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기업에 근무하는 이승연씨(43·가명)는 변호사인 남편과 맞벌이로 한 달에 1300만원이 넘는 돈을 손에 쥔다. 흔히 말하는 상위 20%(소득 5분위, 평균소득 834만원7900원)부자다. 이 씨 부부는 초등학교 3학년인 딸을 방과 후 영어학원, 논술학원에 보낸다. 이것도 모자라 미술과 피아노학원도 거르지 않도록 신경 쓴다. 시간만 허락한다면 발레나 무용학원도 보내고 싶다. 이들 부부가 한 달에 딸 교육비로 쓰는 돈은 평균 150만원 남짓이다.
#. 서울 구로구에 사는 박상연씨(47·가명)는 시장에서 배달로 한 달에 140만원가량 번다. 소득 하위 20%인 소득 1분위 가구의 평균(144만7000원)보다도 적다. 박 씨의 중학생 자녀는 학교 수업이 끝나면 곧장 집으로 향한다. 1주일에 한 번 무료로 대학생 자원봉사자 형, 누나들에게 영어를 배우는게 사교육의 전부다. 친구들은 선행 학습까지 하는데 학교 수업 따라가는 게 벅차다.
소득수준별 교육비 지출 격차가 갈수록 벌어지고 있다. 부모의 소득수준이 자녀의 학력 차이로 이어지면서 계층 이동의 사다리가 끊어지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11일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5분위 계층의 가구당 교육비는 월평균 51만7900원으로 1분위 계층(소득 하위 20%)의 7만3000원보다 8배 가량 많았다.
◆ 계층사다리 끊어지나
소득 5분위와 1분위의 교육비 차이는 갈수록 벌어지고 있다. 2010년 1분위(8만5735원), 5분위(54만2946원) 가구의 교육비 지출 차이는 6.3배였지만 갈수록 격차가 벌어져 지난해에는 7.5배, 지난해 8배까지 벌어졌다.
사교육비만 놓고 보면 더 심각하다.
교육부와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5·9월 전국 1483개 초·중·고교 학부모 4만3000명을 대상으로 벌인 사교육비 조사 결과 월평균 소득 700만원 이상 가구가 사교육에 쓴 돈은 한 달 44만3000원 꼴로, 소득 100만원 미만 가구(5.0만원)의 8.8배였다.
교육비 지출은 생존에 필수적인 지출은 아니어서 가구의 경제 여력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항목이다.
이를 고려하더라도 다른 항목보다 유달리 격차가 큰데다 최근 들어 지출 차이가 확대되는 모습에 우려의 시선이 많다.
국내 한 전문가는 "부에 따라 교육의 기회 자차가 달라진다는 것은 결국 사회의 계층 이동성이 약화된 것으로 볼 수 있다"면서 "교육만큼은 기회의 평등이 주어질 수 있게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경기가 어려울수록 적게 버는 가구는 당장 급한 의식주비가 아닌 교육비를 먼저 줄이기 때문에 격차가 늘어난다는 분석이 많다.
◆연극 관람은 딴 세상 얘기, 서민들 "아파도 참는다"
최근 옷을 사러 할인 매장에 들른 일용직 근로자 권 모씨(43)는 진열대 앞에서 한참 서성거리다 빈손으로 나왔다. 3년째 제자리걸음 중인 월급에 비해 옷값이 부담스러웠기 때문이다. 때마침 길거리 좌판이 그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권 씨는 "살림이 팍팍해져 옷은 커녕 반찬 사기도 조심스럽다. 아이들 옷만 몇 점 샀다"고 말했다.
지난해 월평균 가계지출은 336만1000원으로 1년 새 0.4% 줄었다. 실질 지출은 1.3% 줄었다. 관련 통계가 나오기 시작한 2006년 이후 가장 큰 감소 폭이다. 오락문화 비용(-2.0%·실질비용 기준)은 물론이고 경기에 비교적 덜 민감한 식음료품(-1.3%), 교육비(-2.0%)까지 줄어든 결과다.
불황의 그림자는 먹고 즐기는 데서도 양극화를 불러왔다.
서울 건설현장에서 16년째 모래밥을 먹는 최하루씨(46·가명)는 미장공이다. 그에게 이번 여름이 유난히 덥다. 이달에 받은 임금은 고작 150여만원. 지금 같은 장마철엔 한 달에 열흘도 일을 못한 탓이다. 최씨는 이제 숙련공 대접을 받아 한달 꼬박 일하면 많을 때는 300여만원을 거머쥐기도 하지만, 이 또한 '한 철'이다. 오늘 따라 몸은 천근만근이다. 하지만 며칠 전 "아빠 올 여름에 바닷가에 가고 싶다"는 쌍둥이 딸 들의 목소리가 귓전에 맴돌자 종종걸음으로 일터를 향했다. 그에게 해외여행은 사치다.
소득 1분위 가구는 최씨의 얘기가 늘 상 있는 일이다. 지난해 1분위 계층이 오락·문화비로 쓴 돈은 월 평균 5만5100원이다. 5분위가 지출한 비용이 월평균 27만3700원이나 5.0배나 차이가 난다. 교육비 다음으로 크다.
교통비(6배, 이하 5분위 55만2300원, 1분위 10만6400원), 의류·신발(4.5배, 22만6700원, 5만8600원), 음식·숙박(4.2배, 55만1200원, 12만 8500원) 지출의 격차도 큰 편이었다.
그나마 필수 지출 항목인 식료품·비주류음료의 1·5분위 간 월평균 지출이 1.7배 벌어지는 데 그쳤고 주류·담배, 주거·수도·광열 지출도 5분위 지출이 1분위보다 1.5배 많은데 그치는 등 격차가 작은 편에 속했다.
서민들은 아파도 참는다.
이순임 씨(59·서울 성북구)는 "물가는 오르지만 돈 나올 곳은 마땅치 않아 웬만큼 아픈 것은 그냥 참는다"며 "지난해에는 남편이 서너 번 병원에 갔는데 올해는 한 두 번만 갔다"고 말했다.
실제 100세시대에 접어들면서 서민들이 병원 갈 일이 많아지고 있지만 1분위 계층이 쓴 보건 비용은 13만4500원, 5분위는 24만2500원으로 약 2배의 차이를 보였다.
문제는 소득 격차 확대가 경제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이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는 지난달 열린 국제콘퍼런스의 개회사에서 세계 경제의 구조적 문제점에 대해 가장 먼저 소득 불평등을 꼽으며 "그동안 많은 나라에서 계층 간 소득 격차가 확대됐는데 이는 성장, 고용, 소득 그리고 다시 성장으로 이어지는 경제의 선순환 구조를 약화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구눈 "학계, 국제기구에서 해법으로 제시되는 것은 성장과 더불어 그 혜택이 많은 사람에게 돌아가는 포용적 성장"이라며 "구체적으로 일자리 창출과 가계소득 증대가 주요 과제로 논의되고 사회안전망 확충의 필요성도 제기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2016년 1·5분위 소비지출 비교>(단위:천원)
----------------------------------------------------------------
구분 1분위 5분위
식료품 · 비주류음료 259.2 441.3
주류 · 담배 24.5 40.0
의류 · 신발 58.6 266.7
주거 · 수도 · 광열 215.1 333.4
가정용품 · 가사서비스 50.9 197.0
보 건 134.5 242.4
교 통 106.4 552.3
통 신 77.9 184.6
오락 · 문화 55.1 273.7
교 육 73.0 517.9
음식 · 숙박 128.5 551.2
기타 상품 · 서비스 84.7 379.1
------------------------------------------------------------------
자료=통계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