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등에 대한 31차 공판에서는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에 문제가 없었다는 증언이 나왔다.
이날 31차 공판에는 홍완선 전 국민연금공단 기금운용본부장이 증인으로 출석했다. 홍 전 본부장은 국민연금에서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과정에서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 결정에 관여한 것으로 지목된 인물이다.
◆국민연금 투자위 부의에 문제없어
특검은 국민연금 의결권 전문위원회에서 합병 안건을 다뤄야 했다고 주장하며 근거로 국민연금 실무자들이 전문위 부의가 필요하다는 보고서를 작성했던 것을 들었다. 국민연금 실무자들은 ㈜SK와 SK C&C 합병 시도에서 전문위가 맡았으며 삼성물산 합병안도 이와 성격이 같다고 판단한 바 있다. 이에 대해 홍 전 본부장은 "검토 초기에 실무진이 만든 문서에 그런 내용이 있지만 결정을 내린 것은 아니었다"며 반박했다.
2015년 당시 국민연금은 ㈜SK와 SK C&C 합병을 전문위에 맡겼지만 당시 국민연금이 외부인사로 구성된 전문위에 판단 책임을 떠넘긴다는 비판 여론이 일었다. 전문위는 합병 반대 결론을 내렸지만 녹취록이나 회의록 등을 만들지 않았기에 중간 과정을 알 수 없는 깜깜이 회의라는 비난도 받은 바 있다. 전문위가 무책임한 모습을 보인 바 있기 때문에 삼성 합병 안건은 국민연금이 책임을 지는 투자위원회에서 판단할 필요가 있었다는 의미다. 더불어 전문위는 투자위원회에서 판단을 내리지 못한 안건을 상정하는 부수적 기관이었다는 점도 감안됐다.
홍 전 본부장은 "조남권 전 보건복지부 연금정책국장이 '무조건 전문위에 부의하지 말고 투자위에서 진지하게 검토하고 판단이 곤란할 경우 전문위에 부의하는 것이 맞지 않느냐'고도 말했다"고 덧붙였다.
◆합병비율로 국민연금 손해 안 봐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비율의 적절성 문제도 다시 다뤄졌다. 특검은 "한국기업지배구조원과 의결권자문기관인 ISS에 검토를 요청했더니 두 곳 모두 적정 합병비율이 아니라는 결론을 냈다"며 "사안을 검토한 곳 모두가 당시 합병 비율인 1:0.35보다 높은 수치를 적정 비율로 내세우지 않았느냐"고 물었다. 합병은 삼성물산 주가가 저평가됐을 때 결정됐으며 실제 합병 비율인 1:0.35와 달리 1:0.46이 적정했고 이로 인해 국민연금이 1400억원의 손실을 봤다는 것이 특검의 주장이다.
홍 전 본부장은 "국민연금은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두 회사 지분을 동시에 가지고 있었다"며 "삼성물산에는 불리하고 제일모직에는 유리하다는 결과를 받았다"고 말했다. 변호인단은 "합병 발표 전과 발표 후의 주가를 보면 삼성물산 합병으로 인해 국민연금이 손실을 보지 않았다"며 합병 비율의 적절성을 주장했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이 합병 계획을 발표한 뒤 양사 주가는 상한가(15%)를 기록했다. 또한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주가는 합병 발표 전인 2015년 5월 22일 각각 5만3000원과 16만3500원에서 7월 9일 6만3600원, 17만4500원으로 올랐다. 이로 인해 양사 지분가치는 2200억원이 늘어났다. 같은 기간 코스피가 5.5% 떨어진 것과 상반된 결과다.
변호인단은 "아무런 위험도 짊어지지 않으면서 불확실한 미래를 계산하는 기관 평가와 투자자들이 자신들의 수익을 걸고 만들어낸 주가를 비교한다면 주가의 무게감이 더 크다"며 "평가로 따지더라도 합병이 무산됐다면 주가가 추가 하락해 국민연금은 2000억~3000억원에 달하는 손실을 봤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실제 삼성물산 주주에게 불리한 조건이라며 합병에 반대 의견을 냈던 ISS도 합병이 무산된다면 삼성물산 주식이 22% 하락할 것으로 내다봤다. 지난 17차 공판에서는 한국기업지배구조원의 합병 반대 보고서가 심각한 오류를 근거로 작성됐다는 점도 밝혀졌다.
특검은 홍 전 본부장이 투자위 위원들에게 합병 찬성을 요구했다고도 주장했다. 이에 홍 전 본부장은 "투자위 위원에게 '찬성표를 던지자니 삼성 특혜라는 비판을 사고 반대하자니 한국 기업을 투기자본에 넘기는 이완용이 된다. 어찌해야 할지 머리가 아프다'고 말했다"며 "'잘 결정되어야 할 텐데'라는 걱정을 했을 뿐이지 찬반에 대해 말한 것은 없다"고 반박했다.
한편 이날 재판은 홍완선 전 본부장 한 명만 증인으로 출석한 가운데 오전 10시에 시작해 오후 11시 6분경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