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일 서울중앙지법에서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등에 대한 25차 공판이 열렸다. /이범종 기자
삼성생명 금융지주회사 전환 시도와 관련해 인가기관인 금융위원회에 청와대나 삼성이 압력을 가하지 않았다는 증언이 이어졌다.
8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등에 대한 25차 공판에는 금융위원회 김연준 과장이 증인으로 출석했다. 김연준 과장은 삼성생명의 금융지주회사 전환 가능 여부를 검토한 실무자다. 삼성생명은 금융지주회사 전환을 추진하며 공정위에 사전 검토를 요청해 전환 가능성을 타진한 바 있다.
재판에서 김 과장은 금융위의 판단 과정에 청와대 등의 압력이 가해졌다는 특검 주장을 반박했다. 청와대가 압력을 가했다는 직접적인 증거를 잡지 못한 특검은 삼성생명의 사전 검토 신청 과정을 지적했다. 금융지주회사 설립은 금융위가 아닌 금융감독원에 신청해 심사를 받아야 하는데 금융위에서 검토를 받은 것은 외압이 아니었냐는 논리다.
김 과장은 "금융위에 정식 신청하면 금융위가 신청서 사본을 금감원에 보내 1차 심사를 하도록 하는 것이고 이 건은 정식 신청도 아니었다"고 특검의 오류를 지적하며 "금감원의 심사는 미시적인 작업이다. 이번 사안의 경우 관련 법안이 미비해 정무적 판단이 필요했는데 이는 금융위 소관이 맞다"고 강조했다.
삼성이 금감원이 아닌 금융위의 심사를 받겠다고 요청한 것이 아니냐는 지적에는 "삼성이 요청했고 금융위는 그 요청이 타당하다고 인정했을 뿐"이라며 "개인이 사전 검토를 요청하더라도 불법은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변호인단은 "사전 검토와 관련해 청와대로부터 연락을 받거나 상급자들이 연락을 받았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 있느냐"고 묻자 김 과장은 "없다"고 답했다.
삼성생명의 금융지주회사 전환에 대해 금융위는 '부정적'이라는 판단을 내렸다. 삼성생명의 검토 신청 시기, 비금융계열사 지분 매각 방안 미비, 총수일가 지배력 강화 등이 문제가 됐다. 특검이 "금융위원장이 현안도 많은데 삼성생명이 금융지주로 전환하면 모든 현안을 다 잡아먹을 것이라 우려했느냐"고 묻자 김 과장은 "그렇다"고 말했다. "전환 일정을 우려한 것이냐 구체적인 전환 내용을 우려한 것이냐"는 변호인단의 물음에는 "일정이 문제였다"고 답했다.
비금융계열사 지분 매각에 대해 김 과장은 "삼성이 제시한 안에 구체적인 실행 방안이 담겨있지 않았다"며 "법을 가장 엄격하게 적용할 경우 비금융계열사 지분 5.9조원을 2년 내 처분해야 하는데 가능하다 보지도 않았다"고 말했다. 하지만 당시 금융산업 구조개선에 관한 법률(금산법)이 명확하지 않아 해석에 따라 삼성생명의 매각 지분 규모와 기간은 달라지는 상황이었다.
변호인단이 "기준 자체가 모호하고 금융위 입장도 정해지지 않았는데 삼성이 어떤 안을 제시하면 승인받을 수 있겠느냐"며 "그래서 방영민 삼성전자 부사장이 원안대로 신청하고 금융위의 뜻을 반영하겠다고 하지 않았느냐"고 묻자 김 과장은 "유권해석은 정식으로 신청안이 올라와야 검토에 들어간다"며 "해당 부분에서 문제가 없도록 삼성생명이 알아서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 금융위 윗분들의 견해"라는 이해하기 어려운 대답을 내왔다.
김 과장은 삼성생명 금융지주 전환이 총수 일가 지배력을 강화한다는 내용을 내부 보고서에 기재했다. 변호인단이 "삼성 측 의결권이 이미 52%를 넘어가는 상황이었고 지주회사 전환을 하면 의결권이 70%대로 증가하는데 지배력 강화라 볼 요인이 있느냐"며 "단순히 의결권이 52%에서 70%대가 된다는 것을 지배력 강화라고 쓴 것이냐"고 확인하자 김 과장은 답변을 내놓지 못했다. 이미 의결권이 50%를 넘어 추가 의결권 확보가 아무 의미를 지니지 못하는 상황이었음에도 단순히 지분이 증가하는 것을 총수 일가의 지배력 강화라고 포장했다는 의미다.
삼성 변호인단은 "금융계열사 지배력 강화는 이미 의미가 없던 상황이며 청와대 등의 외압도 없었다. 금융위가 삼성생명 금융지주 전환을 처음부터 끝까지 부정적으로 바라봤다는 것이 가장 큰 증거"라며 "정상적인 업무 절차를 거쳐 삼성이 할 수 있는 노력을 기울였고 금융위가 받아들이지 않아 금융지주 전환이 무산됐다는 것이 요지다. 부정한 청탁 등은 없음이 밝혀졌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