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일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등에 대한 35차 공판이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 증인신문을 마치지 못한 채 끝났다. 안 전 수석에 대한 신문은 5일에 이어진다. /오세성 기자
4일 열린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등에 대한 35차 재판이 '안종범 수첩'의 신뢰도를 둘러싸고 격론을 펼친 끝에 두 차례로 나눠 진행되기로 결정됐다.
이날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재판에는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이 증인으로 출석했다. 안 전 수석은 정책조정수석으로 근무하는 동안 박 전 대통령의 지시사항을 모두 기록한 업무수첩을 만들었다. 특검은 이 수첩을 국정농단 모든 사건의 주요 증거로 평가하고 있다.
35차 재판에서는 안종범 수첩의 증거 적합성이 도마에 올랐다. 특검은 오전 재판 동안 안 전 수석이 대통령의 세부 지시사항을 모두 메모했다며 수첩의 신뢰도가 높다고 강조했다. 이어 오후 재판에서도 안종범 수첩 메모를 근거로 삼성물산 합병과 승마지원, 미르·K스포츠 재단 출연 등에 청와대 입김이 미쳤는지 확인하는 작업을 이어갔지만 뚜렷한 성과는 얻지 못했다.
특검은 수첩에 적힌 '승마협회장 연결, 이재용 인사'라는 문구를 근거로 "박 전 대통령이 현명관 한국마사회 회장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만남을 주선한 것이 아니냐"고 확인했다. 이에 안 전 수석은 "승마협회 회장사가 삼성전자. 승마협회를 잘 운영해주는 이재용 부회장에게 현명관 회장이 인사를 해야 한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변호인단이 구체적인 내용을 따져 묻자 안 전 수석은 "현명관 회장이 승마협회에 예의를 갖춰야 한다는 의미"라며 박 전 대통령이 이재용 부회장을 언급하진 않았음을 시인했다.
수첩에는 삼성전자를 포함한 9개 그룹 총수들이 박 전 대통령과 면담을 한 내용도 담겼다. 특검은 "미르·K스포츠재단에 출연한 금액을 기준으로 대기업 순서를 정해 개별 면담을 지시한 것 아니냐"고 물었다. 안 전 수석은 "9개 기업을 지목한 것은 아니고 통상 10대, 20대 기업과 면담을 한다"고 설명했다. 특검은 "개별면담을 위해 작성한 말씀자료에 각 기업들의 주요 현안이 담겼다"며 이러한 내용이 수첩의 기록과 일치한다고 강조했다.
변호인단은 수첩 기록이 허술하게 이뤄졌음을 지적하고 나섰다. 변호인단이 "기업 개별 면담에 잠깐이라도 배석해 대화 내용을 듣거나 메모한 적 있느냐"고 묻자 안 전 수석은 "최태원 SK회장 면담 때 중간에 잠시 배석한 것이 유일하다"며 "그나마도 현안 대화에는 참여하지 않았다"고 답했다. 특검은 안 전 수석이 독대 내용을 직접 들었을 가능성을 확인하고자 "현안에 대한 얘기는 안 했느냐"고 물었지만 안 전 수석은 "대통령과 그룹 총수가 있는데 내가 현안 얘기를 꺼낼 입장도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안 전 수석에 따르면 박 전 대통령은 그룹 총수 등과 면담을 한 뒤 전화로 면담 내용을 안 전 수석에게 전달했다. 안 전 수석은 이를 날짜와 'VIP' 표기를 남겨 수첩에 메모했다. 변호인단이 "박 전 대통령이 면담 직후 내용을 알려주느냐 아니면 날짜를 넘겨 알려주기도 하느냐"고 묻자 안 전 수석은 "빨리 알려주려 하지만 날짜를 넘기기도 한다"도 답했다. 박 전 대통령이 면담 내용을 즉시 전달하지 않는다면 메모에 오류가 발생할 수도 있다.
2015년 7월 있었던 박 전 대통령과 7개 그룹 독대 메모에서도 이러한 오류가 발견됐다. 안종범 수첩의 한진그룹 면담 부분에는 '승마협회 직접'이라는 메모가 있다. 삼성과의 면담 부분에는 '홈쇼핑', '포럼', '세미나', '면세점' 등의 메모가 적혔다. 이 메모들은 삼성과 연관이 없거나 창조경제혁신센터를 후원하는 모든 기업과 연관된 내용이었다. 안 전 수석은 "왜 그런 메모를 했는지 모르겠다. 내용을 모르는 상태에서 유추해 적기도 한다"며 수첩의 오류 가능성을 인정했다.
재판부는 이날 재판을 오후 11시 30분경 마무리한 뒤 5일 오후에 이어서 열기로 결정했다. 특검이 예상시간을 지나치게 초과해 신문을 한 탓에 변호인단이 신문할 시간을 빼앗겼기 때문이다. 재판부는 "재판이 너무 길어졌다. 안 전 수석이 5일 다시 출석해 재판을 이어가기로 하자"고 제안했다. 특검이 "가능한 오늘 끝내자"고 주장하자 재판부는 "특검에서 시간을 너무 많이 사용했다. 시간을 더 쓰긴 어렵다"고 지적했다. 이날 특검은 오전 10시 15분부터 오후 7시 50분까지 주신문을 감행했다. 변호인단의 반대신문은 오후 8시에야 시작될 수 있었는데, 재판을 새벽까지 강행할 경우 증인의 피로도 등으로 주신문과 동등한 수준의 신문이 불가하기에 피고인의 반대신문권이 침해된다. 변호인단 역시 "증인이 지친 것 같다"며 "내일 이어서 진행하겠다"고 동의했다.
안종범 전 수석은 5일 본인 재판을 마친 뒤 다시 출석해 변호인단 반대신문을 이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