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헌법 제 11조 제1항은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고 규정한다. 성별과 종교, 사회적 신분에 의한 차별이 없어야 한다는 내용이다. '최순실 국정농단'으로 대통령이 탄핵되는 초유의 사태와 함께 삼성그룹 총수가 구속된 뒤 약 150일이 흘렀고 그동안 유·무죄를 확인할 재판도 37차례 진행됐다. 그간 반복된 재판을 통해 정리된 쟁점사항을 법리에 따라 짚어본다.
특검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게 뇌물공여죄와 제3자 뇌물죄를 적용했다. 지난달 9일 26차 공판에서 특검은 "이 부회장의 혐의는 두 가지로 정리된다"며 "정유라에 대한 승마지원은 뇌물공여죄, 미르·K스포츠 재단 출연은 제3자 뇌물죄"라고 짚었다.
◆승마지원이 뇌물공여?
삼성은 지난 2014년 12월 승마협회 회장사가 됐다. 이후 승마협회가 세운 승마 중장기 발전 로드맵에 따라 한국 승마선수들의 2020년 도쿄올림픽 단체 출전 준비에 나섰다. 이를 위해 2015년 독일 회사 코어스포츠와 용역계약을 맺고 한국마사회에 코치 파견을 요청하는 등 관련 작업을 추진한 바 있다. 이 과정에서 삼성은 코어스포츠와 맺은 계약금액은 213억원 상당이며 1년간 실제 약 78억원이 지급됐다.
특검은 승마지원을 위해 삼성이 코어스포츠와 맺은 계약을 형법 129조(수뢰)에 기재된 '뇌물'이라고 판단했다. 뇌물공여죄에 대해 형법 133조에서는 형법 129조 등의 뇌물을 약속, 공여 또는 공여의 의사를 표시한 경우를 대상으로 한다. 특검은 "부정한 청탁이 없더라도 직무연관성과 대가성만 인정되면 적용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특검이 승마지원을 뇌물공여죄로 지목했지만 문제는 남아 있다. 변호인단은 이 부회장이 승마지원 사실을 몰랐다고 주장하고 있다. 또한 최순실씨나 정유라씨는 민간인이어서 이들에게 이 부회장이 금품을 제공하더라도 뇌물죄가 적용되진 않는다. 특검은 이 부회장이 최순실씨의 정체와 승마지원 내용을 알고 있었다고 주장한다. 뇌물죄 적용에 대해서도 특검은 지난 7일 "박근혜 전 대통령과 최순실씨는 공동정범 이상의 관계"라며 경제적·실질적 이해관계를 같이하는 '경제적 공동체'라는 논리를 세웠다.
◆재단 출연은 제3자 뇌물죄?
특검은 박 전 대통령이 미르·K스포츠 재단 설립과 대기업 모금을 지시했다고 주장한다. 미르재단은 전통문화 발굴과 문화 브랜드 확립, 문화예술 인재 육성 등을, K스포츠재단은 체육인재 발굴과 전통 스포츠 보호, 스포츠를 통한 국위선양을 명분으로 내세웠다.
삼성은 미르재단과 K스포츠재단에 총 204억원을 제공했다.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가 금액을 산정해 지원금 출연을 요청하자 그에 응한 것이다. 전경련 회원사이던 현대차와 SK, LG, 포스코, 롯데 등도 전경련이 산정한 금액을 제공했다.
특검은 이러한 재단 출연을 형법 130조의 제3자 뇌물죄로 규정했다. 제3자 뇌물죄는 '부정한 청탁'이 성립요건이다. 형법 제130조는 공무원 또는 중재인이 그 직무에 관해 부정한 청탁을 받고 제3자에게 뇌물을 공여하게 하거나 공여를 요구 또는 약속한 경우를 대상으로 한다.
특검은 "(이 부회장의 그룹 경영권 승계라는) 현안에 대한 상호인식과 대가로서의 금전수수(재단 출연)가 있으면 제3자 뇌물죄를 적용할 수 있다"며 "청탁 내용이 불법이거나 부당하지 않아도 되며 부정한 청탁 후 업무처리도 적용된다"고 주장했다.
◆청탁 내용으로는 '경영권 승계' 지목
뇌물공여죄와 제3자 뇌물죄 적용을 위한 청탁·대가성의 대상으로 특검은 이재용 부회장의 그룹 경영권 승계를 들었다. 하지만 '삼성그룹 경영권 승계'는 특정한 행위로 지목하기에 그 범위가 지나치게 넓다. 실제 특검은 공소장에 1996년 있었던 삼성 에버랜드 전환사채 사건까지 포함시켰다. 때문에 삼성 변호인단은 "공소사실이 특정되지 않아 방어가 불가능하다"며 공소장이 위법하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재판이 진행됨에 따라 특검이 지목한 경영권 승계 관련 문제는 크게 ▲제일모직-삼성물산 합병 ▲삼성생명 중간금융지주 전환 과정으로 정리되는 분위기다. 특검은 처음 삼성바이오로직스 상장 과정에 특혜가 있었다는 주장과 메르스 사태 당시 삼성서울병원에 특혜가 있었다는 주장도 제기했지만 점차 언급을 줄이고 있다. 특검 스스로 이들 사안은 근거가 빈약하고 중요하지 않다고 판단했다는 해석도 나온다.
삼성물산 합병과 삼성생명 문제에서는 국민연금공단이 삼성물산 합병 찬성 결정을 내리는 과정과 금융위원회의 중간금융지주 심사에 청와대 압력이 가해졌는지 여부가 중요 포인트다. 청와대 압력이 없었다면 청탁이나 상호인식도 없었다는 것이 증명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