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1심에서 징역 5년을 선고받으며, 경영 공백 장기화로 인한 삼성전자의 글로벌 경쟁력 실추가 현실화되고 있다.
27일 업계와 법원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 27부는 지난 25일 이 부회장에게 징역 5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을 통해 개별적 부정한 청탁은 없었다면서도 박근혜 전 대통령의 직접적인 뇌물 요구에 삼성이 승계 작업에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해 수동적으로 응했다고 양형 사유를 설명했다.
삼성 측은 즉각 항소 의사를 밝혔지만 이 부회장의 경영 부재는 장기화될 전망이다. 이에 따라 삼성의 글로벌 경쟁력 하락도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이 부회장은 2001년 3월 삼성전자 경영전략담당 상무보로 경영 일선에 처음 등장했다. 하지만 글로벌 무대에서 행보를 드러낸 것은 2007년 전무로 승진하며 최고 고객 경영자(COO) 직책을 맡은 이후다.
이 부회장은 그해 9월 독일에서 열린 유럽 최대 가전 박람회 '국제가전박람회(IFA)'에 직접 참석해 경쟁사 부스를 둘러봤다. 카 오디오, 내비게이션 등 자동차 관련 제품을 둘러본 이 부회장은 "우리 회사가 만들지 않고 있기 때문"이라고 그 이유를 설명했다. 삼성의 미래 먹거리 사업을 찾는 이 부회장의 작업은 삼성전자가 지난해 미국 전장기업 하만을 인수한 결과로 나타났다.
이 부회장은 2008년 삼성 특검의 영향으로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다가 2009년 12월 부사장으로 승진하며 복귀했다. 2010년 12월에는 사장으로, 2012년 12월에는 부회장으로 승진을 거듭하며 후계자 자리를 굳혔다.
후계자 지위가 굳어지며 이 부회장의 결정권도 강화됐다. 2014년 프린터온을 시작으로 사물인터넷(IoT) 기업 스마트싱스, 삼성페이의 뼈대가 된 루프페이를 인수했고 인공지능 플랫폼 스타트업 비브랩스도 사들이며 빅스비를 선보였다. 이 기술들은 갤럭시S8과 갤럭시노트8이 시장에서 차별화된 경쟁력을 갖게 했다. 하만을 80억 달러(약 9조원)에 인수한 것도 이재용 부회장이 추진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이 부회장은 삼성의 조직문화도 바꿨다. 삼성에서는 사원·대리·과장·차장·부장 등의 직급이 사라졌다. 지난해 3월 이 부회장이 '스타트업 삼성 컬처혁신 선포식'을 가지며 수직적 인사제도를 수평적으로 변화시키겠다는 선언을 한 덕분이다. 이를 통해 삼성은 강력한 조직력이라는 강점을 유지하면서도 스타트업 같은 빠른 업무처리와 합리적 의사결정이 가능해졌다.
이 부회장의 공백이 장기화되면 이 부회장의 손길이 닿은 사업과 변화 방향들이 빛을 잃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기억 오너는 장기적인 시각과 책임감을 느끼고 기업의 신사업이나 문화 개선을 추진할 수 있지만 전문경영인들은 구조상 단기적인 시각을 가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재계 관계자는 "전문경영인은 언제든 그 지위를 잃을 수 있는 만큼 주주들의 눈치를 많이 본다"며 "주주 반대를 무릅쓰고 신사업에 힘을 싣는 등의 과감한 결단은 나올 수 없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