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정부의 '탈원전·탈석탄 정책'에 속도조절을 조언했던 국책연구기관의 보고서가 관련 부처 입김으로 자취를 감췄다.
에너지경제연구원(에경원)과 산업통상자원부(산업부) 이야기다.
산업부는 국가의 에너지 정책을 총괄하는 부처로 그동안 원자력 발전소 건설 등에 적극적인 자세를 취해왔었다.
하지만 문재인 대통령이 집권하면서 공사가 진행되고 있던 신고리 원전 5·6호기 건설 중단, 30년 이상 노후 석탄 화력발전소 일시 가동 중단 등 국가 에너지 정책에 일대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이런 마당에 국책연구원인 에경원이 정부 정책에 반기를 드는 듯한 내용이 담긴 보고서를 냈고, 새 정권의 눈치(?)를 볼 수 밖에 없는 입장이 된 산업부가 진화에 나서면서 부처와 국책기관간 줄다리기가 시작된 것이다.
2일 관련 기관에 따르면 에경원은 지난달 20일 '신정부 전원(電源) 구성안 영향 분석 보고서'를 발간했다.
보고서는 현 정부의 공약대로 신재생에너지 발전량 비중이 20%까지 늘어날 경우 발전비용이 2016년보다 약 11조6000억원이나 늘어날 것으로 추산된다고 분석했다.
발전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지금의 원전과 석탄 자리를 앞으로 천연가스(LNG)와 신재생에너지가 메꾸면서 비용이 21% 가량 증가할 것으로 내다본 것이다. 또 발전비용 상승은 전기료 인상으로 이어질 수 밖에 없다.
결과적으로 보고서는 탈원전·탈석탄이 중심이 된 현 정부의 에너지정책이 국민들에게 전기료 부담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한 것이다. 그러면서 신재생에너지의 현실적인 보급 속도를 고려해 정부가 관련 정책을 신중하게 펼쳐야한다고 조언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2030년까지 신재생에너지 비율을 20%까지 높이겠다고 공언한 바 있다.
정부가 2년마다 짜는 전력수급기본계획의 가장 최근 버전인 7차 계획(2015∼2029년)에 따르면 에너지원별 비중은 원전 28.2%, 석탄 32.3%, 가스 30.6%, 신재생에너지 4.6%다.
그런데 이같은 내용을 지적했던 에경원의 관련 자료는 현재 에경원 홈페이지에서 찾아볼 수 없다.
에경원 관계자는 "관련 부처와 추가 소통이 필요하다고 판단해 게시했던 보고서를 홈페이지에서 내렸다. 지금은 (기존 보고서를)공개하기가 그렇다"고 전했다.
에경원은 국책연구원 특성상 인사 등을 국무총리 산하인 경제인문사회연구회에서 담당한다. 이에 따라 국무조정실이 주무기관으로 돼 있다.
하지만 에너지 및 자원 정책을 연구하기 때문에 산업부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형식은 국무조정실에서 관장하고 있지만 실제론 산업부 소속인 셈이다.
산업부 관계자는 "보고서 발표는 연구원에서 했지만 내용을 살펴보니 숫자 등이 사실과 다른 부분이 있었다. 아직 신고리 5·6호기 중단 등이 결정되지 않은 등 변수가 다양하고 전제조건도 많다. 시나리오를 제시했다면 모를까 단정적으로 (보고서를)그렇게 내놓은 것은 무리가 있었다"면서 "그래서 잘못된 것이 있으면 해명하거나 수정을 해야할 것 같다고 이야기했다. (보고서를)내린 것은 연구원이 자체적으로 그렇게 판단한 것 같다"고 전했다.
이런 가운데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에너지 정책을 뒷받침하기 위한 이슈 대응팀을 가동키로 했다.
일부 야권이 신고리 원전 5·6호기 중단에 따른 매몰비용과 전기료 인상 등을 거론하며 탈원정 정책에 반대하고 나선 가운데 여당이 대응팀을 꾸려 국민들에게 관련 정책의 내용, 효과를 정확히 알려 여론을 주도해나가기로 한 것이다.
한편 에경원측은 "보고서가 나온 이후 타 기관들이 관련 분석 결과들을 내놓으면서 상호간의 결과 차이를 자체 검증하기 위해 연구원이 자료 제공을 중지했지만 방법론상 문제가 없다는 결론을 내려 홈페이지에는 3일 오전 9시부터 게시를 재개했다"고 해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