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단 없이 증거로 말하겠다던 특검이 예단에 의존한 재판을 펼쳤다.
30일 서울고법에서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등에 대한 항소심 3차 공판이 열렸다. 마지막 항소 요지 프레젠테이션이 이뤄진 이날 재판에서 특검은 예단과 추정에 의지해 논리를 펼치는 모습을 보였다. 오전 공판에서는 미르·K스포츠재단 출연과 한국동계스포츠영재센터 지원을, 오후 재판에서는 승마지원에 관한 횡령과 재산국외도피가 다뤄졌다.
지난 1심 재판부는 미르·K스포츠재단 출연금 204억원은 무죄, 한국동계스포츠영재센터에 지원한 16억2800만원은 유죄로 봤다. 특검은 재단 출연금과 영재센터 지원금 모두 뇌물이라는 시각이다.
이날 재판에서 특검은 "재단 출연은 박근혜 전 대통령이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을 통해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에 지시한 것"이라며 "전경련은 위장일 뿐 실질적으로는 박 전 대통령이 직접 주도한 일"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박 전 대통령은 삼성전자에 재단 활동을 부탁한 것도 아니고 돈을 요구했다"며 "정말 뜬금없이 '재단 만들어야 하니 돈 내놓으라' 한 것"이라고 말했다. "사업자 등록조차 되어있지 않은 재단을 서둘러 지원한 것은 박 전 대통령과 이 부회장 사이 합의가 됐다는 증거"라고도 덧붙였다.
삼성전자가 강압에 의해 불가항력으로 기부금을 냈다고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지만 특검의 판단은 달라졌다. 특검은 "대통령과 대기업집단 관계니 직무연관성이 발생하고 뇌물로 인정되어야 한다. 공적재단도 아니었다"라며 "박 전 대통령의 이러한 요구에 이재용 부회장은 적극적·능동적으로 응했다"고 주장했다. "일반인은 상상할 수도 없는 액수"라고도 강조했다.
영재센터에 대해서도 특검은 "공익목적이 있다고 보기 어렵다"며 "캠프 등 활동 역시 삼성전자 지원금이 아닌 문화체육관광부 지원금으로 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삼성전자 지원금은 최순실, 장시호 등에게 흘러들어갔고 지원 합의는 5분여간 이뤄진 2014년 9월 박 전 대통령과 이 부회장의 첫 독대에서 이뤄졌다는 판단이다. 특검은 박 전 대통령의 요청을 수락한 이 부회장이 장충기 사장에게 이를 알렸고 황성수 삼성전자 전무 등이 지원에 나선 것으로 보고 있다. 중간에 황성수 전무가 승마협회로 자리를 옮겼지만, 후임인 이영국 상무에게 이에 관한 내용을 인수인계했을 것이라는 추정에 기반했다. 특검은 "독대에서 현안 청취와 지원 합의가 함께 이뤄졌다. 무슨 의미인지 상식과 경험 있다면 알 것"이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이 독대 대화내용은 녹취록도 없기에 명확하게 알려지지 않았다. 이 부회장은 대통령과의 독대가 처음이기에 긴장했고 물음에 제대로 답하지 못했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러한 특검의 주장에 삼성 변호인단도 당혹감을 드러냈다. 변호인단은 "특검이 말한 대로 영재센터는 문체부와 강릉시도 후원했는데 이는 조사했느냐"며 "정부 요청이 있어 지원한 것인데 법적 잣대를 다르게 적용해선 안 된다"고 지적했다. 이어 "동계캠프 활동을 문제부 돈으로만 했다는 증거는 없으며 이 부회장이 영재센터 지원을 지시했다는 것도 근거가 없다"고 밝혔다.
박 전 대통령에게서 동계올림픽 메달리스트들의 활동을 도와달라는 말을 들었지만 어느 기관을 지원하라고는 듣지 못했다는 것이 삼성의 입장이다. 이 부회장이 이 말을 전해 동계올림픽 메달리스트들이 운영하는 재단 등을 찾아봤으나 인사이동이 있으며 흐지부지됐고 이와 별개로 김재열 제일기획 사장이 김종 전 문체부 차관으로부터 영재센터 이야기를 들어 지원을 결정했다는 것이다. 변호인단은 "장시호와 이규혁이 나눈 대화 가운데 삼성의 후원 여부가 미확정이라고 말한 것이 있다. 대통령 지시였다면 미확정일 수 있었겠느냐"며 "김재열 사장이 이규혁을 만나고 후원을 결정하는데 3개월이 걸렸다. 특검 주장대로면 이 역시 말이 되지 않는다"라고 꼬집었다.
재단 출연에 대해서도 변호인단은 "다른 기업들과 동일하게 독대했고 전경련의 할당 비율에 맞춰 어쩔 수 없이 냈는데 특검은 삼성만 기소했다"며 "재단 출연이 빠르게 이뤄진 것은 당시 중국 리커창 총리 방한 시기에 MOU가 체결되어야 한다고 들었기 때문"이라고 반박했다. "특검은 재단 출연액을 일반인은 상상할 수도 없는 금액이라고 표현하는데 액수가 적으면 뇌물이 아닌 게 되느냐"고도 지적했다.