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검은 국민연금공단이 제일모직-삼성물산 합병에 찬성함으로써 1388억원의 평가손실을 입었다고 주장한다.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은 1:0.35의 비율로 합병을 결의했다. 만약 이때 국민연금이 자체 산정한 적정 합병비율 1:0.46으로 합병이 이뤄졌다면 국민연금이 보유하고 있던 삼성물산 주식 가치가 1388억원 더 높게 책정됐을 것이라는 의미다.
하지만 정작 국민연금에서 적정 합병비율을 산정한 채 모 전 리서치팀장은 특검의 주장을 반박한다. 국민연금이 산정한 적정 합병비율은 1:0.34~1:0.67이라는 것이다. 지난 33차 공판에 증인으로 출석한 채 전 팀장은 "합병비율은 범위로 산정됐는데 국회에서 고정된 숫자를 요구하는 바람에 1:0.43으로 알려졌다"고 털어놨다. 그는 "이후 삼성물산에는 대규모 손실이 발생했고 제일모직이 가지고 있던 삼성바이오로직스 지분 가치는 지속 상승했다. 합병 비율을 엄격하게(삼성물산 가치를 낮게) 산정했어야 했다"로 말했다.
◆국민연금이 합병 비율 바꾸면 불법
특검은 "자본시장법에 따라 10% 할인·할증이 가능했다. 비율조정을 요구하더라도 삼성이 국민연금을 무시할 수 없지 않느냐"며 국민연금이 삼성물산 합병 비율을 조정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에 대해 홍완선 전 국민연금 본부장은 "조정을 요구할 상황이 아니었다"고 일축했다. 전략적 투자자(SI)는 기업 경영에 참여할 수 있다. 하지만 국민연금은 수익을 목적으로 한 재무적 투자자(FI)로 삼성물산 경영에 관여하지 않을 의무를 지닌 상태였다. 따라서 국민연금이 합병 비율 조정을 요청한다면 이는 경영권 침해가 되며 자본시장법 위반, 대주주 권리 박탈로 이어진다.
2015년 1분기 이후 삼성물산 주가가 하락세를 타는 상황이었고 향후 주가도 부정적이었다는 점 역시 문제다. 합병 비율을 조정한다는 것은 제일모직 가치를 낮추는 것과 같은 의미다. 제일모직 이사회에서는 주가가 떨어지는 회사와 합병을 하며 자사 가치를 낮출 이유가 없었다. 또 가치를 낮추는 경우 제일모직 이사회에 배임 혐의가 적용될 가능성도 있다. 결국 불법 의혹을 밝히기 위해 구성된 특검이 국민연금과 제일모직에는 불법적인 행동을 요구한 셈이다.
◆국민연금의 찬반 결정 과정은 합법
특검은 국민연금이 삼성물산 합병 찬반 결정을 의결권전문위(전문위)가 아닌 투자위원회(투자위)에서 내린 것도 문제 삼는다. 특검은 "전문위가 중요 의결권 행사를 담당하기에 주주가치 보호 등 논란이 컸던 삼성물산 합병 찬반 여부는 전문위에 부의했어야 했다"며 전문위에서 반대될 가능성이 컸기에 투자위에서 찬성 결정을 내리도록 청와대 등이 압력을 가했다는 취지의 주장을 했다.
하지만 이는 국민연금공단 규정에 대한 무지에서 비롯된 주장인 것으로 밝혀졌다. 국민연금 기금운용지침 17조 5항에는 투자위에서 의결이 어려운 경우에만 제한적으로 전문위를 개최한다고 규정되어 있다. 투자위원회에서 우선적으로 판단을 내려야 하며, 당연하단 듯 전문위에 넘겨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전문위가 졸속으로 운영되어 왔다는 점도 문제다. 재판에서는 전문위가 유일하게 다뤘던 합병 관련 사안인 SK와 SK C&C 합병건의 경우 녹취록이나 의사록 등 일체 토의 기록이 남아있지 않다. A4용지 1장에 불과한 결과문만 존재한다. 국민연금 리서치팀은 SK와 SK C&C 합병 결과에 따라 국민연금이 얻을 결과 등에 대한 분석을 발표하기 위해 가져갔지만 전문위는 한 시간 가량 토의하며 리서치팀에 일체 발언권을 주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이 자리에 동석했던 보건복지부 관계자가 "전문위가 이런 식으로 열리는 것이었냐"며 졸속 운영에 실망했다는 증언도 나왔다.
전문위에 실망한 복지부는 투자위를 열지도 않고 전문위 개최 의향을 피력한 국민연금 관계자들에게 "투자위에서 책임감 있게 판단하고 찬반 결정이 어려우면 그 때 타당한 근거를 들어 전문위에 부의하면 될 것 아니냐"고 '규정대로 처리할 것'을 당부한 바 있다.
특검은 이를 복지부가 찬성 압력을 행사한 것이라 주장하지만 규정에 입각해 책임감 있는 판단을 내리라는 당부였기 때문에 이를 합병에 찬성하라는 압력이라고 보기엔 무리가 있다는 지적이다.
◆더 큰 피해 입힌 건 정작 '특검'
특검은 공소장에서 삼성물산 합병으로 국민연금이 막대한 손실을 입었다고 강조했다. 삼성의 부당한 압력에 의해 국민연금이 합병 찬성 결정을 내렸고 그 결과로 국민에게 피해를 끼쳤다는 주장을 하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정작 재판에서 뚜껑을 열어보니 삼성으로 인해 발생했다는 피해는 존재하지 않았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이 합병 계획을 발표한 뒤 양사 주가는 상한가(15%)를 기록했다. 합병 발표 한 달 동안 주가가 올라 양사 지분가치는 2200억원이 늘어났다. 같은 기간 코스피가 5.5% 떨어진 것과 상반된 결과다. 2016년 1월 삼성물산 우발부채와 자산가치 하락 등 총 2조6856억원의 잠재손실 역시 큰 문제없이 반영될 수 있었다.
채 전 국민연금 리서치팀장은 "특검이 주장하는 평가손실 액수 역시 국민연금이 보유한 제일모직 주식을 고려하지 않은 계산이며 손실은 당시 주식을 처분했어야 발생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한 "국민들의 노후 자금을 최대 40조원까지 늘리겠다는 큰 그림을 그렸는데 결과적으로 특검이 이를 망쳤다"고 말했다. 실제 발생하지 않은 손실을 가정해 판단할 경우 특검이 더 큰 피해를 끼쳤다는 의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