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느리게 가는 자전거입니다. 쉽지만 균형 잡기가 힘들죠. 입맛에 맞는 먹거리만을 찾다가는 쓰러집니다." 글로벌 컨설팅 회사 맥킨지는 2013년 '2차 한국 보고서'를 통해 한국을 '서서히 데워지는 물속의 개구리'에 비유하며 저성장을 극복할 체질변화를 주문했다. 수년이 지난 현재 맥킨지의 눈에 한국은 여전히 데워지는 '물속 개구리'다.
시장에서는 2분기에 이어 3분기 성장률도 0%대 중반에 그칠 것으로 예상한다.
안팎에서 높아진 위기감은 한국경제를 벼랑 끝으로 내몰고 있다. 미국 재무부는 오는 15일까지 의회에 환율보고서를 제출할 예정이다. 한국이 대상에 포함된다면 자동차 등 수출기업에 직접적인 타격까지 우려된다. 대내적으로는 8·2 부동산 대책에도 재건축을 중심으로 한 강남 부동산 가격 상승세가 잡히지 않고 있고, 1400조원에 달하는 가계부채 해법도 내놔야 한다. 미국이 연내 금리까지 올린다면 부담은 더 커질 수 있다.
북한 리스크도 한국경제의 위협 요인이다,
한국경제에 '10월 위기설'이 점증하고 있다.
◆한미 통상 갈등, 환율조작국 지정?
9일 기획재정부 등에 따르면 미국 재무부는 오는 15일까지 의회에 환율보고서를 제출할 예정이다. 미국 교역촉진법에 따르면 미국 재무부는 상반기(4월 15일), 하반기(10월 15일) 두 차례 의회에 주요 교역상대국의 환율조작 여부를 조사한 보고서를 제출한다.
다만 제출시한을 지키지 않는 경우도 있어 15일 이전 발표될지는 불투명하다. 특히 오는 13~15일 미국 워싱턴에서 국제통화기금(IMF)·세계은행(WB) 연차총회가 열리는 만큼 환율보고서 제출은 그 이후로 미뤄질 것으로 전망된다.
우리나라는 지난해 10월에 이어 트럼프 행정부 출범 이후 첫 보고서가 제출된 올해 4월에도 중국과 일본, 대만, 독일, 스위스 등과 함께 관찰대상국으로 분류됐다.
정부는 우리나라가 여전히 경상수지 흑자와 대미 무역흑자 2개 요건에만 해당되는 만큼 10월 보고서에서도 환율조작국에 지정될 가능성은 작은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우리의 희망일 뿐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자국 이익 우선주의'를 강조하고 있고, 한·미 FTA(자유무역협정) 개정 협상에 합의하면서 주도권을 쥐려 할 것이 뻔해서다.
시계를 1987년으로 돌려보자. 상상만 해도 끔찍한 환율 대란이 터졌던 시기다. 당시 환율조작국으로 지정되자 원화는 급격하게 절상돼 1987년 원·달러 환율은 연 평균 792.30원에서 2년후 679.60원으로 14% 하락한다. 당시만 해도 저가에 의존하던 수출경쟁력은 큰 타격을 입게 돼 1988년 141억달러였던 경상수지흑자는 1989년 3분의1 수준인 50억달러로 줄었다. 이 기간 대미무역도 약 30% 감소했다. 물론 여기에는 원달러 환율 하락 외에 유가와 금리상승까지 겹치며 이른바 우리 경제를 짓누른 3고의 영향이 컸다.
환율조작국으로 지정되면 관세·수입물량 제한 등 미국의 보복을 받을 수 있다. 특히 한국경제는 수출로 먹고사는 구조라 더 그렇다. 수출물량이 늘어도 환율이 하락하면 손에 쥐는 돈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현대자동차그룹 산하 한국자동차산업연구소는 원·달러 환율이 10원 하락할 경우 자동차업계 매출이 연간 4200억원 감소한다고 분석한 바 있다.
◆가계부채 소비 성장 제약
1400조원 규모의 가계부채는 시한폭탄과 같다. 언제 터질지 몰라서다. 국제결제은행(BIS)의 세계 가계부채 분석을 보면 1분기 한국 가계 부문 DSR(Debt service ratios)는 12.5%로 1년 전(11.8%)에 비해 0.7%포인트(p) 뛰었다. 이는 통계가 시작된 1999년 1분기 이래 분기 기준으로 가장 높은 수준이다.
DSR는 소득 대비 부채 원리금 상환 부담을 나타내는 지표로, DSR이 높으면 소득에 비해 미래 빚 상환 부담이 크다는 의미다.
소득 대비 빚 상환 부담이 늘어나는 속도도 한국이 가장 빨랐다. 지난 1년간 한국 가계의 DSR 상승폭은 BIS가 조사한 17개국 중에 가장 컸다.조사대상 중 8개국은 1년 전보다 DSR가 하락했고 4개국은 변동이 없었다. 노르웨이(0.3%포인트), 호주·핀란드·스웨덴(0.2%포인트)은 1년 전보다 상승했지만 한국에 비하면 상승세가 미미했다.
