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계부채 비율 1%포인트 증가시 소비는 0.06포인트 감소하는 등 가계부채가 전반적인 경기 활력까지 저하시키고 있다."(국제통화기금(IMF) 한국 가계부채 보고서)
문재인 정부가 내놓은 첫 부동산대책인 6·19대책은 가계 대출이 더 악화되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이다. 서울과 경기·부산 일부 지역, 세종 등 청약조정지역 40곳에 한해 부동산대출을 조여서 건전상을 강화하겠다는 것.
우리나라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지난해 말 92.8%로 증가폭만 보면 주요 43개국 중 세번째로 비중이 크다. 스위스(128.4%), 호주(123.1%) 덴마크(120%) 네덜란드(109.6%) 노르웨이(101.6%) 캐나다(101%) 뉴질랜드(94%) 등을 제외하면 8위 권이다. 가계부채가 걱정인 것은 양적인 팽창도 있지만 질적인 문제가 더 크다. 한국은행은 10개 신용등급 중 7∼10등급인 저신용 차입자의 대출 중 변동금리 대출 비중이 80%를 넘는 것으로 추정한다.
시장에서는 차입규제가 강화되면 이에 대한 소비 탄력성이 큰 중·저소득층이 일반재와 주택에 대한 소비를 큰 폭으로 줄이기 때문에 경기가 위축될 가능성이 크다며 우려를 보낸다. 시장이 감내할 수 있는 부동산 규제가 필요한 이유다.
◆6·19 대책, 부동산에 기댄 성장은 한계 인식 깔려
정부가 경기를 띄우는 가장 손쉬운 수단은 부동산이다. 최근 몇년간 서민들은 허리띠를 졸라말 정도로 경기는 바닥이었지만, 부동산시장은 '나홀로 호황'을 보인 이유다.
박근혜 정부의 '빚내서 집사라'는 정책이 대표적이다.특히 세계적인 경기침체가 지속되자 정부는 건설경기를 살리는데 올인 했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실제 우리나라의 국내총생산(GDP)대비 건설투자 비중은 15% 수준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같은 수치는 미국(8.0%)의 2배에 육박하고 프랑스(11.7%)와 독일(9.7%), 영국(9.2%) 등 선진국보다 높은 수준이다. 국내 건설자본스톡의 GDP 대비 배율은 G7국가 평균인 2.8배 수준에 달한다.
산업연구원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건설투자의 성장기여율은 50%를 웃돈다. 특히 3분기 건설투자의 성장기여율은 66.7% 육박하며 경제성장의 3분의 2를 건설투자가 책임졌다. 성장기여율이란 성장기여도를 100으로 봤을 때 해당 부문이 차지하는 비중을 말한다.
올해 들어서도 마찬가지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올해 1분기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1.1%였다. 6분기만에 제로(0)성장에서 탈출한 것이다. 하지만 건설투자가 전분기보다 1.5%포인트 늘어나는 등 서울을 중심으로 한 부동산 시장의 호황덕이 컸다는 분석이다.
하지만 건설·부동산에 기댄 성장의 위험성은 경험으로 잘알 수 있다. 미국발 금융위기의 전주곡이었던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위기는 가계부채가 주택시장의 버블 붕괴와 만나 터진 대표적인 사례다. 1990년대 시작된 일본의 장기불황 역시 경기부양을 위한 저금리 정책이 부동산 관련 대출 확대로 이어졌다. 이는 결국 자산거품이 꺼진 원인이 됐다.
한국은행은 지난해 10월 '최근 건설투자 수준의 적정성 평가'라는 보고서를 통해 우리나라가 과거 건설업 위주 경기부양을 도모한 일본의 실패 사례를 되풀이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현대경제연구원은 "한국경제 반등은 기형적이고 취약" 하다는 냉정한 보고서를 냈다. 주원 경제연구실장은 "수출 호조가 이어진다면 시차를 두고 내수가 살아나며 전체 경기가 회복 국면에 진입하는 소프트패치 경로가 예상된다"며 "하지만 만약 수출에 문제가 생기거나 건설이 성장력을 잃어버리면 경기가 다시 악화(더블딥)될 가능성도 있다"고 전망했다. 주 실장은 "새 정부의 경제를 보는 시각과 정책을 일치시켜야 한다"며 "성장의 출발점을 투자와 고용 확대에 둬야 한다"고 조언했다.
◆경기위축 부를 LTV·DTI의 함정은 막아야
LTV는 김대중 정부(2002년)가, DTI는 노무현 정부(2005년)가 도입한 주택담보대출 규제수단이다.
부동산 경기 과열 때 DTI와 LTV는 가계부채나 집값 급등세를 진정시키고 은행 부실 가능성과 차주의 연체 가능성을 동시에 차단할 수 있다. 반면 집값이 경착륙할 조짐을 보일때 이를 완화해 경기를 떠 받칠수 있다.
문제는 이들 비율이 올해 1400조원에 달하는 가계부채를 잡을 수 있는가다.
한국경제연구원가 최근 내놓은 'LTV·DTI 변화가 가계부채에 미치는 영향 및 거시적 파급효과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LTV 상한을 10% 낮췄을 때 6.3%포인트 하락했다. 같은 방식으로 DTI 규제를 강화한 경우에는 10%포인트 떨어졌다.
이승석 한경연 부연구위원은 "경제 규모나 소득 수준보다 주택가격이 높게 형성된 우리 경제의 특성상 상환 능력을 고려해 대출 상한을 결정하는 DTI의 경우 차입규제 효과가 LTV보다 클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우리 속담에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태운다'는 말이 있다. 가계 부채 잡으려다 경기까지 죽일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가계부채가 1290조원(작년 3분기 기준)에서 10% 경감할 때 LTV 규제 강화에 따른 GDP 감소액은 1조9350억원, DTI 규제 강화로 인한 GDP 감소액은 2조7090억원으로 분석됐다. DTI 규제를 강화했을 때 나타나는 GDP 감소 효과가 LTV 규제 강화 시보다 최대 1.4배 큰 셈이다.
이 연구원은 "차입규제가 강화되면 이에 대한 소비 탄력성이 큰 중·저소득층이 일반재와 주택에 대한 소비를 큰 폭으로 줄이기 때문에 경기가 위축될 가능성이 크다"고 주장했다.
박춘성 한국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최근 연구문헌을 통해 본 우리나라의 가계부채와 소비'라는 보고서에서 "빠른 속도로 증가하는 가계부채를 억제하기 위해 급격한 디레버리징(부채 축소)을 추진할 경우 단기적으로 소비 감소가 초래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일괄적으로 급격한 디레버리징을 유도하기보다 경제가 감내할 수 있는 적절한 가계부채 증가율에 대한 기준을 수립하고, 미시적으로 현재 상황에서 부채상환이 가능한 가계와 그렇지 못한 차별적 접근 방안을 마련해 시행해야 한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