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정부 들어 금융권 최고경영자(CEO)에게 노조가 가장 어려운 통과 관문이자 풀어야 할 숙제가 됐다.
국책 은행장이 대통령의 임명을 받고도 노조의 저지로 며칠째 첫 출근도 하지 못하는가 하면, 차기 회장 선임을 정해진 절차에 따라 진행하고 있음에도 노조가 날치기라고 연일 대립각을 세우고 있다.
13일 금융권에 따르면 은성수 한국수출입은행 신임 행장은 사흘째 출근을 하지 못했다. 노조가 지난 11일부터 출입문을 가로막고 출근 저지에 나선 탓이다. 은 행장과 노조의 대화자리도 한 번 마련되지 못한 만큼 해결의 실마리는 보이지 않고 있다.
최종구 금융위원장이 이에 대해 "노조가 그렇게 구태의연한 모습을 보이면 안 된다"고 비판하고 나섰지만 분위기는 그대로다.
수은 노조는 이전부터 신임 행장에 대해서는 대부분 출근을 저지해 왔다. 최종구 전 행장이 유일하게 무혈입성한 경우였다. 이덕훈 전 행장은 임명된 이후 닷새나 노조의 저지로 출근하지 못한 바 있다.
반면 같은 날 내정자로 발표됐던 산업은행 이동걸 회장은 지난 11일 예정대로 취임식을 치렀다. 그러나 속을 들여다보면 역시 노조가 잠자코 있었던 것이 아니라 이 회장이 노조의 관문을 통과했기 때문이다. 노조 측은 저지 투쟁을 하지 않는 대신 토론회에 참석해 조합원들의 검증을 받을 것을 제안했고, 2시간 가량의 토론회 이후 노조는 이 회장의 취임을 동의하겠다고 밝혔다.
민간 금융사들도 상황은 비슷하다. 금융회사의 지배구조에 관한 법률에 따라 정해진 절차로 회장 선임을 진행하고 있지만 노조가 특정 후보에 대한 호불호를 내세우면서 잡음이 커졌다.
당초 별 문제가 없을 것으로 관측됐던 KB금융지주의 차기 회장 선임도 노조의 반발이 최대 난관이다. KB노조는 전일 현 윤종규 회장의 연임에 대해 실시한 찬반 투표를 이유로 반대를 공식 선언했다.
금융권 관계자는 "현 윤 회장의 성과나 비리 등이 아닌 조합원 찬반 투표로 반대하고 나선 것은 어느 규정이나 절차에도 없는 보기 드문 무리수"라고 지적했다.
이에 앞서 KB노조는 하승수 변호사(비례민주주의연대 공동대표)를 사외이사로 선임하라는 주주제안과 사외이사와 감사위원을 추천하는 위원회에서 회장 등 사내 경영진을 배제하도록 관련 규정 개정을 추진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임원추천위원회를 거쳐 차기 회장으로 낙점된 BNK금융지주 김지완 내정자도 아직 긴장감을 늦추기 어려운 상황이다. 오는 27일 주주총회에서 최종 의결, 선임돼야 하지만 부산은행 노조는 총파업과 출근저지를 예고한 상태다.
금융권 관계자는 "합리적인 노조라면 반대를 위한 반대가 아닌 조직의 발전과 이익이 되는 쪽으로 목소리를 내야 한다"며 "새 정부가 들어섰다고 해서 한쪽의 목소리만 합리화될 순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