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인류는 나무의 낮은 곳에 달려 있어 쉽게 딸 수 있는 과일(low hanging fruit)을 모두 먹어치웠다."
영국 이코노미스트가 최근 10년간 가장 영향력 있는 경제학자로 선정한 조지메이슨대학교의 타일러 코웬 교수(경제학)가 '거대한 침체'라는 저서에서 한 말이다.
지금은 높게 위치해 따기 힘든 과일(high hanging fruit)의 시대라는 것. 그만큼 과일(혁신)을 발견하기 위해선 과거와 비교할 수 없는 치열한 노력과 투자가 필요하다는 얘기다.
금융과 자본시장도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빗겨가지 못하고 있다. 기존 비즈니스로 더이상 버티기 힘든 구조가 된 것. 시장에서 살아남으려면 창의적이고 경쟁력 있는 상품과 서비스를 만들어내야 한다. 혁신을 통해 소비자 신뢰를 꾸준히 쌓는 것도 주요 과제 중 하나다. 또 해외진출을 통해 대한민국 '금융영토'를 확장해 나가야 한다.
'스무살(창립 20주년) 청년' 미래에셋금융그룹을 이끄는 박현주 회장(59·사진). 그는 워런 버핏이 이끄는 '버크셔해서웨이'를 롤 모델로 새로운 과일을 만들어 내고 한국의 '곤고구미(金剛組·세계 최장수 기업)'를 꿈꾼다.
◆사업에선 승부사, 기부에선 '노블레스 오블리주'
박현주 회장은 승부사다.
미래에셋캐피탈(1997년)에서 번 돈으로 박 회장이 세운 미래에셋자산운용은 이듬해인 1998년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으로 증권시장이 침몰했던 시기에 국내 최초의 뮤추얼펀드 '박현주 1호'를 출시, 수 백 억원의 투자금을 모집하면서 세계적인 금융그룹으로 도약하는 발판을 마련했다.
'박현주 신화'는 한국 금융의 자존심이자 상징이었다. 피델리티, 템플턴 등 거대 투자회사들도 국내에서 만큼은 박 회장의 투자전략을 벤치마킹할 정도였다.
위기도 있었다. 대표적인 것이 2007년 10월 출시되자마자 시중 자금을 싹쓸이하며 펀드 시장에 돌풍을 일으켰던 중국 투자 '인사이트 펀드'의 수익률이 이듬해 마이너스 60%까지 폭락했다.
"박현주의 시대는 갔다"라는 평가까지 나왔다
이러한 악재를 딛고 박 회장은 미래에셋금융그룹을 글로벌 기업으로 체질 개선하는 데 성공한다. 비결은 해외로 눈을 돌리거나 '체질 개선'과 '혁신'이었다.
실제 국내 자산운용사 중 처음으로 홍콩에 해외 법인을 연 이후 2006년 인도, 2008년 미국과 브라질, 2011년 캐나다와 호주, 대만에 현지법인을 세우고 2012년엔 콜롬비아 법인을 설립했다.
2005년 SK생명을 인수해 2015년 미래에셋생명으로 유가증권시장에 상장시키면서 증권사와 자산운용사, 생명보험사 등 3각 금융축을 갖췄다.
미래에셋은 더 과감한 인수·합병(M&A)으로 몸집을 불려 나갔다. 2015년 12월 대우증권(현 미래에셋대우), 작년 11월 영국계 생명보험사인 PCA생명을 연달아 인수한 것이다.
이로써 미래에셋은 20년 만에 국내 1위 증권사와 자산운용사(미래에셋자산운용), 자산 기준 5위의 생명보험사까지 거느린 금융그룹이 됐다. 11개 계열사 덩치는 13조8000억원(자본금)에 달한다.
박 회장을 흔히 '금융 왕'이라 부르지만, 정작 그는 기부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다.
"배당금 전액을 이 땅의 젊은이들을 위해 쓰겠다."
