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이 투게더(Joy Together)'.
김정태 하나금융지주 회장의 집무실 앞 문패에 새겨진 말이다. '함께 즐겁게'라는 뜻으로 김 회장의 경영철학과 지향점을 잘 보여주는 말이다.
'조용한 2인자'에서 글로벌 하나금융그룹이란 꿈을 향해 도전에 나선 김 회장. 9월 1일 그가 뚝심으로 일군 KEB하나은행이 두 돌(전산통합 추진)을 맞는다.
김 회장의 지휘 아래 펼친 1년여간 '리허설'은 끝나고, 하나금융그룹과 계열사들의 본 공연이 시작됐다.
그는 국내 최대 규모인 메가뱅크 'KEB하나은행'이란 타이틀만으로는 아직 배가 고프다. 앞으로 '글로벌 톱 40' 금융그룹의 비전 달성에 온 힘을 쏟아부을 방침이다.
김 회장은 어떤 비즈니스를 펼칠까.
올해 초 신년사를 보면 궁금증이 조금은 풀린다. 그는 "무한 경쟁시대에 승자는 손님이 직접 네트워크를 형성해 나가는 '오가닉 비즈니스' 기업이 될 것"이라며 "하나금융의 미래도 여기에서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오가닉 비즈니스'(서울대 노상규, 2016)란 판매자나 유통자가 아닌 손님이 직접 네트워크를 만들고, 이 네트워크가 마치 생명체 처럼 성장하고 진화하는 비즈니스를 말한다.
◆KEB하나은행, 금융 AI 주도하는 리딩 뱅크
김 회장을 두고 회사 안팎에서는 '형님 리더십'이라고 평가한다. 그는 친형과 같은 따뜻한 포용력과 세심함으로 정평이 나 있다. 또 '형님 리더십'이란 별칭에 관해서는 같은 1952년생 용띠지만 자신보다 직급이 높았던 김종열 전 하나금융 사장에게 항상 '형님'이라고 부르며 깍듯하게 대했다는 일화도 전해진다.
방 앞에 'Joy Together'라는 팻말을 붙인 이유는 뭘까. 누구에게나 열렸다는 취지에서다. 지위와 격식을 모두 내려놓고 임직원과 소통하겠다는 그의 경영철학이 함축돼 있다고 하나금융 측은 설명했다.
자신도 "직원들이 자유로운 환경과 열정적인 분위기 속에서 개개인의 역량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해 왔다.
지난 2015년 9월 하나은행과 외환은행의 물리적 결합으로 태어난 'KEB하나은행'. 1년여 만에 KEB하나은행을 '원뱅크' 로 만든 것도 김 회장의 열정과 뚝심이 있어 가능했다.
수익성과 건전성 지표도 좋아졌다. 하나금융그룹은 상반기 1조310억원의 연결기준 당기순이익을 기록했다.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 보다 30.5% 증가한 수준이다. 자산건전성 지표인 고정이하여신비율(NPL비율)도 0.80%로 전분기 대비 0.09%포인트, 전년 말 대비 0.12%포인트 개선됐다. 연체율 역시 전 분기 대비 0.07%포인트 개선된 0.46%를 기록했다.
특히 KEB하나은행 개별 기준 상반기 순이익은 9988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25.0% 증가했다. 이는 은행 통합 후 최대 실적으로, 통합 시너지가 본격화된 것으로 풀이된다. 은행별 1인당 생산성에서도 KEB하나은행은 1억1400만원으로 1위를 차지했다.
글로벌 시장에서도 KEB하나은행에 대한 평가는 남다르다
KEB하나은행은 최근 유로머니지가 주는 '2017 아시아지역 혁신·변화 부문 최우수 은행상'을 수상했다. KEB하나은행은 지난 2013년부터 2015년까지 유로머니지 선정 3년 연속 국가 단위의 상인 '대한민국 최우수 은행상'을 수상한 바 있으며 올해 국내 은행권 최초로 지역단위의 상인 '2017 아시아지역 혁신·변화 부문 최우수 은행상'을 수상했다.
