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거래위원회의 숙원 사업이자 이전 정부의 정책에 발맞춘 것이 죄가 될 수 있을까.
이번 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등에 대한 공판은 중간금융지주회사를 주제로 이뤄지고 있다. 7일 24차 공판에는 금융위원회 사무관이, 8일 25차 공판에는 금융위 과장 출석하며 9일에는 금융위 상임위원과 금융감독원 팀장 등이 나와 삼성생명의 중간금융지주회사 전환 시도에 대해 증언할 예정이다.
◆선진 지배구조 위한 중간금융지주회사
중간금융지주회사는 일반지주회사의 자회사인 동시에 금융계열사를 지배하는 중간지주회사다. 현행 공정거래법에서는 일반지주회사가 금융 기업을 자회사로 두지 못하도록 금지하고 있다. 금융자본과 산업자본이 상대 업종을 소유·지배하는 것을 금지하는 금산분리 원칙 때문이다.
가령, 은행 등의 금융회사가 TV나 스마트폰을 만드는 산업회사를 소유한다면 신제품·신기술 등의 정보를 독점해 불공정한 이윤을 취득할 수 있다. 반대로 산업회사가 금융회사를 소유한다면 산업회사가 부실해지더라도 금융회사가 자금지원을 계속할 가능성이 높다. 자금조달이 용이해지는 것은 공정한 경쟁을 저해하는 요인이기도 하다.
금산분리 원칙이 세워졌지만 지주회사가 아닌 일반회사의 경우 금융계열사를 소유하는 데 아무 제한이 없다. 또한 은행을 제외한 증권, 보험 등 금융지주회사는 비금융 자회사 소유를 허용하는 상황이다. 때문에 금융계열사를 보유한 산업회사가 지주회사체제로 전환하면 금융계열사 지분을 모두 처분해야 하는 처지에 놓인다. 이 제도적 문제는 산업회사들이 지주회사 전환을 통해 선진적인 지배구조 체제를 갖춰 기업 경쟁력을 강화하는데 큰 걸림돌이 되어 왔다.
공정거래위원회는 2009년부터 공정거래법을 개정해 산업회사의 지주회사 전환을 막는 법률적 장애를 제거해 금융계열사 보유를 허용하려 했다. 또한 금산분리 원칙이 무너져 발생하는 부작용을 방지하고자 일정 기준을 넘는 경우 중간금융지주회사를 설립해야 한다는 내용도 마련했다. 산업지주회사는 공정거래위원회의 감독을 받지만 중간금융지주회사는 금융위원회의 감독을 받는다는 내용이다.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 내정자도 과거 "삼성그룹 금융부문만을 금융지주회사체제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며 "금융지주회사는 금융회사를 사금고화하거나 지배력 남용 행위를 차단할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방법"이라고 말한 바 있다.
◆삼성은 왜 금융지주회사를 택했나
삼성은 2016년 1월 금융위와 삼성생명의 금융지주회사 전환에 대해 논의했다. 현행법 안에서는 삼성생명을 중간금융지주회사로 만드는 것이 불가능하지만 공정위가 중간금융지주회사법을 추진했고 금융위도 금융지주회사 규제 완화에 힘을 보태왔기 때문이다. 삼성생명을 금융지주회사로 전환하면 중간금융지주회사법 도입 이후 중간금융지주로 다시 전환해 선진적 지배구조를 갖출 수 있었다. 따라서 공식 신청은 아니었으며 투기 등의 부작용을 우려해 비밀리에 다뤄졌다.
삼성생명이 금융지주회사로 전환될 경우 비금융계열사를 자회사로 둘 수 없다는 규정 때문에 삼성전자 등 비금융계열사 지분 5조9000억원 어치를 매각해야 한다. 지주회사 전환 과정에서 자사주 매직 효과가 발생하지만 이 역시도 삼성에게 실익은 없었다. 지주회사 전환 과정에서 인적분할을 하면 본래 의결권이 없는 자사주에도 의결권이 생겨 오너의 지배력을 강화하는 효과가 있다. 하지만 삼성생명의 경우 삼성은 지분 47.03%를 가지고 있었으며 52%의 의결권 행사가 가능했다. 추가적인 지배력 확보에 큰 의미가 없는 셈이다. 되레 삼성생명이 보유한 삼성전자 지분을 처분해야 하기 지배력 약화도 초래할 수 있는 도박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그럼에도 삼성생명이 금융지주회사 전환을 시도한 이유는 사업 경쟁력 확보에 있다. 삼성 금융계열사들은 카드, 보험, 증권 등 다양한 사업을 영위하고 있다. 이들이 더 큰 시너지를 내는 방법은 금융지주회사 설립이다. 국제회계기준(IFRS)4 2단계 도입도 문제가 됐다. 현재 보험사 자산이나 부채는 과거 시점으로 평가하지만 IFRS4 2단계가 도입되면 현재 시가로 평가하게 된다. 과거 판매한 저축성 고금리 보험 등이 현시점에서 평가되면 부채가 급격히 증가하는 효과를 낳는다. 때문에 자본 확충에도 속도를 내야 했다는 설명이다.
◆추진 과정에서 청와대 등 외압 있었나
특검은 삼성이 금융계열사 지배력 강화를 위해 금융지주를 추진했고 이 과정에서 청와대에 압력을 청탁했다고 강조한다. 2016년 2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박근혜 전 대통령의 독대에서 이러한 청탁이 이뤄졌다는 주장이다.
이에 대해 삼성에서는 청탁은 없었다고 항변한다. 금융위가 삼성생명의 금융지주회사 전환을 끝까지 반대했는데 청와대가 압력을 가했다면 금융위의 반대가 가능했겠냐는 물음이다. 더불어 1월 논의 과정에서 금융위에 "청와대에도 알리지 말아 달라"며 철저한 보안을 부탁했던 점도 근거로 들었다. 7일 공판에 출석해 자정이 넘도록 신문을 받은 금융위 실무자는 "금감원에도 이 사안을 알리지 말라고 당부 받은 기억이 있다"며 삼성이 외부 유출에 민감하게 반응했다고 증언하기도 했다.
한편 삼성은 대내외적인 악재와 반대 여론에 떠밀려 지난 4월 지주사 전환을 포기하며 지배규조 개편을 중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