박현주 미래에셋 회장이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사회 지도층의 사회적 책임)'를 실천하겠다며 지난 2010년에 한 약속이다. 그는 벌써 7년째 약속을 지키고 있다. 7년간 기부한 총액이 200억원에 달한다. 그는 창립 이듬해인 1998년 미래에셋육영재단을 만들고 2000년 75억원의 사재를 출연해 미래에셋박현주재단을 설립했다. 올해 17주년을 맞이한 미래에셋박현주재단은 다양한 장학사업과 사회복지활동을 통해 나눔문화를 확산시키고 있다.
특히 역점을 두고 있는 분야는 장학사업이다. 국내장학생, 해외교환 장학생, 글로벌투자전문가 장학생 등을 선발해 꾸준히 학비를 대고 있다. 지금껏 4017명의 해외교환장학생이 미국, 독일 등 선진국부터 멕시코, 터키 등 이머징마켓까지 40여개국에 파견되어 글로벌 인재로 활동하고 있으며 국내 장학생도 2522명을 지원했다.
미래에셋이 대한민국의 인재 육성에 집중하는 이유는 박 회장의 남다른 가치관에 있다. 2003년 한국 최초로 해외 펀드시장에 진출한 그는 글로벌 시장에서의 무한한 투자기회를 보았고, 척박한 대한민국이 성장하기 위해선 먼저 젊은이들이 세계 무대로 나가 훌륭한 인재로 성장해야 한다고 믿었다.
◆버크셔 해서웨이를 꿈꾼다
박 회장이 그리는 미래가 궁금하다.
그는 올 초1930년 대공황 시대에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의 말을 인용해 "우리가 두려워해야 할 것은 두려움 그 자체이다. 경제 여건이 어렵다고 두려움에 사로잡혀 움츠리고 현재에 안주한다면 우리에게 미래는 오지 않을 것이다"며 영원한 혁신자(permanent innovator)가 될 것을 강조했다.
그는 최근 해외·대체투자 분야에서 광폭 행보를 이어가면서 미래에셋을 아시아 최고 뿐만 아니라 선진국 투자은행(IB)과 당당하게 경쟁하는 한국의 '버크셔 해서웨이'로 만드는 꿈을 꾸고 있다.
글로벌 IB들과 경쟁해 세계적인 골프 브랜드 '타이틀리스트'를 인수(2011년)해 미국 시장에 상장시키고 글로벌 일류 호텔 체인인 포시즌스, 페어몬트오키드, 하얏트 등과도 이미 협업했다.
물론 현실이 녹록치만은 않다.
골드만삭스, 모건스탠리 등 글로벌 IB의 자기자본은 80조원이 훌쩍 넘는다. 아시아만 봐도 일본의 노무라는 30조원, 다이와는 14조원에 달한다.
그러나 박 회장은 최근 네이버와 1조원 규모(주식 교차보유)의 전략적 제휴를 맺고 또다시 특유의 승부사 기질을 발휘하고 있다. 미래에셋대우의 자기자본을 7조원대로 불린 동시에 금융과 정보기술(IT)의 융합을 통해 4차 산업혁명에서 성장 기반을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박 회장은 올해 초 임직원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올해는 창업 20주년이 되는 해로 20살의 청년 미래에셋은 건강한 체력(재무상태)을 바탕으로 오픈경영을 하면서 주저 없이 미래를 위한 도전에 나설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그는 "연 5000만명의 관광객 시대를 상상해 본다. 한국을 오고 싶은 나라가 되도록 환경과 관광 인프라에 관심을 두고 투자하겠다"고 말했다.
박 회장은 또 "4차 산업혁명 아이디어를 가진 회사와 적극적으로 소통하고 글로벌 투자은행(IB)들과 경쟁하기 위해 회사 설립과 M&A를 추진하겠다"며 "트레이딩센터도 미국이나 유럽에 만들어 많은 인재가 미래에셋에서 꿈을 펼 수 있도록 하겠다"고 강조했다.
이에 따라 미래에셋은 올해 안에 아일랜드 더블린에 글로벌 트레이딩센터 설립을 추진하고 있다. 유럽 거점을 마련하고 해외 M&A도 적극적으로 나서겠다는 것이다.
'펀드황제'에 이어 '한국의 짐 로저스(Jim Rogers)'라는 타이틀을 하나 더 얻은 박현주 회장의 광폭 행보에 재계의 눈과 귀가 집중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