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4일 김상조 공정위원장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등에 대한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오세성 기자
형사소송법 제146조에 따르면 법원은 다른 규정이 없을 경우 누구든지 증인으로 신문할 수 있다. 하지만 일방과 특수한 관계에 있어 편파적 증언을 할 가능성이 있다면 신문에 보다 신중해야 한다. 특히 특검의 과외 교사 역할을 한 김상조 신임 공정위원장이 특검 측 증인으로 나오는 경우는 더욱 그러하다.
지난 14일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등에 대한 39차 공판에는 김상조 공정위원장이 증인으로 출석했다. 김 위원장은 "휴가를 내고 시민 자격으로 왔다"며 재판정에서 삼성 경영권 승계에 대한 본인의 견해를 설명했다. 김 위원장에 따르면 삼성은 '기승전결' 구조의 승계 과정 가운데 '승'까지 마쳤다. '기'는 에버랜드가 삼성생명을 소유하며 출자구조 기본 골격을 완성한 것이고 '승'은 계열사 매각과 상장으로 출자구조를 단순화 시키는 작업이다. '전'은 지주회사 체제 도입이며 '결'은 총수가 신사업에서 업적을 남겨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단계다.
변호인단은 김 위원장이 주장하는 승계 과정이 지나치게 막연하다고 반박했다. 변호인단은 "이건희 회장 와병 이후 기업구조 개편과 미래 신사업인 전장사업, 바이오사업 등을 승계 작업의 일환으로 보는 것은 무리한 시각"이라고 말했다. 또한 김 위원장이 개인의 추측을 바탕으로 주장을 펼치고 있다는 점도 꼬집었다. 김 위원장은 "삼성물산 합병과 삼성생명 금융지주 전환은 미래전략실이 추진했으며 미래전략실 김종중 사장이 이사회가 열리기 전 나에게 의견을 구한 것이 증거"라고 증언했다. 이에 변호인단이 "각 이사회 대신 미래전략실이 결정을 내렸다는 증거나 구체적인 상황이 있느냐"고 묻자 김 위원장은 "증거를 댈 순 없지만 국민 모두가 아는 사실"이라며 자신의 상상임을 간접적으로 드러냈다. 이에 재판부는 "그래서 재판을 하는 것"이라며 김 위원장의 근거 없는 발언을 지적했다.
김 위원장은 제일모직과 삼성물산 합병이 시너지 창출이 아닌 이 부회장의 삼성전자 지배력 강화에 있고 삼성생명이 아닌 삼성물산 분할을 추진해야 했다고도 주장했다. 삼성은 2013년부터 지주회사 체제 전환 작업을 시작했는데 삼성물산과 삼성생명 가운데 삼성생명 분할을 선택했다는 것이 특검의 설명이다. 김 위원장은 삼성물산을 분할하면 법적인 논란이 적지만 돈이 많이 들어가고 삼성생명을 분할하면 법적 논란이 큰 대신 돈이 적게 들어간다고 지적했다.
이어 "이 모든 작업은 이 부회장이 아닌 미래전략실에서 추진한 것"이라며 "많은 사회적 논란이 있는 상황에서 물산이 아니라 생명을 분할하겠다는 계획서를 감독당국에 제출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놀랐다"며 본인은 관련한 사실을 몰랐고 동의하지도 않았다는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이는 김 위원장은 과거 발언들과 대치되는 증언이다. 그는 과거 '삼성이 지주사 전환 없이 승계 작업을 하려 하지만 이는 틀렸다. 금융지주회사로 전환해야 한다'는 내용을 기고하고 "삼성그룹 금융부문만을 금융지주회사체제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 금융회사를 사금고화하거나 지배력 남용 행위를 차단할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방법"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 김 위원장이 의도적으로 사실과 다르게 말했을 경우 이는 위증이 된다.
한편 이재용 부회장이 아닌 미래전략실에서 합병과 금융지주 전환을 추진했다는 증언은 특검 공소사실과 상충된다. 김 위원장은 "삼성그룹은 집단지도체제로 운영돼 왔다"며 그 구성원으로 이재용 부회장, 최지성 전 부회장과 장충기 전 사장, 김종중 전 사장을 지목했다. 그는 "김 전 사장에게 들었다"며 "10개 안건 가운데 4개는 이 부회장 의중이 반영되지만 나머지는 참모들이 정한다"고 주장했다.
특검은 승마지원, 미르·K스포츠 재단 출연 등을 이 부회장이 몰랐을 리 없다고 판단해 이 부회장에게 뇌물죄 등을 적용했다. 하지만 김 위원장 주장대로 삼성 의사결정권이 이 부회장이 아닌 참모진에 있다면 합병 등을 추진한 것도 참모진이 되기에 이러한 혐의를 적용하기 어려워진다. 지난 4월 13일 1차 공판에서 변호인단은 "삼성그룹의 일상적 의사결정은 이 부회장이 아닌 최 부회장이 한다"며 "삼성그룹에서는 사무실 층수가 내부 지위를 나타낸다"고 말한 바 있다. 최 전 부회장은 이건희 회장과 같은 42층에 사무실을 뒀고 이 부회장은 41층, 장 전 사장은 40층을 사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