한국은 DSR 절대 수준 자체도 높은 편이다. 네덜란드(17.0%), 덴마크·호주(15.4%), 노르웨이(14.5%)에 이어 조사대상 국가 중 5위였다.
정세균 국회의장실이 신용정보회사 나이스(NICE) 평가정보의 자료를 바탕으로 분석한 결과 1857만 명 가운데 자신의 집을 담보로 잡힌 대출자는 622만 명으로, 전체 대출자의 3분의 1이다. 이들의 부채 총액은 938조 원이다. 대부분 집을 살 때 낸 빚이다. 1인당 1억5073만 원이다.
정부도 강력한 가계부채 대책을 내놓을 예정이다. 주요 내용은 내년에 신DTI(총부채상환비율)를 도입하는 방안이 포함될 것으로 보인다. 기존 주택담보대출의 원금까지 분자인 대출원리금에 포함하게 된다면, 다주택자들은 사실상 돈을 추가로 빌리기 어렵게 된다. 여기에 2019년까지 전면도입할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가이드라인도 윤곽을 드러낼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당장 효과를 낼지는 미지수다. 8·2 부동산대책 발표 이후에도 강남 부동산 값은 더 뛰었다. 강남 한 공인 중개사는 "문 정부도 5년이면 끝난다. 돈 있는 사람은 버틴다. 과거에도 그랬다. 피해를 보는 것은 불나방처럼 달려든 일반 서민들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은행 이주열 총재는 지난 8월 국회 기획재정위 업무보고에서 "우리나라 가계부채는 증가 속도나 총량 수준이 높아 소비와 성장을 제약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경고했다.
◆금리상승→가계부담 확대→실물시장 리스크 우려
올해 3% 달성 목표에도 빨간불이 켜졌다.
기획재정부와 한국은행, 민간연구기관 등에 따르면 올해 3분기 경제성장률(전분기 대비)은 2분기(0.6%)와 비슷한 0%대 중반에 그칠 것으로 전망됐다. 우리 경제는 올해 1분기 건설투자와 설비투자, 수출이 호전되면서 예상보다 높은 성장률을 기록, 6분기만에 1%대로 올라섰다. 그러나 2분기에는 기저효과, 생산과 소비의 동반 하락 등으로 다시 0.6%로 떨어졌다.
3분기도 크게 나아지지 않았다. 지난달 29일 통계청이 발표한 8월 산업활동동향을 보면 전체 산업생산 증가율(전월비)은 0%로 제자리걸음을 했고, 소비를 의미하는 소매판매 증가율은 7월 0.1%에서 8월(-1.0%) 마이너스 전환했다. 설비투자는 7월(-5.1%)과 8월(-0.3%) 2개월 연속 마이너스를 보였고, 이미 이뤄진 공사실적을 의미하는 건설기성은 2.0%(전월비), 건설 선행지표인 건설수주는 3.4%(전년 동월비) 감소했다. 경제 수요 측면 대표 지표인 소비·설비투자·건설기성이 모두 역성장한 것은 2016년 9월 이후 처음이다.
소비자 심리도 다시 뒷걸음 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9월 소비자심리지수(CCSI)는 107.7로 2.2포인트(p) 떨어지면서 2개월 연속 하락세를 보였다.
그나마 수출이 지난 9월 551억3000만달러로 전년 동기 대비 35% 급증하면서 11개월 연속 증가세를 유지했다. 11월 수출액은 1956년 수출 통계 작성 이래 최대를 기록하는 등 우리 경제의 버팀목 역할을 하고 있지만 반도체 등 특정 품목에 기대고 있는 점은 불안요소로 꼽힌다.
미국이 연내 금리라도 올리면 상황은 더 위태로워진다. 2007년 8월 이후 10년 만에 한·미 금리가 역전되기 때문이다.
금리 상승시 채무상환능력 변동 폭(한국은행 금융안정보고서)을 살펴보면 대출금리가 각각 0.50%포인트, 1.00%포인트 및 1.50%포인트 상승하는 경우 고위험가구는 2016년보다 각각 8000가구, 2만5000가구, 6만 가구 증가한다. 고위험가구의 금융부채 규모는 2016년보다 각각 4조7000억원, 9조2000억원 및 14조6000억원 증가하는 것으로 분석된다.
자본시장에도 충격이 걱정이다. 지난 2005년 한·미 간 기준금리가 역전되자 그해 7월까지 코스피 시장에서 2조원 가량 순매수하던 외국인은 금리 역전을 기점으로 8월부터 5조원 순매도로 돌아섰다. 이어 2006년 10조원, 2007년엔 24조원 이상의 외국인 자금이 썰물처럼 빠져나갔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