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등에 대한 28차 공판이 열렸다. /오세성 기자
삼성물산 합병과 관련한 청와대 행정관의 통상 업무에 대해 특검이 "특정한 의도가 있는 업무였다"고 주장했지만 증인에게 부인당했다.
14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등에 대한 28차 공판이 열렸다. 이날 공판에는 김기남 전 청와대 보건복지비서관실 행정관이 증인으로 출석했다. 보건복지부 연금정책국 국민연금정책과장을 지냈던 김 전 행정관은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당시 보건복지부 사무관과 연락하며 합병 문제를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재판에서 특검은 김 전 행정관이 보건복지부 사무관과 주고받은 이메일과 문자 내역을 제시하며 청와대가 삼성물산 합병을 찬성하도록 국민연금공단에 외압을 가했다고 주장했다. 김 전 행정관이 외부 인사들로 구성된 '주식 의결권행사 전문위원회'가 아닌 국민연금 내부 투자위원회에서 합병 안건을 다루도록 유도했다는 취지다.
특검은 김 전 행정관에게 "2015년 6월 보건복지부 사무관에게 합병 개요와 주식 보유 현황, 국민연금에서 어떤 식으로 의사결정을 내릴지 등을 보고하라고 해 설명을 듣지 않았느냐"며 "같은 달 삼성물산 합병안이 전문위원회에 올라가면 알려 달라고 당부했고 7월에도 일정을 확인했다. 이 과정에서 안종범 전 청와대 경제수석 등에 보고된 것 아니냐"고 물었다.
김 전 행정관은 "메일을 주고받은 건 부처에서 일어나는 주요 이슈를 파악하기 위해 일반적인 상황보고를 요청한 것"이라며 "중립적인 1장짜리 요약보고서를 만들어 선임행정관 등에 진행 경과를 보고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당시 언론에 보도되던 사안이었는데 일정이 나오지 않아 알고자 했을 뿐"이라고 덧붙였다.
특검은 "주고받은 문건을 보면 국민연금공단의 안건 대부분은 투자위원회에서 다룬다고 기재되어 있다. 처리 방안에서도 투자위원회가 소속된 기금운용본부에서 자체 결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적혔다"며 "이 자료들이 청와대 경제수석실에도 보고됐다. 삼성 합병을 전문위원회에서 통과시키려 했는데 전문위원들 가운데 반대 성향이 많으니 투자위원회로 돌린 것 아니냐"고 따져 물었다.
김 전 행정관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보고서에 찬성이나 반대에 대한 표기는 없었기에 단순히 투자위원회에서 결정하기로 정했다는 정도로만 이해했다"며 "안종범 전 청와대 수석에게 보고됐는지 여부는 알지 못한다"고 답했다.
변호인단은 김 전 행정관에게 특검에서 5회에 걸쳐 조사를 받았는데 당시 정황을 잘 기억해서 대답했는지 이메일과 문자메시지로 추정해 대답했는지 묻자 김 전 행정관은 "1년 반이 지났고 일반적인 업무라 명확한 지시가 기억나지 않기에 자료를 통해 유추했다"고 말했다. 특검의 진술조서에 사실만 적혀있지는 않다는 의미다. 이어 "보건복지부의 합병 찬반 의견을 들어본 적 있느냐"는 물음에는 "보건복지부에서 나온 자료들은 본 적 없다"고 증언했다.
재판부는 국민연금이 합병 찬반 결정을 투자위원회에서 정할 것이라고 보건복지부가 청와대에 보고하는 것이 일반적인지 여부를 재확인했다. 김 전 행정관과 보건복지부 사무관이 주고받은 메일이 사실은 청와대가 영향력을 행사하는 과정이 아니었는지 확실히 살피기 위함이었다.
김 전 행정관은 "각 부처들이 현안에 대해 사전 또는 사후에 청와대에 알리고 의견조율을 하는 과정을 거치는 것이 통상의 절차"라며 "이런 과정에서 청와대가 강력하게 의견을 전달하지도 않는다. 단순히 의견을 전달할 뿐"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기금운용위원회도 있고 전문위원회도 있는데 굳이 전문위원회에 책임을 미루기보단 보건복지부 스스로 해결하는 편이 낫다는 의견이 있었다"고 증언했다.
재판을 마치며 특검은 "청와대가 삼성물산 합병 관련한 동향을 모니터링하며 압력을 행사했다"고 주장했고 변호인단은 "김 전 행정관이 창구 역할을 했지만 이는 단순히 현안을 파악하는 과정일 뿐"이라며 "압력을 행사했다는 주장은 입증되지 않았다"고 받아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