유로머니지는 "KEB하나은행의 ▲외환은행과의 조기통합 ▲성공적인 IT 통합 및 임직원 간 화학적 결합 완성 ▲시너지 본격화에 따른 은행의 양적·질적 성장 ▲인공지능(AI)을 접목한 혁신적인 자산관리 서비스 ▲독보적인 역량을 기반으로 한 글로벌 비즈니스 확대 등의 항목에서 높은 점수를 받아 아시아지역 혁신·변화 부문 최고 은행으로 선정했다"고 밝혔다.
하나금융그룹은 지난 6월 20일 인천 청라국제도시에서 통합데이터센터 준공식을 열었다. 유시완 하나금융그룹 CIO(왼쪽부터), 이영근 인천경제자유구역청장, 신동근 국회의원, 김병호 하나금융그룹 부회장, 송영길 국회의원, 김정태 하나금융그룹 회장, 제갈원영 인천시의회의장, 함영주 KEB하나은행장, 이학재 국회의원, 박성호 하나금융티아이 사장이 테이프커팅식에 앞서 기념촬영하고 있다.
◆금융소비자 중심과 '오가닉 비즈니스'
그러나 김 회장에게는 큰 그림이 하나 더 있다. 글로벌 '원뱅크'를 만드는 일이다.
김 회장은 '비전 2025'란 큰 그림 아래 장밋빛 미래를 설계하고 있다. 하나금융을 오는 2025년까지 국내 1위·아시아 5위·세계 40위 금융그룹을 만들겠다는 목표다.
세부적으로는 이익 기준 글로벌 비중 40%, 비은행 비중 30%를 달성한다는 계획이다.
비은행 부분에서 다양한 실험도 하고 있다.
핵심은 하나금융의 통합 멤버십 플랫폼인 하나멤버스. 하나멤버스는 미용·서적·커피·음악·영화·쇼핑 등 570개 회사와 제휴해 회원에게 다양한 우대 및 포인트 적립 혜택을 제공하고 있다. 가입자는 상반기 1000만명을 넘어섰다. 텍스트뱅킹에서 한 단계 수준을 높인 인공지능 기반의 'HAI banking(하이 뱅킹)' 서비스를 내놨다. 하이뱅킹은 텍스트뱅킹이 제공하던 단순 계좌조회·간편송금 등을 넘어 환율 조회나 금융상품 추천 등 더 넓은 영역의 금융서비스를 지원한다.
하지만 김 회장은 4차 산업혁명이 가지고 올 변화를 따라가려면 아직 부족하다고 판단한다.
김 회장은 "올 해 인터넷 전문은행이 출범해 본격적으로 마케팅을 시작하고 금융권, 유통사, 통신사 등에서 20개가 넘는 페이서비스가 출시돼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지만 승자는 손님이 직접 네트워크를 형성해 나가는 '오가닉 비즈니스' 기업이 될 것"이라며 "손님이 만든 네트워크가 마치 생명체 처럼 성장하고 진화하는 비즈니스를 만드는 기업이 미래를 선도하는 기업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덴마크의 대표적인 기업인 레고(Lego)를 예로 들었다. 1970년대에서 1990년대 초까지 황금기를 누리던 레고는 지나친 외형 성장을 추구하면서 2004년 파산의 위기까지 몰렸다. 그러나 레고는 기업의 핵심가치인 '아이들을 잘 놀게 해 주기'에 집중하면서 옛 명성을 되찾을 수 있었다.
외환은행과의 통합 이후 KEB하나은행의 해외 진출 국가는 지난달 말 기준 24개국, 네트워크(법인·사무소·지점 등)는 145개나 된다. 국내 은행권에서 가장 큰 규모다. 올해 상반기 해외시장에서 벌어들인 순이익은 전년 동기보다 22% 증가했다. 전체 은행 이익 중에서는 21%의 비중을 차지한다.
이 목표가 순조롭게 진행되면 하나금융은 2012년 말 1조9580억원이었던 이익이 2025년 약 6조원까지 늘어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 중 글로벌 부문에서 나오는 이익은 2012년 말 2370억원에서 2025년엔 약 2조원으로 커질 수 있다는 게 하나금융의 분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