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생명의 금융지주 전환 작업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에는 부정적으로 작용한다는 증언이 나왔다.
18일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등에 대한 41차 공판에는 삼성생명 방영민 부사장이 증인으로 출석해 금융지주사 전환을 추진하게 된 계기와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이 자리에서 방 부사장은 "경영권 승계가 목적이었다면 금융지주사 전환은 적절치 않은 작업이었다"며 "금융지주사 전환을 추진한 것은 국제회계기준(IFRS4) 2단계 준비를 위한 것"이라고 증언했다.
방 부사장은 삼성생명에서 금융지주사 전환 작업을 주도했던 인물이다. 그는 2020년 IFRS4 2단계 도입에 따라 삼성생명이 2015년부터 대비책 마련에 나섰다고 설명한다. IFRS4 2단계가 시행되면 삼성생명의 가용 자본은 기존 20조원에서 10조원으로 감소한다. 자본이 감소하면 보험사의 지급여력비율(RBC)도 떨어지게 된다. 삼성생명은 현재 350%대의 RBC를 유지하고 있지만 IFRS4 2단계가 적용될 경우 40%대로 떨어질 수 있다는 것이 방 부사장의 설명이다.
방 부사장은 "RBC 비율을 유지하려면 20조원이 필요하다는 내부평가도 나왔다"며 "삼성생명은 지분구조상 지주사나 마찬가지지만 법률상 지주회사 아니라 혜택을 못 누리고 있으니 금융지주사로 전환하자는 대안이 나온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금융지주사로 전환하면 금융지주회사법에 따라 삼성전자 지분을 3.2% 매각해야 하는데 삼성전자는 그룹의 핵심 계열사"라며 "결과적으로 핵심 계열사 지배력이 떨어지는 만큼 경영권 승계에는 부정적"이라고 덧붙였다.
금융위원회와 협의한 과정에 대해서는 "보안 문제 때문에 미래전략실에 파견 상태던 이승재 전무가 금융위와 접촉했다"며 "초안을 전한 뒤 금융위와 협의해 내용을 완성한다는 계획이었다. 금융위도 무조건 안 된다는 반응을 보이진 않았다"고 설명했다.
방 부사장에 따르면 삼성생명은 초안을 전달한 뒤 2016년 4월 15일부터 5월 20일까지 금융위와 상세 내용을 협의한 뒤 공식 인가 신청을 할 계획이었다. 만약 금융위와 사전협의가 안 된다면 금융지주 전환 인가 신청은 포기해야 했다는 설명이다.
이러한 방 부사장의 주장에 대해 특검은 "그해 4월 삼성생명 이사회에서 왜 IFRS4 2단계 대비를 위해 금융지주 전환을 추진한다는 계획을 밝히지 않았느냐"며 "승계 목적으로 금융지주 전환을 추진한 뒤 적당한 이유를 붙이는 것 아니냐"라고 비판했다.
이에 방 부사장은 "이사회 안건으로 올리면 외부에 공시를 해야 한다. 주 안건으로 다루지 않아 공시에 안 들어가더라도 사외이사들을 통해 외부에 알려지게 된다"며 "시장에 줄 충격을 어찌 감당하겠느냐"고 반박했다.
특검은 다시 "이사회에서 먼저 금융지주 전환 추진을 의결한 다음 금융위에 알리는 것이 순서 아니냐"고 묻자 방 부사장은 "이사회에서 다루면 외부로 금융지주 전환 추진 사실이 알려진다. 삼성생명에서 아무런 사전 조율 없이 대외적으로 공표했을 때 시장과 금융위가 받을 충격을 생각해 달라"며 "당시 IFRS4 2단계가 적용될 경우 삼성생명이 가장 큰 피해를 입는다는 것은 모두가 알고 있었지만 아무도 대안을 알려주지 않았다. 금융지주 전환이 우리에게 유일한 방법이었다"고 말했다.
삼성생명이 IFRS4 2단계의 대응책으로 금융지주사 전환을 추진했지만 한화생명과 교보생명 등은 금융지주 전환에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특검은 "IFRS4 2단계 대응에 금융지주 전환이 도움이 된다면 왜 다른 회사들은 금융지주 전환을 추진하지 않았느냐"고 지적했다. 이에 방 부사장은 "타사의 사정을 정확히 알진 못한다"면서도 "교보생명은 여러 금융 자회사를 거느리고 있지 않으며 한화생명의 경우 대주주 적격성 심사 등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업계에서 삼성생명만 추진한 상황이었지만 이는 삼성생명이 금융지주로 전환할 경우 높은 경쟁력을 가지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