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형 헤지펀드' 시장이 약 10조4657억원 규모로 급성장했다. 저금리 지속으로 마땅한 투자처를 찾지 못한 '슈퍼리치' 투자자들이 헤지펀드에 몰리고 있어서다. 주식시장이 오를 때는 물론이고 하락할 때에도 공매도(숏·short) 등 다양한 헤지 전략을 활용해 비교적 안정적으로 연 5~10% 수익을 노려볼 수 있는 상품으로 강남 부유층에서 입소문이 나고 있기 때문이다.
◆ '큰 손' 선호 헤지펀드 시장 10조원
6일 NH투자증권과 투자금융업계에 따르면 6월 말 기준 한국형 헤지펀드 설정액은 10조 4657억원을 기록했다. 2011년 12월 한국형 헤지펀드가 처음 도입된 이후 사상 최고 규모다.
개별 헤지펀드 설정액은 흥국 재량투자 4호가 전월 대비 1700억원 설정액이 증가하며 두드러진 성장세를 보였다.
전문가들은 국내 주식형펀드 인기가 시들해진 가운데 헤지펀드가 대안 투자처를 찾는 고액 자산가들의 선택을 받았다고 설명한다. 상장지수펀드(ETF)를 제외한 국내 주식형펀드에서는 올해 들어 6조7000억원 규모의 자금이 이탈했다. 코스피가 사상 최고치를 돌파하자 투자자들이 환매에 나선 것. 국내 채권형 펀드에서도 3500억원 규모의 자금이 빠져 나갔다.
헤지펀드 투자 수요가 늘어나면서 신생 운용사도 우후죽순 등장해 헤지펀드 운용사 수는 91개까지 늘어났다. 지난달에만 헤이스팅스, 포커스 등 2개 신규 헤지펀드 운용사가 새로 등장했다. 신규 헤지펀드도 52개나 새로 만들어져 한국형 헤지펀드 수는 481개로 늘었다.
사전 예약자들이 몰리면서 3일 만에 확보된 물량이 모두 팔려나간 경우도 있다. 교보증권이 지난달 20일 설정한 '로얄클래스 에쿼티 헤지 목표전환 주식형 펀드'는 49명의 투자자(최소 가입한도 1억원)로부터 총 86억원을 모집해 이날 폐쇄형으로 전환했다.
여기에 2015년 10월 25일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자본시장법) 개정안이 도입되면서 진입 문턱이 낮아진 것도 주효했다. 헤지펀드 운용 요건이 자기자본 60억 원에서 20억 원으로 완화됐고, 투자 최소금액도 1억 원으로 하향 조정됐다. 이 결과 시장에 새로 뛰어든 헤지펀드 운용사가 크게 늘고 자산가들의 투자도 증가했다.
한 증권사 프라이빗뱅커(PB)는 "올해 공모형 펀드를 비롯해 금융상품 대부분이 낮은 수익률을 보였다"며 "새로운 투자법과 절대수익률을 강조한 헤지펀드들이 이 틈을 비집고 자리를 잡았다"고 분석했다.
헤지펀드를 돕는 증권사의 전담 중개업자인 프라임브로커의 덩치도 커지면서 프라임브로커리지서비스(PBS) 사업을 하고 있는 6개사의 운용자산도 10조원대로 성장했다. PBS는 헤지펀드에 필요한 모든 서비스를 제공하는 업무로, 헤지펀드의 주거래 금융사로 통한다. 지금껏 미래에셋대우, NH투자증권, 한국투자증권, 삼성증권, KB증권 등 5곳이 경쟁했으나, 올해 신한금융투자가 가세하면서 6파전 양상이다.
◆ 수익률 호조…기관 진입 관건
운용사들의 투자 실적도 좋은 편이다. 6월 말 기준 481개 한국형 헤지펀드 가운데 376개가 연초 이후 플러스 수익률을 내고 있다. 전체 헤지펀드 수익률은 단순 평균 3.83%, 설정액 가중은 3.72%의 수익를 기록하고 있다.
롱숏 헤지펀드가 수익률이 가장 좋았다. 일반 주식형 펀드가 매수 전략으로 위주의 전략만 사용하는 것과 달리 헤지펀드는 주가가 오를 만한 종목은 사고(Long), 내릴 것으로 예상되는 종목은 공매도(Short)를 병행해 시장 등락과 크게 상관없이 안정적인 성과를 추구한다.
그러나 트렉레코드(운용성과)가 쌓이는 만큼 한국형 헤지펀드의 부익부빈익빈 현상도 나타나고 있다.
업계에서는 한국형 헤지펀드가 안정적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전문인력 육성이 시급하다는 판단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최근 운용인력들의 전문성이 확대됐지만 선진국을 따라가기에는 아직 부족한 면이 있다"면서 "한국형 헤지펀드가 퀀텀점프를 하려면 보다 다양한 운용 전략 구사가 가능해야 하고, 규제 일변도의 정책 패러다임 변화도 뒤따라야 한다"고 지적한다.
연기금 등 기관투자가들의 미적미적한 태도도 헤지펀드에는 아픈 부분이다. 국민연금이 지난해 말부터 참여를 했지만 아직 업계가 만족할 만한 투자는 없는 게 현실이다. 국민연금 투자 방식을 참고하는 다른 연기금과 공제회 등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당장 투자하지는 않더라도 투자의 문을 열어놓고 시장을 좀 더 지켜봤으면 한다"며 "해외 사례를 보면 연기금 등 기관투자가의 진입이 시장이 활성화하는 데 관건"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