰지 않겠다고 생각해왔는데 2000년대 초반 중앙일보에서 저의 지난 이야기를 연재하자고 제안을 해오더군요. 내키지 않았음에도 써내려갔습니다. 유년시절부터 시작해서 시간의 흐름에 따라 이야기를 전개하다가 1976년 전라도 해남으로 이주하는 데서 연재를 중단했습니다. 그 이후에 연재를 잊고 살다가 3년 전에 문학동네에서 연락이 왔어요. 문학동네 강태형 사장이 '자전 또한 문학이다. 당신이 겪은 인생은 작가 개인의 인생이 아니라 한국문학의 자산이다'라면서 자전을 내자고요. 그래서 이전에 연재했던 기록들을 읽어보면서 '이게 과연 가치가 있는 것일까. 채 정리하지 못했던 지난 일들을 잘 정리해서 동시대를 겪었던 사람들과 공유하자. 또 내가 죽고난 뒤 역사적, 문학적 자료로 가치있게 쓰일 지 누가 알겠는가' 싶더군요.(웃음)"
황 작가는 총 6000장의 원고를 썼고, 2000장을 덜어내 최종적으로 4000장의 원고를 완성했다.
'수인'을 기록하면서 작가 자신을 얼마나 객관적으로 설명할 수 있었을까. 합리화할 수 있는 부분도 있었을 터.
작가는 창피함과 자부심 이 두 간극에 대해 "앞서 2000장의 원고를 덜어냈다고 말했다. 내 옆에는 강력한 두 명의 편집자가 있었다"며 "나의 아내와 강태형 사잔은 나의 영웅담적인 부분을 전부 걷어냈다. 때문에 글 속의 나는 늘 자괴감에 빠져있고, 좌절한다. 나에 대해 칭찬하거나 자랑하는 부분은 싹 빠져있다"고 말했다.
이어 "루소의 고백, 안데르센의 회고록 세계적으로 유명한 자전을 읽었는데 전부 자기의 내면, 남에게 밝히기 싫었던 점들, 부족했던 것들을 드러내놓고 있다. 많은 감동을 받았고, 특히 최근에 읽은 루슈디(가명:조지 안톤)의 자전이 가장 감명깊었다. 내가 방북 후 망명하고 있을 때 그 역시 다른 세계에서 다른 문제(이슬람교와 무슬림)로 숨어살고 있었다. 그가 당시 겪었던 일들을 써내려간 그 책을 재미있게 읽었다. 이런 동시대 동료 작가들의 자전을 짚어보면서 내가 써내려갈 글의 방향을 잡을 수 있었다"고 덧붙였다.
황 작가의 '수인'은 해방 이후 한국전쟁부터 시작해 현재까지 우리 민초들이 살아온 동시대를 증언하고 있다. 책은 1993년, 작가가 방북과 뒤이은 망명생활을 마치고 귀국하자마자 곧바로 안기부에 끌려가 수사관들에게 취조를 당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그리고 감옥 안에서 보낸 5년의 시간과 유년부터 망명 시절까지의 생애라는 두 시간대가 교차하며 진행된다. 감옥 안의 시간과 바깥의 시간을 나눠 전개한 구성으로 인해 '수인'은 마치 감옥에 갇혀 있는 작가가 좁은 감방 안에서 지금까지의 생애를 간절히 더듬어보는 듯 하고, 또 현실의 시간 가운데 불쑥불쑥 감옥에서의 장면들이 꿈처럼 끼어드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작가는 단순히 시간순으로 내용을 전개하는 대신 방북과 망명, 투옥이라는 결정적 계기들을 중심으로 내용을 재배치해 독자에게 더 깊은 의미를 안긴다.
황 작가는 '수인'을 통해 그의 삶의 이력이 결코 그의 돌발적인 행위가 아니라 그럴 수 밖에 없었던, 마땅히 그래야했던 역사적, 문학적 필연성을 지닌 것임을 말한다.
이날 간담회에서 작가는 끝으로 지금의 자신이 있을 수 있는 이유에 대해 '문학'이라고 대답했다.
"기독교 집안에서 자랐지만, 지금까지 무신론자로 살고 있어요. 하지만, 베트남전쟁 때 투입된 전투에서 하느님께 기도한 적이 있었는데 '제발 살려달라. 살려만 주신다면 죽을 때까지 좋은 글을 쓰겠다'고 기도했어요. 감옥에서 긴 시간을 버틸 때에도 '나는 이 시기를 겪은 뒤 꼭 이런 것들을 글로 써야지'하고 다짐했었죠. 감옥에서 나온 저를 두고 많은 사람들이 '황석영은 글을 못 쓸 것이다'라고 단정짓더군요. 하지만, 문학은 제가 돌아갈 집인 걸요. 먼길을 돌아다녔더라도 결국에는 다시 돌아와서 글을 써야하는, 문학이 곧 황석영의 인생이었고, 집이었던 거죠."
한편, '수인'은 황석영 작가의 유년 시절부터 베트남전쟁 참전, 광주민중항쟁, 방북과 망명, 옥살이에 이르는 파란만장한 생애를 담았다. 1권 496쪽, 2권 464쪽. 각 권 1만65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