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 상황과 관계 없이 '절대수익을 낸다'는 한국형 헤지펀드. 지난 2011년 12월 출범한 지 올해로 6년째 접어들었다. 12조원대의 시중자금을 빨아들이며 자금 블랙홀이 됐다.
올해 안에 15조원 장벽도 깰 가능성이 커졌다. 초저금리 시대에 투자할 곳을 찾지 못한 기관과 초고액자산가의 자금이 몰리고 있어서다. 특히 지난해 10월 금융당국의 '사모펀드 활성화 방안'에 따라 진입 장벽도 대폭 낮아진 이유도 있다.
그러나 트렉레코드(운용성과)가 쌓이는 만큼 한국형 헤지펀드의 부익부빈익빈 현상도 나타나고 있다.
◆ 헤지펀드 운용사 100개
11일 NH투자증권과 투자금융업계에 따르면 9월 말 기준 한국형 헤지펀드 설정액은 12조 4900억원을 기록했다. 8월 말 대비 3000억원 늘었다.
개별 헤지펀드 설정액은 '삼성 다빈치 1호'가 400억원 넘게 설정액이 증가하며 두드러진 성장세를 보였다.
전문가들은 국내 주식형펀드 인기가 시들해진 가운데 헤지펀드가 대안 투자처를 찾는 고액 자산가들의 선택을 받았다고 설명한다. 상장지수펀드(ETF)를 제외한 국내 주식형펀드에서는 올해 들어 5조1573억원 규모의 자금이 이탈했다. 코스피가 사상 최고치를 돌파하자 투자자들이 환매에 나선 것.
헤지펀드 투자 수요가 늘어나면서 신생 운용사도 우후죽순 등장해 헤지펀드 운용사 수는 100개까지 늘어났다. 지난달에만 IBK투자증권, 에셋원 등 3개 신규 헤지펀드 운용사가 새로 등장했다. 신규 헤지펀드도 44개나 새로 만들어져 한국형 헤지펀드 수는 653개로 늘었다.
자금 블랙홀은 교보증권이다. 교보증권 헤지펀드 95개의 순자산 총액(설정액+운용이익)은 지난달 말 기준 1조8584억원으로 업계 1위다.
여기에 2015년 10월 25일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자본시장법) 개정안이 도입되면서 진입 문턱이 낮아진 것도 주효했다. 헤지펀드 운용 요건이 자기자본 60억원에서 20억원으로 완화됐고, 투자 최소금액도 1억원으로 하향 조정됐다. 이 결과 시장에 새로 뛰어든 헤지펀드 운용사가 크게 늘고 자산가들의 투자도 증가했다.
한 증권사 프라이빗뱅커(PB)는 "올해 공모형 펀드를 비롯해 금융상품 대부분이 낮은 수익률을 보였다"며 "새로운 투자법과 절대수익률을 강조한 헤지펀드가 이 틈을 비집고 자리를 잡았다"고 분석했다.
◆ 수익률 호조…자투리 펀드 난립 문제
운용사들의 투자 실적은 대체로 좋은 편이다. 그러나 트렉레코드(운용성과)가 쌓이는 만큼 한국형 헤지펀드의 부익부빈익빈 현상도 나타나고 있다는 게 업계의 설명이다.
업계에선 한국형 헤지펀드가 안정적으로 성장하기 위해 전문인력 육성이 시급하다고 지적한다.
업계 한 관계자는 "최근 운용인력들의 전문성이 확대됐지만 선진국을 따라가기에는 아직 부족한 면이 있다"면서 "한국형 헤지펀드가 퀀텀점프를 하려면 보다 다양한 운용 전략 구사가 가능해야 하고, 규제 일변도의 정책 패러다임 변화도 뒤따라야 한다"고 지적했다.
연기금 등 기관투자가의 미적미적한 태도도 헤지펀드에는 아픈 부분이다. 국민연금이 지난해 말부터 참여를 했지만 아직 업계가 만족할 만한 투자는 없는 게 현실이다. 국민연금 투자 방식을 참고하는 다른 연기금과 공제회 등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자투리 펀드'(소규모 펀드)에 대한 우려도 고개를 든다. 업계에 따르면 한국형 헤지펀드 10개 가운데 3개는 총 설정액 50억원 미만의 '자투리 펀드'(소규모 펀드)였다.
1000억원 이상의 대형 펀드는 24개로 전체의 4%에도 못 미쳤다. 이 중 최대 규모 펀드의 설정액은 5422억원으로 가장 규모가 작은 펀드(3000만원)와 비교했을 때 1만8000배 이상의 편차를 보였다
NH투자증권 최창규 연구원은 "사모펀드의 특성상 투자자 수가 제한된다"면서 "기관투자가가 참여하는 일부를 제외하면 전반적인 규모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