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등에 대한 32차 공판이 열린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 /오세성 기자
23일 서울중앙지법에서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등에 대한 32차 공판이 열렸다. 삼성물산 합병 과정이 중점적으로 다뤄진 이날 재판에서도 대통령의 개입이나 삼성의 부정한 청탁이 있었다는 특검의 주장은 입증되지 못했다.
이날 오전 재판에는 노홍인 전 청와대 보건복지비서관실 선임행정관이 증인으로 출석했다. 노 전 행정관은 최원영 전 청와대 고용복지수석의 지시를 받아 김기남 전 청와대 행정관에게 삼성물산 합병을 챙겨보라고 지시한 인물이다.
이전까지 청와대 관계자들을 소환해 박 전 대통령의 합병 개입 여부를 확인하는데 실패한 특검은 노 전 행정관에게도 이에 대한 사항을 집중 추궁했다. 최 전 수석이 삼성물산 합병을 알아보라고 지시한 배경과 구체적인 내용, 박 전 대통령의 지시 여부 등을 물었다. 특히 노 전 행정관의 지시를 받은 김 전 행정관이 보건복지부 사무관과 주고받은 이메일 등도 세밀하게 확인했다. 국민연금 의결권 행사에 청와대가 압력을 가했다는 의혹 때문이다.
노 전 행정관은 “수석비서관 회의에서 언론동향을 보고하는 과정에서 삼성물산 합병과 관련한 보도가 있다는 말을 했다”며 “상황을 정확히 파악해 보고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국민연금의 의결권에 관련된 내용이라기보다 합병과 관련한 포괄적 동향 파악으로 이해했다”고 말했다. 또한 “당시 메르스 사태로 삼성물산 합병에 신경 쓸 상황이 아니었다. 한 차례 보고한 이후 따로 챙기지 않았고 최 전 수석도 더 이상의 지시는 없었다”고 덧붙였다. 청와대가 삼성물산 합병 과정에 개입했다는 특검 주장을 정면으로 반박한 셈이다.
오후 공판에는 안계명 마사회 본부장과 김신 삼성물산 사장이 출석해 증언을 이어갔다. 특검은 김신 사장에게 삼성물산 합병 정황과 물산 주가 저평가 여부, 윤석근 일성신약 부회장과 나눈 대화 내용 등을 확인했다.
특검은 “구 삼성물산 주가가 저평가 된 시점에서 합병이 이뤄졌다”며 시가를 조작한 것 아니냐는 의문을 내비쳤다. 이에 김신 사장은 “시가를 조작했다는 말이 있던데 8조원이나 되는 시가총액을 조작할 방법이 있는지 궁금하다. 검사님은 우리나라 주식시장을 믿지 못하느냐”고 받아쳤다. 이어 “합병비율이 불리하게 산출된 것 아니냐”는 물음에는 “자체 점검을 거치고 회계법인에 확인도 받았다. 결국 자본시장법에 따라 비율이 산출된 것인데 거기서 임의 조정한다는 것도 이상하지 않느냐”고 답했다.
윤석근 부회장은 특검 조사에서 “삼성물산이 우리가 가진 주식을 7만5000원 이상으로 사줄 수 없으니 신사옥을 짓는 등 다른 방법으로 보상하겠다는 제안을 했다”고 말한 바 있다. 이에 김 사장은 “사실과 다르다”고 단언했다. 그는 “엘리엇과 분쟁이 있던 상황에서 그런 행위를 한다면 형사고소와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당할 수 있다. 말도 안 되는 이야기”라고 강하게 주장했다.
특검은 “합병이 경영상 판단으로 보이지 않는다”며 승계 목적이 아니었느냐고도 재차 확인했다. 김 사장은 “주주이익과 회사가치를 감안한 결정이었다”라며 “합병이 무산됐다면 막대한 기회손실이 발생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유가상승과 해외실적 악화, 로이힐 프로젝트 등 기존에 수주했던 사업에서의 부실 발생으로 손실이 가시화되던 상황에서 합병마저 무산됐다면 주가 폭락의 가능성이 컸다는 의미다.
변호인단은 "특검은 합병으로 국민연금에 손실이 발생했다고 주장하지만 이는 사실과 다르다"며 "합병을 했기에 국민연금이 막대한 손해를 피할 수 있었다. 게다가 합병 과정에서 부정한 청탁이나 개입도 없던 것으로 확인됐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