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지배구조를 강구하고 있다. 지분 관계가 전혀 없으면서도 SK 브랜드를 사용하는 느슨한 연대 형태의 지배구조를 모색하고 있다."(최태원 회장, 지난 2월 재계의 한 문상에서)
최태원 회장이 '도시바'를 품에 안으면서 지배구조 개편에도 속도가 붙을 지 관심이다. 2015년 경영에 복귀한 최 회장은 지난해에 이어 굵직한 인수합병(M&A)을 통해 사업 재편을 꾀하고 있다. 특히 반도체사업을 그룹의 성장축으로 삼고 있다.
재계에서는 도시바 인수로 한숨을 돌린 최 회장이 지배구조에 손을 댈 것으로 본다. 문재인정부가 금산분리 강화 등을 통해 재벌개혁에 속도를 내고 있다는 점도 부담이다.
◆최 회장, 내친김에 지배구조개편까지?
SK그룹 지배구조의 중심에는 SK텔레콤과 SK하이닉스가 있다. SK텔레콤 최대주주는 지분 25.22%를 보유한 SK㈜다. SK텔레콤은 SK하이닉스 지분 20.07%를 보유한 최대주주이기도 하다. 즉 '최태원 회장→SK㈜→SK텔레콤→SK하이닉스'로 이어지고 있는 것. SK텔레콤이 사실상 중간지주사에 위치하고 SK하이닉스 등이 손자회사가 되는 셈이다.
SK텔레콤의 기업 분할카드는 힘을 잃은 상태다.
시장에선 SK텔레콤을 투자회사(가칭 SK텔레콤홀딩스)와 사업회사(SK텔레콤)로 나눈 뒤 SK텔레콤홀딩스를 지주사인 SK㈜와 합병할 것이란 관측이 많았다.
하지만 지난 3월 장동현 SK㈜ 사장이 SK텔레콤 주주총회에 참석해 "SK텔레콤의 인적 분할(기업 분할) 얘기가 작년부터 시장에 있었던 것으로 안다"며 "현재 인적 분할 검토는 그 어떤 것도 논의된 바 없다"고 말하면서 힘을 잃었다. 장 사장은 지난해 12월 SK그룹 인사 때 SK텔레콤 사장에서 SK㈜ 사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SK그룹 최고경영진이 공식적인 자리에서 SK텔레콤 분할설을 부인한 것이다.
한국투자증권 윤태호 연구원은 "SK가 정부의 정책 및 상법·공정거래법 개정안을 기다리는 것보다 선제적 대응(SK증권 매각)에 나섰다는 점에서 보유 자사주 20.7% 활용 방안(분할·소각)과 하이닉스 지배구조개편에 대한 기대감이 부각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시장의 관심이 SK하이닉스 지배구조로 옮겨갈 것이란 얘기다.
최 회장 입장에선 SK하이닉스를 SK㈜의 손자회사가 아닌 자회사로 만들어야 지배력을 더 강화할 수 있다. 그렇다보니 시장에선 도시바 인수에 성공한 최 회장이 어떤 카드를 꺼낼 지 최대 관심사로 떠올랐다.
토러스투자증권 김현수 연구원은 "SK하이닉스가 그룹 내 가장 강력한 성장동력으로 성장했음에도 하이닉스에 대한 최태원 회장의 지배력은 그룹 3대 동력(통신·에너지·반도체) 계열사 중 가장 낮은 상황"이라며 "배당 등 최대주주 이익 극대화를 위해서라도 SK하이닉스의 SK㈜ 자회사 격상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그래야 M&A 등 사업 확장도 쉽게 할 수 있다. 현행 공정거래법은 손자회사가 자회사(증손회사)를 거느릴 경우 지분을 100% 보유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SK하이닉스가 특정 기업을 인수합병(M&A)하려면 부분적인 지분 투자는 불가능하며 지분을 모조리 사들여야 하는 것.
SK하이닉스가 도시바 등 해외 M&A만 추진한 것도 이 때문이다. 도시바 등 해외기업 M&A는 이같은 공정거래법상 규제에서 자유로운 상황이다.
◆그룹 캐시카우 SK하이닉스가 지배구조 개편 핵심
대신증권 김경민 연구원운 "공정거래법 때문에 SK하이닉스가 국내에서 M&A를 추진하는 것이 어려워 최근 몇 년간 소규모 해외기업 M&A만 추진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최근의 도시바 인수, 파운드리 사업 분사 등 굵직한 의사 결정은 SK그룹 내에서 SK하이닉스의 위상이 높아졌다는 점을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SK하이닉스의 그룹내 위상은 어느 때보다 높다. 지배구조 개편이 추진될 가능성도 가장 높다.
당장 도시바와 시너지를 내기도 쉽지 않다는 점도 한 이유다. 반도체 기술의 유출 방지를 이유로 일본 정부가 중국이나 대만기업을 인수협상자로 선정하지 않은 만큼 SK하이닉스도 기술 접근성도 제한될 수 있다는 것. 추가 M&A 등 다양한 성장전략이 필요한 상황이다.
재계에선 문재인 대통령의 재벌 개혁 의지가 강한 만큼 최 회장이 도시바 인수와 같은 사업영토 확장과 SK하이닉스 지배구조 개편이라는 '투트랙' 전략을 가져갈 것으로 본다.
SK하이닉스 지배구조 개편(SK자회사 편입) 문제를 두고 시장에서는 두 가지 시나리오를 제시한다.
SK텔레콤 인적분할 후 SK하이닉스 지분 보유 지주회사(홀딩컴퍼니)와 SK㈜ 합병안이 하나다. 또 다른 가능성은 SK㈜가 보유한 IT서비스 사업을 양도하고, SK텔레콤이 보유한 SK하이닉스 지분을 양수하는 안이다.
장동현 SK㈜ 사장의 부인에도 인적분할 이슈가 가장 유력한 시나리오로 거론된다.
스왑의 경우 9조원을 웃도는 SK하이닉스 지분 대비 SK㈜의 IT서비스부문 영업이익이 2260억원(2016년)에 불과해 괴리가 있다. 다만 최근 SK그룹이 사물인터넷(IoT), 인공지능(AI) 등을 강화하고 있어 현실성 없는 시나리오는 아니라는 분석이다.
하이투자증권 이상헌 연구원은 SK텔레콤 분사를 전제로 "SK가 자체사업인 C&C부문과 SKT홀딩스가 소유한 SK하이닉스 지분을 교환해 SK하이닉스를 SK 자회사로 만드는 방법도 생각해 볼 수 있다"고 분석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